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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도 꿈꾸는가

백일 글쓰기 No.9

by 레마누
꿈이 없는 사람은 슬픈 사람이다. 그러나 꿈만 있는 사람은 더 슬픈 사람이다 - 중국명언-



바람소리에 잠이 깼다

꿈에서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여기쯤인데 하며 창밖을 보다

정신없이 내린 후에야 알았다

뭔가 무거운 짐을 들고 내린 나는

언덕을 올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 아이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우린 고3이었고, 시험이 끝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기대치보다 낮은 점수, 맘에 들지 않은 담임, 불투명한 미래를

얘기하며 마음에 들지 않은 모든 것을 끌어와 투덜대는 동안

아이는 대꾸 없이 듣기만 했다

그러다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멈칫

망설이다 손을 잡았다


크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

작고 차갑고 메마른 손을 덮었다


말이 없어진 나는 고개를 돌려

창 밖만 봤다. 살짝 그에게 몸을 기울이고

우리 집이 지나가는 걸 봤다.


꿈에서도 손 잡으면 두근거리고

꿈에서도 좋은 데 아닌 척하고

꿈에서도 시험은 못 보고

꿈에서도 실망하고 속상하고 위로받는구나


잠에서 깨지 않았다면,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면, 그 아이의 손을 조금 더 잡을 수 있었을까.

잠에서 깬 나는 꿈이 그리워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생생하고 현실 같은 꿈은 혼란스럽다. 아는 사람이 나오고, 지나간 일들이 각색된 채 펼쳐지면 꿈에서도 나는 실수하고 후회한다. 꿈도 현실도 똑같이 허술한 인간이다.


밤에도 낮에도 꿈을 꾼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하지 못한 말을 한다. 잠이 깨면 해야 할 일을 하는 틈틈이 하고 싶은 일, 미루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꿈만 꾸는 자에서 꿈을 좇는 자가 되었다. 언젠가 꿈을 이룬 자가 되기 위해 꿈에서 깨어나길 주저하지 않는다. 꿈만 꾸는 자는 종일 잠을 자는 어린아이와 같다. 꿈을 꾸며 까르르거리지만, 꿈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꿈만 꿀뿐이다.


꿈을 좇는 자는 고단하다. 꿈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한 발짝 다가서면 두 발짝 물러선다. 이쯤 하면 되겠지 싶을 때마다 응, 아니야. 아직 멀었어. 한다. 진이 빠지고 넋이 나가 꿈이고 뭐고 다 그만둘래 할 때까지 몰아세우고 다그친다. 숨이 턱이 차 올라야 만날 수 있다.


꿈을 이룬 자는 또 다른 꿈을 꾼다. 새로운 꿈을 끌고 와 꿈을 더 크게 부풀린다. 꿈을 가진 자만의 여유와 성실함으로 꿈들을 단단하게 다진다.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깨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도록 꿈을 완성시킨다.


나는 낮에도 밤에도 꿈을 꾼다. 꿈은 나를 흔들고, 고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꾼다. 꿈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끈 풀린 풍선처럼 정처 없이 올라가는 마음을 붙잡는다. 지금은 꿈에서 깨어나 꿈을 위해 나갈 시간이다.



사족 : 요즘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 한강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가라>를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꿈이 달달합니다. 아침에 글을 쓰고 나면 숙제를 다하고 노는 아이처럼 당당하게 하루를 지낼 수 있습니다.


아닌 척 하지만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작가님들의 알람이 울릴 때마다 혹은 몰아서 확인할 때마다 기분이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 글을 쓰고 며느리모드에 들어갑니다. 종일 전을 부치고 생선굽고, 고기를 구울 예정입니다. 숙제를 마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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