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를 보고 느낀 점
때론 심사 위원이 되어 가끔은 출연자처럼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의 꿈은 요리사다. 원래 꿈은 제주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을 직접 따서 요리하는 것이다. 장래희망난에는 해남(물질하는 남자)과 요리사라고 적었다. 여름이면 제주 앞바다에서 잠수하며 해남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영화 <밀수>를 보고 난 후, 상어의 존재를 알았고, 겁이 많은 아들은 그렇게 좋아하던 바다도 해남의 꿈도 포기했다. 나는 아들의 꿈이 좀 더 컸으면 한다.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깨지며 꿈이 점점 작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꿈은 크고 거창하고 멋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초등학교 6학년 때 꿈은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이었다.
아들의 꿈이 요리사라고 할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요리사는 언제든 될 수 있으니 일단 공부먼저 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가 백종원처럼 성공한 요리사가 되라고 했다가 서울대 나온 요리사는 어때? 라며 아들의 꿈을 끊임없이 왜곡시켰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요리사를 셰프라고 부르고, 유명 음식점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가지만, 옛날 사람인 내게 요리사는 여전히 음식을 하는 사람이다. 성공하면 맛있는 요리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을 텐데 굳이 요리사가 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매일 삼시세끼 밥 하는 사람에게 남이 한 음식, 밖에서 먹는 요리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내게 주방은 그다지 매력 없는 곳이다.
그렇지만 아들의 꿈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꿈은 커가면서 변할 수 있는데 미리 꺾어서 아들과 사이가 틀어질 필요는 없다. 일단 너의 꿈은 응원하마. 대신 서울대 (여기서 서울대는 좋은 대학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다. 아들이 아는 유일한 대학이다.)나온 요리사가 되자. 똑같은 요리를 해도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 대우가 달라지는 것이 세상이니 일단 너의 실력을 키워라. 이 정도에서 합의를 봤다.
방학하고 아들이 제일 하고 싶었던 건 <흑백요리사> 시청이었다. 하도 간절하게 말해서 궁금증이 생겼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하루에 한 편씩 봤다. 나중에는 결과가 너무 궁금해서 두 편을 연달아 봤다.
<흑백요리사>는 맛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는 재야의 고수 '흑수저'셰프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려 치열하게 맞붙는 100인의 요리 전쟁이다. 흑백의 옷을 입고 대결구도를 벌이는 것,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내기 등 흥미진진한 요소가 많아서 인기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시간을 들여 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그만 아들만큼이나 우리 가족은 <흑백요리사>에 푹 빠져 버렸다. 아빠는 참가자들이 만들어내는 요리보다 심사위원들이 눈을 감고 먹어도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무슨 맛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며 감탄했다. 역시 고수는 고수라며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에 귀 기울였다. 큰 딸은 미국에서 온 "에드워드 리"에게 빠졌다. 그가 더듬더듬 한국말로 요리를 설명할 때는 어눌해 보이지만, 요리를 시작하면 놀라울 정도로 집중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했다. 막둥이는 스테이크 요리만 나오면 한 번 먹어보고 싶다고 하며 침을 흘렸다.
탈락자가 계속 나왔다. 경합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최선을 다했는데 누군가는 올라가고, 어떤 이는 떨어지는 건 하는 사람만큼이나 보는 사람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내가 응원한 사람이 조금 더 잘하길 바라고, 나름 심사위원의 눈으로 요리하는 과정과 결과물을 본다. 그렇게 빠져 들 때쯤 100명의 도전자는 8명이 되었다.
한 명이 인생요리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결승전에 먼저 올라갔다. 남은 7명은 '무한요리지옥'이라 명명한 요리대결에서 두부를 갖고, 30분에 한 번씩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오로지 두부만을 가지고 새롭고 맛있는 요리를 만든다. 집중력과 창의성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재료가 같고, 시간이 짧으면 메뉴가 겹칠 텐데 어떻게 판단할까? 사람의 입맛은 지극히 주관적인데, 아무리 백종원과 안성재라고 해도 참가자나 시청자가 납득할만한 심사기준이 있어야 했다. 심사위원들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준은 정하고 그에 맞춰 심사를 시작했다.
