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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May 11. 2023

마당 깊은 집

잡설입니다

처음 어머님을 뵈었을 때 너무 고와서 놀랬다.

38년생인 어머니는 42살에 남편을 낳았다고 했다.



  결혼할 사람이라고 데리고 갔을 때 엄마는 내 팔을 꼬집었고, 말없는 경상도남자인 아빠는 흠흠거리며 담배만 피웠다. 남자 내가 좋아했던 그 모습 그대로 부모님께 다정하게 말했다.



"소영이를 행복하게 해 주겠습니다"



내가 믿었던 건 남편의 그 한마디였다.

그 말 뒤에 생략된 건지 남편이 까먹은 건지 모르는 말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제주도에 내려가서 혼자 계신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시누이 6명 중 4명은 서울에 살지만 2명은 어머니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습니다

어머님은 귀가 안 들리십니다.



결혼하고 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냐고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기로 했다



남편은 다정했고, 시어머니는 귀가 안 들려서 그런지 조용하셨으며, 시누이들은 어린 내게 어머니를 맡겼다는 생각에 미안해서인지 서울에서 내려올 때마다 화장품이니 명품가방을 사고 왔다.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혼자 제사 8번과 설, 추석을 지내야 하는데 그건 요리를 좋아하는 내가 즐기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집안일은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 육지에서는 산만 보고 살았는데 차를 타고 십 분만 가면 바다가 펼쳐지는 제주는 내게 색다른 자유를 선사했다. 나는 인스타 안에서 친구들의 좋아요와 하트의 개수를 세며 매일 사진을 올리느라 바빴다.



딸이 태어나고 시어머니는 점점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머님은 하루종일 누워 있었다. 딸을 데리고 문화센터를 갔다 오고, 딸이 어린이집을 다니고, 유치원을 다녀도 어머님은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다.




시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지었다는 우리 집은 시내 한 가운에 있는 단독주택이다. 마당에 오래된 나무들이 있다. 주변에 건물들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언제부턴가 우리 집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둘러싸여 있었다.




하늘에서 보면 도드라지게 보일 것이다. 주황색지붕에 작은 일층집. 집보다 넓은 마당. 큰 나무들 그리고 나무들 사이에서



어머니가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처음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곱디고운 하얀 한복을 입고 방에서 주무시던 어머님이 일어나 양손으로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기시더니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는 마당 한가운데서 치마를 허리춤까지 걷어올리고 다리를 쭉 벌리고 앉아 오줌을 싸고 있었다.



남편은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을 것이다. 믿고 싶지 않은 마음과는 별도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소식을 들은 시누이들이 달려왔다.



어머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곱게 옷매무새를 다듬으시고는 반듯하게 옆으로 누워계셨다. 교장선생님의 사모님으로 살며 평생 남에게 험한 꼴 한번 안 보이시더니 우리 어머니 불쌍해서 어쩌나. 하는 시누이의 울음소리에 나는 소름이 끼쳤다.



병원에서는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말을 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딸이 학교에 가고 나면 어머님은 누워 계시거나 마당에 나가 오줌을 쌌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자꾸 위를 쳐다봤다.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심었다는 동백나무의 동백꽃이 떨어져 있었다. 떨어진 동백꽃의 붉은색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순간 갑자기 어머니가 치마를 벗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뭘 하는지 몰랐다.



주섬주섬. 서투르고 힘 약한 아이가 뭔가 원하는 게 있을 때 낑낑대듯이 치마에 달린 끈을 찾고 스르륵 풀었다. 치마가 풀썩 땅에 떨어졌다



-어머니

서둘러 어머님께 달려갔다. 어머니는 내 손을 뿌리치더니 기어이 하얀 속바지까지 벗으려고 하고 있었다. 가늘고 하얀 팔에 힘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그날 밤 남편은 잔뜩 굳어진 얼굴로 누나들 6명과 돌아가며 통화를 했다. 아마 시누이들도 저들끼리 계속 통화를 했을 것이다.



어머님을 저렇게 둘 수는 없다. 하지만 요양원에 보낼 순 없다 소영이에게 미안하지만 집이 제일 안전하다

소영이는 무슨 죄냐? 그럼 언니가 내려올 거냐? 작은 언니가 모실래? 묻는 사람은 많았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주황색지붕아래 집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덩달아 붕붕 떠 있었다 마당에선 개오줌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심었다는 단풍나무에 단풍잎이 유달리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어머니는 하얀 한복을 입고 반듯하게 돌아누워있었다. 한복치마의 구김이 홑이불처럼 어머님를 덮고 있었다. 들고 나는 숨도 조용했다.  하늘 파란 날 마당 아래서 옷을 벗을 때 본 어머니의 얼굴은 주름이 하나 없이 해맑은 아이 같았다. 



어머니와 평생 함께 했다는 그 많은 한복들을 정말 좋아서 입었을까? 어머님은 치마끈을 풀어 제끼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무표정하게 한복을 입는 것과 신이 난 듯 바쁘게 저고리를 벗는 모습중 어느 게 진짜일까?



뇌가 회색으로 변한다는데 그 속에서 어머니는 어떤 자유를 찾으셨을까?

아이 때로 돌아가 구속하는 것 하나 없이 홀라당 벗고 나무사이를 뛰어다녔던 기억도 분명 있을 텐데. 어머니가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인 것 같아서 나는 그만 가슴이 먹먹해졌다.


 

마당 한 가운데 서서 고개를 들었다. 동쪽으로 난 길을 빼고 세 곳의 하늘이 막혀 있다. 누군가 한 명은 쳐다보고 있을 것 같았다. 요란하게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잠긴 대문을 쳐다봤다. 팔뚝에 자잘하게 소름이 돋았다.



더 이상 이곳에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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