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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Nov 07. 2024

말이 씨가 된다

 말의 씨는 자라서 뭐가 될까?

말은 생각에서 나온다.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생각의 산물이다. 뱉지 못한 말, 삭혔던 말, 속으로만 품었던 말에는 독기가 있다. 상대를 아프게 하고, 쓰러뜨리기 위해 참고 숨겼던 말들이 무기가 되어 날아간다. 말은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은 잠을 잡아먹으며 몸피를 키운다. 


잠이 오지 않는 날마다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그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말을 하던 순간의 표정과 뉘앙스가 떠오르고, 맞받아치지 못했던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 시작하면 잠은 달아나고 정신은 말짱해진다. 옆에서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분노에 떤다. 손발이 묶인 채 지르는 소리는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 내지르는 소리는 듣는 사람이 없어 금세 사그라진다. 알고 있음에도 할 일이라곤 억울함을 담은 소리를 던지는 것밖에 없기에 하릴없이 상대 없이 외친다. 공허한 외침이 벽에 천장에 닿아 스러진다. 간혹 반사되어 돌아오면 가슴부터 아파온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뭐라도 되는 듯했다. 말이 가진 힘을 믿었다. 


엄마가 죽기 전에 제일 많이 한 말은 "나만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였다. 그 말을 흘려들었다. 아니다. 듣기 싫어서 그 말을 하는 엄마를 외면했다. 속으로 생각만 할 것이지 굳이 입 밖으로 내뱉어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하다 보니 말이 흘러나왔다. "엄마는 왜 그렇게 살아? -"


말을 뱉은 날 거짓말처럼 엄마가 죽었다. 엄마가 그토록 바라던 죽음은 친한 약국에서 하나씩 모아놓은 수면제도, 농약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주었던 제초제도 아니었다. 아빠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신호위반에 음주운전으로 달려온 차에 엄마는 날아갔다. 엄마의 죄는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출발한 것이었다.


"엄마, 투투운전법 알아요? 신호 바뀐 후에도 바로 출발하지 말고 좌우 살피고 2초 후 출발하기. 2등으로 출발하면 사고가 나지 않는대요." 아들이 즐겨 보는 한문철의 블랙박스를 엄마가 봤다면 죽지 안 있을 텐데. 9시가 되기도 전에 곯아떨어졌던 엄마는 끝내 한문철을 알지 못하고 죽었다.


생각이 굳어져서 나오는 말은 강한 힘을 가진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나만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엄마가 죽자, 우리 네 남매는 뿔뿔이 흩어졌고, 아빠는 13살 어린 여자와 살며 농사일을 줄였다. 엄마는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죽을 길을 향해 걸어갔을 뿐이었다. 


매일 일기장에 죽고 싶다고 썼던 엄마를 알지 못하고 통화할 때마다 힘을 내라고 한 게 미안했다. 나만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라고 쓰는 것을 모르고, 임신해서 못 먹지만, 아들이라서 다행이라고 웃으며 말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엄마가 죽은 날에 검은 줄로 그려진 상자가 만들어졌고, 나는 그 안에 갇혀 살았다. 엄마가 죽은 해에 태어난 아들이 12살이 되었는데, 아직도 나의 모든 것은 엄마와 연결됐다. 내가 만든 건지 엄마가 만들고 간 건지 모르는 상자에 갇혀 슬퍼도 엄마를 생각하고 좋은 일에도 엄마를 떠올린다.  12년 전 여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밥을 먹고 장을 자고, 아이들을 키우며 나이를 먹고 있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소리 내 울어본 적이 없었다. 글로 풀어내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글도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내가 스스로 그 시간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2013년 여름에 나를 가둔 건 내가 그린 검은 줄이었는지도 모른다. 거울을 보면 엄마와 똑같은 내가 웃고 있다. 엄마와 닮은 목소리의 동생과 통화하고, 커갈수록 엄마를 닮아가는 막둥이를 보며 가슴이 철렁하는 사이사이마다 검은 줄은 진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칠을 더한다. 엄마를 가둔 그 시간 안에 나도 갇혀 있다. 그걸 모르고 살았다.