1. 주재료 두부의 활용도. 두부를 어떻게 썼냐, 두부의 맛이 나냐. 두부를 넣은 요리냐, 두부 요리냐.
두붓국에다 김치를 놓은 거냐, 김칫국에 두부를 넣은 거냐.
2. 창의성 : 뻔한 음식이 나오면 안 된다.
3. 완성도 : 두부와 다른 재료들이 합쳐졌을 때 완성도가 높아야 한다.
그때부터 나는 노트를 가지고 와서 심사위원들이 하는 말을 적었다. '요리무한지옥'에서 제일 먼저 탈락한 백수저가 만든 두부요리에는 고 급 식재료인 샤프란과 맛있는 양갈비가 들어 있었다. 그가 만든 요리는 훌륭했지만 아무리 맛있는 요리라도 두부가 주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심사기준에 미흡했다. 두부쑥갓무침은 맛있었지만 평범했고, 한껏 멋을 부려 튀긴 두부요리에선 두부맛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최고의 셰프들이 한 두 명씩 탈락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쓰는 글은 어떤가를.
'무한요리지옥'에 빠지지 않고, 결승전에 먼저 올라간 참가자가 경쟁자를 이긴 음식은 어렸을 때 할머니가 만들어줬던 게국지와 자신의 특기인 스파게티를 합친 요리였다. 할머니와의 추억이라는 좋은 스토리에 완벽한 맛이 더해진 것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를 글쓰기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의 요건은 문체와 구성이다. 독자들이 빠져들 수 있는 완벽한 구성 안에서 스토리가 탄탄하게 진행되고, 그것을 표현하는 문체가 좋으면 몰입의 강도가 세진다. 아무리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진행돼도 문체가 버벅거리면 읽기 싫다. 반대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문장은 읽기는 편하지만 뻔한 스토리 때문에 지루하다. 질린다.
글을 쓰는 건 고단하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글 쓰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다 힘들다. '무한요리지옥'을 끝낸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조금 재밌어요. 요리사는 이렇게 끝까지 싸워야 해요."
한 재료를 가지고 다양한 요리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상황을 불평하지 않고, 재미있다는 표현을 써가며 자신의 모든 능력을 갈아 넣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식자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서 남들과 다른 요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 쓰고 싶었던 거라는 탄식이 나올 때가 있다. 선배작가들이 이미 다 써버려서 더 이상 쓸 것이 없을 것 같아 조바심이 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가는 계속 소설을 쓴다. 소재는 같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건 작가마음이다. 똑같은 두부를 두고 삶을지 으깰지 튀길지 결정하는 것처럼 작가라면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창의성을 발휘해서 글을 써야 한다. 한 방울도 안 나올 때까지 비틀고 짜야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갈아 넣어야 후회가 없다. 끝낼 때를 아는 건 자신뿐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엄마인 나는 요리대신 글쓰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노동이고, 힘들었다. 그렇지만 <흑백요리사>를 보며, 음식도 글쓰기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면 좋겠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말이 생긴다. 겨울방학 동안 세 남매를 케어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아이들을 뽕그랗게 먹여서 기분 좋게 만드는 일도 글 쓰는 것만 큰 중요하다.
잘 먹은 아이들이 방에 들어가 제 할 일을 하는 동안 글을 쓴다. 생각했던 것을 글로 옮긴다. 할 일을 했을 뿐인데 하고 싶은 일을 덩달아 마칠 수 있었다. 시간이 꼼꼼하게 흘러간다.
사족 : 아이들이 먼저 아침밥을 먹고 나면 남편의 아침상을 차린다. 삶은 달걀 세 개와 올리브유에 구운 미니 토마토, 단호박과 삶은 양배추는 남편이 정한 아침메뉴다. 그전에는 아이들과 같이 먹지 않는 남편이 미웠는데 이제는 남편을 안성재다 생각하고 심사받는 마음으로 접시에 예쁘게 담아 갖다 준다. 단호박에 올리는 플레인요구르트에 잔뜩 멋을 부린다. 남편이 웃었고,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기분이 달라진다. 그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