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글쓰기 No.10
진정한 긍정이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중 -
처음 뜨개질을 배운 건 결혼하고 얼마 후였다. 신혼의 단꿈이 깨기도 전에 임신을 했고, 기쁨을 알아차릴 새도 없이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종일 누워서 울기만 했다. 남편은 호의를 베풀듯 친정에 가서 쉬다 오라고 했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다 싫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세수를 했다. 천천히 로션을 바르고 옷을 챙겨 입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걸었다. 목적지도 없이.
다닥다닥 붙은 문방구와 미용실을 지나고, 횡단보도를 건넜는데, 문 앞에 몇 명의 사람들이 등을 구부리고 앉아 뭔가에 몰두하는 게 보였다. 저 안은 따뜻하겠구나. 서로의 어깨를 붙이고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놀리다 보면 내 안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슬픔도 희미해지겠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람들이 손을 멈추고 잠깐 쳐다보다 다시 움직인다. 나는 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뜨개질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고 했더니 뜨개방선생님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했다.
-뭘 만들고 싶으세요?
-카디건요.
겨울에 절에 가면 하얀 실로 짠 전통무늬카디건을 입은 할머니들이 많이 보였다. 불공할 때마다 앞에 앉은 할머니가 절하는 것을 본다. 공손히 손을 모으고 천천히 몸을 굽혀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에는 어떤 경건함이 묻어 있었다. 겪어낸 시간과 일들이 많은 사람에게 나오는 진중함과 간절함을 본다. 나이가 들면 전통무늬카디건을 입고, 절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검은색으로 할게요.
예나 지금이나 나는 무모하고 생각이 없다.
뜨개질의 기본인 안뜨기, 겉 뜨기도 모르면서 다이아몬드와 꽈배기와 좁쌀무늬가 현란하게 들어간 옷을 뜨고 싶었다. 눈도 안 좋으면서 하필이면 검은색 실을 선택했다. 이왕에 하는 김에 잘하고 싶었다. 할 때는 힘들지만 입으면 예쁜 검정 카디건이 갖고 싶었다. 기본기는 없으면서 기준만 높았다. 처음부터 무모한 도전이었다.
9시에 뜨개방이 문을 열면 첫 손님으로 가서 5시에 돌아왔다. 선생님과 다른 분들과 점심을 먹으며 뜨개질을 했다. 백조로 변한 12명의 오빠에게 줄 조끼를 뜨는 공주처럼 말없이 바느질만 했다. 그때는 그렇게 해야 살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뜨개질을 하면 어깨가 빠질 것처럼 아프다. 그러면 누워서 손을 움직였다.
무모하고 맹목적으로 전통무늬카디건 뜨는 것에 집중했다. 100 사이즈의 남자카디건을 떠서 남편에게 선물하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나는 오로지 그것만 생각했다.
그렇게 뜨개질을 하던 어느 날 실이 엉켰다. 실타래를 살살 풀면서 뜨개질을 해야 하는데 무늬가 틀려서 풀고 다시 감아서 뜨다 보니 어느 순간 실이 엉킨 것이다. 짧으면 잘라서 이으면 되는데 실 한 타래가 다 엉켜서 자를 수도 없었다.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실들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복잡하게 엉켜있는 실들도 처음과 끝이 있다. 그것만 찾아내면 된다. 쉽게 찾아내면 문제가 아니다. 복잡하고 단단하게 꼬여있는 실들을 하나씩 잡아당겨보면 처음실을 찾을 수 있다.
인내심이 필요했다. 성질 급한 나에게 없는 그것만이 사건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빠르고 강한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다. 천천히 들여다보고 공을 들여야 풀리는 것들이 있다.
실을 뜨고 잘못 뜨면 풀어서 다시 뜨기를 반복했다. 둥그렇게 말아진 실타래에서 가는 실이 나온다. 바늘 두 개를 부지런히 움직여 모양을 만든다. 한 줄을 뜨면 딱 한 줄만큼의 무늬가 생긴다. 만들고 싶은 것은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갖고 싶으면 한 줄 한 줄 뜨는 것밖에 방도가 없다.
뜨개질을 하다 보니 답답했던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결혼생활의 낯섦과 유산으로 인한 분노와 원망으로 응어리진 마음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은 순간이지만, 평생 살아가려면 조금 더 현명해질 필요가 있었다.
결혼 7년 동안 3번의 유산을 겪으며 나는 많은 옷을 떴다.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바늘을 잡았다. 남편에게 처음 선물했던 전통무의 검정카디건을 시작으로 남편과 똑같지만 밤색의 내 카디건, 남동생이 교복남방 위에 입을 남색조끼, 가볍게 걸칠 카디건 등등을 뜨며 천천히 자신을 단련시켰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풀기 위해 뜨개질을 하다 보니 어느덧 마음속이 텅 비어 있었다. 그때 소중한 아이가 찾아왔다.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실과 디자인을 골랐다. 내 아이가 입을 거라고 생각하고 좋은 캐시미어를 선택했다. 아이들은 금방 큰다고 하지만 딱 그 순간만큼이라도 예쁘게 입히고 싶었다.
셋째가 태어나면서 뜨개질은 끝이 났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뜨개질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음에 응어리가 질 시간이 없었다. 속상하다가도 까르르 소리에 녹아내린 적도 있었다.
지금도 뜨개방을 지날 때면 문을 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찬바람이 불면 니트옷을 꺼내듯 본능적으로 나는 포근하고 따뜻한 것에 끌린다. 아직은 아니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는 요즘이다.
20년 전에 뜬 나의 첫 카디건은 작은 동생네 집에 있다. 남편은 자기는 니트옷이 안 어울린다며 입지 않았다. 어느 날 집에 놀러 왔던 동생이 예쁘다고 하길래 줬다. 제부는 지금도 겨울이면 그 옷을 잘 입고 다닌다. 아무리 좋은 옷도 안 입으면 소용이 없다. 누구라도 잘만 입어주면 감사한 일이다.
두 번째 짰던 밤색카디건은 엄마가 입었다. 엄마가 따뜻하고 예쁘다며 탐을 냈다. 그때 생각에는 또 뜨면 되니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기꺼이 엄마에게 드렸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물건을 모두 태웠다. 그때 카디건도 태웠다. 다른 건 다 생각이 나지 않는데 그 카디건을 태운 건 후회한다.
꼬여 있는 일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생각하다 보니 예전 일들이 떠올랐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중심이 있는 일들이 서로 엉켜 있다. 짜증이 나서 쳐다보지 않고 살았다. 그렇게 살아도 살아졌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언젠가 풀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마음이 불편했다.
옷장정리를 하다 오래전 뜨개질로 만든 옷들을 꺼내봤다. 옷 하나에 하나씩 사건들이 따라왔다. 그래, 그때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 힘들었지만 지나갔어. 맞아. 이거 뜰 때 나 이랬는데 저 사람이 그랬지. 그렇지만 지나갔어. 그렇다면 지금 닥친 이 일도 지나간 일이 되겠지. 지금 잘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다른 옷을 뜰 수 있다. 오랫동안 공을 들여야 할 일이다.
사족 : 지담작가님의 글을 읽다 뜨개질로 만든 옷 얘기에 맞아. 나도 같은 마음이었는데, 하며 옷장을 뒤졌습니다. 글 소재를 주신 지담작가님 감사합니다. ^^
설날 아침입니다. 저는 오늘도 며느리모드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숙제를 끝내니 홀가분합니다. 아이들이 세뱃돈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작가님의 라이킷과 댓글이 세뱃돈보다 더 반갑고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