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글쓰기 No.11
읽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을 가장 좋아하지만, 인문학과 역사, 전쟁이야기, 고전도 좋다. 달달한 사랑시도 좋고,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에세이도 좋다. 가끔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자극받는다. 안중근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라고 했다. 나는 입에 가시가 돋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눈이 나쁘다. 어렸을 때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9시만 되면 집안의 불을 다 끄고 잤다. 소설 속에 빠져 있던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만났을까? 알았을까? 어떻게 할까? 아무리 자려고 해도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에잇 하고 일어나 초를 켜고 읽었다. 정말이다. 불빛이 새나가지 않게 조심하며 촛농이 책상에 떨어지지 않게 접시 위에 놓고 책을 읽었다. 10살인 나는 항상 눈이 침침했다.
담임선생님은 엄마에게 시력검사지를 보여주며 안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엄마는 여자가 안경을 쓰면 얼굴이 망가진다고 하며 책을 읽지 말라는 말을 처방전 내리듯이 말했다. 엄마의 잔소리도 뻑뻑한 눈도 소설의 재미를 막을 순 없었다. 뜨거운 물수건을 눈에 올려놓고 잠시 쉬어가며 책을 읽었다. 내가 안경을 맞춘 건 앞에 앉아도 칠판 글씨가 안 보였던 6학년때였다. 전교생 중에 안경을 쓴 학생은 나뿐이었고, 그건 엄마에게 부끄러운 일이었다.
쓰는 것을 좋아한다. 문방구를 제 집 드나들듯 했다. 만지면 촉감이 좋은 노트를 고르고, 술술 잘 써지지만 너무 부드럽지 않은 볼펜과 색이 선명한 형광펜, 칠하면 예쁜 색연필을 구경한다. 돈은 항상 부족했고 예쁘고 좋은 것들은 비쌌다. 돈이 있는 날은 문방구까지 날아서 갔다.
종이에 사각사각 써 내려가는 순간을 좋아한다. 중학교 때부터 부지런히 연애편지를 썼다. 첫사랑이자 짝사랑이었던 오빠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쓸 때는 마치 비극의 여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친구들은 항상 연애를 했고, 편지 써 줄 사람이 필요했으며 나는 연애편지 전문이었다.
노트필기를 좋아한다. 잘했다. 수업을 듣지 않고 노트정리하는데 집중했다.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쓰는 게 중요했다. 영어단어를 외운 연습장을 보고 친구가 가져가 편지지를 쓴다고 해서 찢어줬다. 글씨 크기를 맞추고, 색볼펜을 사용하고, 줄이 없는 백지에도 줄을 맞춘 듯 가지런하게 썼다. 영어성적은 낮았다. 예쁘게 쓰기에만 집중해서 외울 시간이 없었다. 연습장을 열 장 채우면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이 뿌듯했는데, 성적은 한 번도 좋아본 적이 없다. 내가 한 건 공부가 아니라 색칠공부이자 받아쓰기였다.
지금도 읽고 쓰는 걸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곳은 여전히 문방구다. 예전과 달리 화려하고 예쁘고 다양한 문구들이 가득 차 있는 그곳이 좋다. 채워나갈 글들을 기다리는 노트와 알록달록한 볼펜을 사면 빨리 쓰고 싶어진다. 그래서 쓴다.
책을 읽고 쓴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베껴 쓴다. 소설을 읽고 나면 작가의 말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인다. 책 속에 있는 멋진 문장들을 노트에 쓴다. 브런치에서 읽은 좋은 글들, 블로그에서 알게 된 것들, 뭐든 좋아 보이는 문장들을 쓴다.
그리고 끝이다. 쓰고 나면 다시 보지 않는다. 책도 공책도. 반복이다. 읽고 쓰고 잊어버리고 다시 읽고 감동받고 또 쓴다. 이런 바보 같은 생활을 지금까지 했다. 하면서 뭐라도 된 것 마냥 우쭐거렸다. 하는 것에 집중할 뿐 정작 내 것으로 만들어본 적이 없다.
책을 읽고도 내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다. 다른 사람의 글을 받아쓰기만 할 뿐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니 발전이 없다. 나는 그동안 글쓰기가 아니라 글씨 쓰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당황스러웠다. 이 정도 책을 읽고, 이렇게 많이 받아썼으니 이제 됐겠지. 싶었다. 쓰기만 하면 나만의 글이 줄줄줄 나올 줄 알았다. 소설가들은 대부분 소설을 좋아해서 소설을 많이 읽다가 소설가가 됐다는데, 그렇다면 나도 쓸 수 있는 거잖아.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았다.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지만, 돌아서면 끝이었다. 토지와 소나기를 필사하며 문장을 익혔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끝내지 못한 것보다 해 본 적이 있다는 걸로 위안 삼았다. 감상적이고 늘어지는 문장을 고치기 위해 김훈의 소설을 모두 읽었다. 예전에 쓴 글과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불필요한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읽은 후에 생각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면 국어공부하듯 샅샅이 책을 읽어야 한다. 술술 넘어가는 책은 술술 써지는 글보다 더 위험하다. 목적을 갖고 쓴 책에서 목적을 찾지 못하면 읽은 것이 아니다. 책을 읽어도 변한 게 없는 건 변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혹은 크게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기에 예전방식을 고수한다. 고집불통이다.
책을 혼자 읽어서 그렇다. 혼자만의 우물에 갇혀 혼자 울고 웃었다. 인간을 이해하는 소설을 쓰겠다고 하면서 타인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 내가 말할 테니 잘 들어봐.라는 식이다. 마치 명절날의 38년생 우리 시어머니 같다. 독불장군이었다.
그렇지만 희망은 있다. 좌절하긴 이르다고 나를 타일렀다. 읽고 쓰고 생각하며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제야 고민했고, 용기 내서 신청했다.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새벽에 만나는 독서모임을.
독서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독서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성향에 따라 받아들임이 다른 것인데 독서모임에서조차 정해진 답이 있는 거 같았다. 내가 책을 잘못 읽었으면 어쩌지? 이해하지 못한 거였다면?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동안 쌓아온 나만의 독서법이 있는데 그걸 깨뜨리는 것도 겁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년 전 독서모임에 가입해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블로그에서 만난 이웃들과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독서모임을 통해 평소라면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책들을 만나면 시야가 넓어지는 기분이 든다. 내 감정이 앞서 눈물을 보일 때도 있다. 내 말에 같이 울어주는 사람들도 있다. 아는 게 나오면 신나 서 떠들고 모르면 입 다물어 듣는다. 모임 전에 던져진 질문에 답하려면 생각해야 한다.
쓰다 말고 멈춰서 먼 곳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생각하려고 하는 순간 머리가 얼음이 된다. 땡 해줄 사람이 없다. 혼자 얼음땡을 풀어야 한다. 책을 읽고 쓰고 생각하며 답을 찾아가야 한다. 혼자인 것 같지만 같이 읽으며 고집세고 단단하게 굳은 머리를 말랑하게 만든다.
좁고 어두운 우물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이 소중한 요즘이다.
사족 : 건율원 유튜브 강의를 듣기 위해, 25년 첫 독서모임을 위해 오늘은 예쁜 공책을 사러 갈 예정이다. 생각만으로 신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