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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Oct 09. 2024

미용실에 가는 이유

-무서운 단발병-

머리를 잘랐다. 귀밑 3센티로 숱을 많이 쳐서 볼륨감 있게 잘랐다. 똑떨어지는 짧은 단발을 원했지만, 오랜 단골인 미용실 원장님이 말렸다. 숱이 적고, 머리카락에 힘이 없어서 안 된다는 말에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전문가의 말은 듣는 게 좋다. 그나마 나이에 비해 흰머리가 없어서 다행이에요. 저는 염색 안 하면 흰머리천지예요. 나보다 두 살이 적은 원장님이 풀이 죽은 나를 거울로 보며 위로를 건넸다. 그건 그래요. 



 지난 7월 나는 염색이 빠진 긴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거울을 볼 때마다 머리가 거슬렸다. 원장님한테 잘라 달라고 해도 앞으로 계속 짧은 머리를 할 텐데 그냥 기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안 그래도 얼굴이 쳐지는데 머리까지 늘어진 게 볼품없었다. 갱년기즈음이라 그런지 갑자기 살이 5킬로 찌면서 뭘 입어도 어떤 머리를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살 빼는 건 시간과 공이 걸리니 애꿎은 머리 탓만 했다.



 그때, 친구를 만났다.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친한 친구인데, 아들이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전학 왔다. 등교시킨 후 바로 출근하는 친구는 볼 때마다 잘 갖춰 입고 있었다. 반면 나는 집에서 청소하거나 설거지를 끝내고, 허둥대며 선크림을 겨우 바를까 말까 하고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학교에 간다.  부스스한 머리에 편한 옷차림인 나와 달리 투피스나 원피스를 입고, 단정하게 세팅된 머리를 한 친구는 내가 봐도 멋있고 예뻤다. 부러움이 문제다. 옷은 출근 때문에 그렇다 쳐도 머리 정도면 나도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친구에게 다니는 미용실을 물었고, 친구의 소개를 받고, 미용실에 가서 친구의 이름을 대며 친구와 같은 펌을 해 달라고 했다. 원장님은 친구의 머리는 머리카락이 굵고 숱이 많아서 컬이 잘 나오지만,  내 머리는 어떨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클리닉을 5번 정도 하면 좀 나아질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만 미끼를 덥석 물었다. 그렇게 할게요. 그 후,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머리를 자르고, 세팅을 하고, 클리닉을 네 번 했다. 일 년에 한두 번 미용실에 갈까 말까 했던 내가 석 달 사이에 미용실을 6번을 갔다 왔다. 덩달아 지출이 어마어마했지만, 나를 위한 투자가 오랜만이라 감수하기로 했다. 사실 기분도 좋았다. 그동안 아끼며 살았는데, 이 정도도 못 해? 하는 마음과 예쁜 머리를 하면 나도 조금 괜찮아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컬이 풀린 것 같다고 했더니 미용실에선 내가 드라이를 잘 못 한다고 했다. 말하는 대로 했다고 하니, 머리를 감고 나서 에센스를 듬뿍 바르라고 했다. 잘 바르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네 샵에서 쓰는 게 아니라 그럴지도 모른다고 했다. 클리닉을 갈 때마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나는 도무지 어디가 좋아진 지 몰라서 답답했다. 

 시간과 공을 들였는데 도무지 티가 나지 않았다. 하나 안 하나 비슷할 거면 뭐 하려 하는 걸까? 미용실에 갖다 바친 돈이면 우리 아이들 소고기를 실컷 먹였을 건데. 돈도 시간도 아까웠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혼자 낑낑거렸다. 그럴수록 머리카락은 부스스해지고, 열심히 꼬으며 말려봐도 컬은 풀려서 정신없었다.


 

나는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한 때 나의 방황을 사과하며, 원장님에게 머리를 좀 어떻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예쁜 원장님은 그럴 수 있다는 말로 내 마음을 풀어줬고, 아직 컬이 남아 있으니 짧은 단발을 하자고 권했다. 나는 원장님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내가 뭘 알겠는가. 예전에 했던 머리들은 그때나 어울렸던 건데, 지금의 머리상태는 생각도 하지 않고, 혹은 받아들이지 않고 미용실 탓만 하는 나인데.



-이렇게 머리 자르면 시원하죠?

-그럼요. 그래서 사람들이 미용실에 오는 거잖아요

-아니, 손님 말고 원장님이

-아, 저요? 가위질을 싹둑싹둑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긴 해요

-저도 예전에 화났을 때 낡은 걸레를 잡고 쭉 찢었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우리 나이에는 뭔가를 치는 운동이 좋대요. 배드민턴이나 골프 같은

-저는 요즘 그렇게 권투가 배우고 싶어요

-저도요.



미용실에 오길 잘했다. 긴 머리를 좋아하는 남편은 날 보더니 진짜 별로라고 하고, 막둥이도 덩달아 엄마는 긴 머리가 어울린다고 머리 길 때까지 미용실에 가지 말라고 한다. 아들에게 긴 머리가 좋아? 짧은 머리가 좋아?라고 했더니 둘 다 별로. 나는 빡빡이 좋아라며 22년 전 남편과 똑같은 대답을 했고, 중2인 큰 딸은 뭐 나쁘진 않네요.라는 말과 동시에 방에 들어갔다. 



 그래도 나는 좋다. 훨씬 가볍다. 머리가 짧아졌으니 몸도 가볍게 만들어야겠다.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문처럼 외우지만, 보이는 것이 가끔은 마음까지도 좌지우지한다는 걸 알고 있다. 뭐가 됐든 등을 쭉 펴고 나만의 스타일대로 살아가는 내가 되자. 오늘도 다시 한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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