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찾아서

백일 글쓰기 No.1

by 레마누
내 안에 열정이 있다는 건 내 안에 그것을 이룰 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랄프월도 에머슨-


22년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면서 닉네임을 지을 때 기존에 있던 넥네임을 유지할 것인지 새로 지을 것인지 고민했다. 2011년 육아블로그를 해 볼까? 답답한 마음을 글로 풀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하지만 글을 자주 올릴 수 없었다. 큰 딸은 예민하고 까칠했고, 초보엄마였던 나는 늘 불안했다. 아이가 울면 나도 따라 우느라 바빴다. 겨우 익숙할 만하면 둘째, 셋째가 생겼다.


마흔에 셋째를 낳고 보니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늘어진 얼굴, 거친 머리카락, 퉁퉁 부은 손가락, 입만 열면 짜증을 내는 평범한 대한민국 아줌마가 바로 나였다. 친구들은 이미 아이들을 다 키워서 자유롭다는데, 나는 기저귀도 떼지 못한 막둥이를 데리고 다니느라 힘이 들었다.


아이들은 이뻤다. 결혼 7년 만에 기적처럼 큰 딸을 얻고, 줄줄이 사탕처럼 생겨난 아이들은 축복이고 감사였다. 힘들어도 없을 때를 생각하며 참았다.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견뎠다. 나를 버리고 오롯이 엄마라는 이름만 기억했다. 그렇게 살아도 될 줄 알았다.


블로그에서 내 닉네임은 "수선화"였다. 나는 길가에 홀로 핀 수선화를 좋아한다. 쭉 뻗은 곧은 잎사귀도 노란 꽃망울도 좋다. 철이 되면 시장 입구에 수선화를 파는 사람이 있다. 빨간 고무대야에 노란 고무줄로 묶인 수선화는 한 다발에 오천 원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시장에 갔다 오는 길에 수선화를 사고 와서 식탁에 놓으면 기분이 좋았다.

출처 : 네이버


그런데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려고 보니 "수선화"라는 이름이 내키지 않았다. 예쁘고 좋지만 청승맞아 보였다. 수동적인 삶은 현실만으로 충분했다.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에서는 누구의 엄마, 아내, 딸이 아니라 오롯이 나이고 싶었다.




내게는 "소설가"라는 꿈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가슴을 맞은 듯 충격을 받은 후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꿈이었다. 제주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세상은 상상 속에 있는 곳이었다. 답답할 때마다 바닷가에 앉아 바다 너머 세상을 꿈꿨다. 머리 위를 지나가는 비행기를 올려다보며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상상했다.


세상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고, 베토벤의 생가도 방문하고 싶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신년음악회에 고운 옷을 입고 앉아 있는다. 순례의 길을 걷고, 몽골 사막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고 싶다. 토지의 배경이 되는 하동리를 둘러보고, 섬진강강가에서 재첩국을 먹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매일 써도 써도 모자랐던 그때는 어른이 되면 다 할 줄 알았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만든 나만의 첫공간


하지만 나는 여전히 꿈만 꾸고 있다. 언젠가 꼭 하겠다고 다짐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는 것보다 당장 편하고 좋은 것만 찾는다.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건 여전히 많다. 고민 끝에 "꿈 많은 베짱이"라는 닉네임이 떠올랐다. 쓰고 보니 딱 내게 맞는 것 같았다.



꿈이 길을 만든다

꿈꾸는 자는 외롭지 않다

꿈속에서 더듬으며 가는 이에겐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

작은 온기를 간직한 채

언제든 타오를 수 있는 힘을 지닌

불꽃은 꿈이다

나의 꿈은 소설가다

나는 소설가가 될 것이다

내가 쓴 소설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준다

나의 노년은 존경받는 소설가로 바빠진다

죽을 때까지

소설을 쓰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난다

잘 쓰고 간다고 원 없이 썼다고 되새기며

꿈이 있는 한

나는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베짱이의 노래-



사족 : 백일동안 글쓰기를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어떤 계획이나 목표도 없었습니다. <엄마의 노트> 북토크를 보고 충동적으로 생긴 마음이 저를 끌고 있을 뿐입니다. 어제 잠자리에 들며 내일 7시 발행에 뭐를 쓸까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지담작가님이 제 꿈을 휘저으며 불씨가 여기저기 번지게 만들었거든요. 마치 짠 것처럼 일기장에 꿈에 대한 이야기를 쓴 날 지담작가님을 만났습니다. 이럴 때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힘들지 않게 살고 싶었습니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어쩌다 책을 냈는데 빵 터지길 바라며 살았습니다. 빵을 먹으며 살이 빠지길 바랐고, 글을 쓰지 않으며 소설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막연히와 우연히를 친구처럼 데리고 다녔습니다.


저는 이제 오랜 친구를 버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었습니다. 착실히 와 부지런히입니다. 사는 동안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어서 제 맘 속에 그런 친구들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한 번 만나보려 합니다. 애타게 부르면 제 손을 잡아주지 않을까요?


새로운 친구들이 제 꿈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줄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꿈은 잘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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