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는 게 제일 어려워

백일 글쓰기 No.2

by 레마누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언니, 내가 웃긴 얘기 해 줄까?

-우리 철수가 기말고사를 보는데, 수학이 왠지 백점 맞을 거 같았대.

-수학 잘하는구나

-아니 그냥 다른 아이들만 해. 철수네 학원은 성적별로 A, B, C반으로 나누거든. 철수는 원래 A반이었는데 저번 시험을 못 봐서 B반으로 내려갔어. 근데 이번에는 올라갈 거 같은 거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알아?

B반 선생님이랑 아이들한테 미리 인사를 했대. 자기는 A반으로 올라간다. 잘 지내라. 이렇게

-시험도 안 봤는데?

-그러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어?

-수학시험을 보는데 백 점 맞을 생각만으로 가슴이 너무 뛰었대. 시험 끝나고 나서도 하나 정도 애매한 거 빼곤 다 잘했다고 했는데 결과는 어땠는지 알아?

-90점?

-아니, 84점. B반에 계속 다녀야 돼.

-그게 뭐야.

-그러니까. 철수가 항상 그래. 조금만 하면 잘 될 거 같다고 하면서 김칫국 먼저 마셔. 수학 백점을 맞겠다는 아이가 공부 한 시간 하면 게임 세 시간이 말이 되냐고. 다른 얘들이 놀 때 공부해도 될까 말 깐데. 놀 거 다 놀고, 공부는 언제 하냐고요. 그러면서 머릿속에 허영만 가득해서 자기 수학 잘한다고 막 자랑하고 한다니까 정말 웃겨 죽겠어. 누구 닮았는지 몰라. 성실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어. 우리 철수는.


오랜만에 만난 동생에게 조카 얘기를 들었다. 들을 때는 깔깔거리며 웃었는데, 집에 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철수가 큰 이모를 닮은 것 같다. 글을 쓰며 수학이란 단어대신 글쓰기를 집어넣었더니 딱이다. 글 한 편 썼다고 작가가 된 것처럼 으쓱하고, 공모전에 보낸 것만으로 시상식에 입을 옷을 고른다. 수상 후를 생각하느라 정작 글을 쓰지 못할 때도 있다.


학원에 다니니 웬만한 수학문제는 다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은 더 어려운 문제 앞에서 맥을 못 춘다. 이 정도면 됐다고 혼자 생각하고 만족하면 84점에서 끝난다. 목표가 어디냐에 따라 84점은 누군가에게는 높은 점수가 될 수도 있지만 어떤 이는 좌절할 점수다.

나는 백점을 목표로 해 본 적이 없다. 학교 다닐 때도 90점만 넘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기를 쓰고 공부할 바에는 책을 읽는 게 좋았다. 기준치가 낮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행복했지만, 뭔가 찝찝했다. 조금만 더 잘하면 될 것 같은데. 하는 말을 들어도 더 나가지 않았다. 적당한 노력은 적당한 결과를 준다.


나는 그렇게 살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나를 닮지 않길 원한다. 엄마로서의 이기적인 생각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 약속했다. 뭘 시켜도 고급반까지 가겠다고. 항상 중급반에서 이 정도면 됐어. 하고 그만두던 내가 아이들은 기를 쓰고 고급반까지 올려 보냈다. 발레도 피아니도 태권도도 한번 시작하면 최소 6년이다.



그릿(Grit) : 투지, 집념, 불굴의 의지 등을 모두 아우리는 개념. 열정이 있는 끈기,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정진할 수 있는 능력




나에게는 그릿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그릿"을 배웠으면 좋겠다. 막연하게 강요만 해선 안 된다.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 나는 세 아이의 엄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도 나처럼 중급반에서 끝난다. 그렇게 놔두고 싶지 않다. 나란 인간은 한없이 약하지만, 세 아이의 맘은 천하무적이다. 아이를 양 옆에 안고 한 명은 잡아끌면서 달려야 한다.


그렇게 나는 변하기로 마음먹었고, 좋아하면서 오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이제 나는 글쓰기를 통해 매일 성장한다. 성공이란 당장 어떤 결과물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될 때까지 탁월성을 추월하는 것이다. 지금 브런치에 글 한편을 썼으니 나는 아침부터 성공이다. 기분이 참 좋다.


사족 : 5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두 편을 서랍으로 보냈습니다. 어제 쓴 글에 많은 격려를 주셔서 제가 고무됐어요. 글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미성숙한 제게 칭찬은 어깨에 힘만 들어가게 만듭니다. 골프도 수영도 힘을 못 빼서 그만두었는데, 글쓰기는 계속하고 싶으니 일단 힘 빼는 연습을 더 해보겠습니다.


작가님들 오늘도 성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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