울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조차 거추장스러웠다. 엄마의 죽음은 멀리 있었고, 나는 혼자 남은 아빠를 보면서도 어딘가에서 엄마가 살아 있다고 믿었다. 이 모든 게 몰래카메라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극의 주인공이면 또 어떨까. 배우들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울고 웃으며 연기하지만, 막이 내리면 화장을 지우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나만의 연극은 12년째 계속되고 있다. 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짠하고 나타나고, 울고 웃던 관객들이 의자에서 일어나면 연극이 끝난다. 무대 뒤에서 화장을 지우며 뒤풀이장소를 물어봐야 하는데. 매일 죽을 생각만 하던 엄마가 죽고 나자 나는 할 말을 잃고 할 일도 없다.


말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생각이 모이고 모이면 말이 된다. 꾹꾹 눌러 담은 생각이 말이 되는 순간 말은 단단하고, 빠르고 누구보다 힘이 세다. 말이 없는 사람은 무겁다. 말은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제 무게를 안다. 엄마의 말은 엄마에게는 무겁고 두려운 말이었지만, 들을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는 하소연이고, 투정이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엄마는 없고 말만 남았다. 종일 주변을 맴도는 말을 잡으려 얼굴을 때려보지만, 빠르게 도망쳐 사라지는 말들. 말. 말. 말. 이 넘치고 있다. 중중거리며 돌아다닌다. 한여름 모기 쫓듯 습관처럼 휘두르는 팔은 모기하나 잡지 못한다. 


골목 안쪽에 치매할머니가 사는데, 보호자가 찾아올 때만 대문이 열린다. 할머니는 마당을 서성거리다 골목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대문에 바짝 붙어서 "문 좀 열어주세요."라고 말한다. "거기 누구요. 문 좀 열어봐요. 저기요. 저기 사람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문 좀 열어보라고. 야 이 개새꺄. 네가 문을 안 열어? 어? 빨리 열어. 씨*놈아. "처음에는 부탁하듯 정중하게 말했지만, 아무 대꾸도 없자 대문을 흔들며 점점 소리를 높인다. 그러다 발자국소리가 사라지면 마당을 서성이며 대문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부엌문을 열면 치매할머니의 마당이 보인다. 할머니가 종일 안 보이면 혹시?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밖에 나와서 동네가 떠나가게 욕지거리를 하면 내일 비가 오려나. 중얼거린다. 할머니의 증상은 기분과 날씨에 따라 오가락 가락 하는데 어떤 날은 그게 꼭 내 모습과도 같아서 자꾸 눈이 간다.


혼자 하는 말은 공허하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모진 사람은 없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목이 아프다. 아플 걸 알면서도 목청을 높이는 건 제발 내 얘기를 들어달라는 뜻이다. 치매할머니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도둑을 잡고, 돈 떼어먹고 간 사촌을 찾으러 다닌다. 누군가 어마어마하게 잘못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잡지 못해 할머니는 독이 잔뜩 올랐다. 


 가끔 오는 아들은 모른다. 할머니가 혼자 있을 때 어떤 모습인지 나와 옆집만 알고 있다. 아들은 대문을 바꾸고 도어록을 설치했다. 할머니는 새벽에 사람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대문을 두들기고 현관문을 발로 차며 거기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 빨리 나오라고 했다. 새벽 4시부터 아무도 없는 골목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지치지도 않는 할머니 때문에 갓난아이가 깨고, 아이들이 무섭다며 울었다. 몇 번 경찰이 왔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늙어서 치매할머니처럼 욕하고 다니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묻는다. 아이들은 엄마는 지금도 욕을 잘한다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만, 듣고 싶은 대답을 듣지 못해 가슴이 서늘했다. 



말이 씨가 된다라는 문장을 칠판에 쓰고, 오며 가며 읽는다. 건강하고 튼튼한 싹이 나오게 고운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부정적이고 비난하는 말대신 긍정적이고 예쁜 말이 나오게 말의 씨를 뿌리며 기도한다. 외로움이 나를 갉아먹고, 궂은 기억이 나를 장악하지 않기를 경계한다. 좋은 기억을 적금하듯 모은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들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봉합하고,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 추억은 말만큼이나 힘이 세다. 말의 씨앗은 자라서 튼튼한 관계의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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