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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변명입니다.

by 레마누

3박 4일 육지나들이를 준비하며 가장 신경이 쓰였던 건 아이들과 낯선 지하철 타기도 아니고, 에버랜드에서 만나게 될 강력한 추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어떻게든 견딜 수 있겠는데, 4일 동안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 브런치작가님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것. 무엇보다 이번 주 목요일부터 시작하는 "이목구비"수업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지담작가님께 긴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어쩌고저쩌고 해서 며칠 글을 못 쓰게 되었다. 블라블라해서 목요일 수업도 못 들어간다. 그러니까 죄송하고 어쩌고저쩌고. 장황하고 길게 쓰면 아쉬운 마음이 전해질까 하는 마음에 이 정도면 이해해 주시겠지. 하는 기대를 살짝 섞어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여행하고 글쓰기는 상관없는데. ㅎ"

"핸드폰으로 글 쓰는 게 좀 그래서요. ㅜㅜ 에버랜드에서 놀이기구 같이 탈거라."

"새벽, 또는 저녁에 쓰시면 되죠."

"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시면 충분히 나올 텐데."


안 되는 것 먼저 생각하는 사람과 어떻게든 하려는 사람.

방법이 없다고 단정지은 사람과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

빠져나갈 바늘구멍만 찾는 사람과 바늘구멍조차 내지 않는 사람

싸우기도 전에 백기를 드는 사람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

할 수 없다고 미리 포기해 버린 사람과 할 수 없다는 것 자체를 차단한 사람.


그동안 나는 핑계를 정당하다 생각하고 살았다. 타협하지 않아 생기는 갈등이 싫어 미리 포기하고 돌아섰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행동이 미리 겁을 먹었다. 안 된다는 생각만 하다 보니 당연하게 안 되는 줄만 알았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해. 손뼉 칠 줄만 알았지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부러워서 속이 쓰리고, 돌아서며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그러니까 그냥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나를 달랬다. 뭐라도 해 보겠다고 나오는 나를 꾹꾹 눌렀다. 누르고 눌러 찌그러진 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 언제까지 참아야 해?


아이들 때문에, 남편이 있어서, 지금은 못 한다는 말은 비겁한 변명이다. 하려고만 하면 뭐든 가능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멋진 일들은 원래 힘들고 고된 것이다. 우아한 백조의 쉴 새 없는 발놀림을 기억하자.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달라질 것이 없다면 지금 내가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나중에 작가님이 '난 그럴 때도 타협안 했다.'라고 강의 때나 모임 때 언제든 떳떳하게 말씀하실 수 있어요."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래서 못 했잖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건 어려워

만 말하던 사람이

그래도 해 냈잖아. 하니까 해 지더라. 너도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이 된다.


타협하지 않는 사람.

핑계와 변명을 버리고

제 할 일을 해내는 사람.

내가 생각해도 멋진 사람.

그런 사람이 된다. 될 것이다.


그런데 나 내일 갈 수 있을까? 지금 제주는 강풍주의보가 내렸다. 제주의 바람이 나를 잡아버리면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공항에서 오래 기다려야할지도 모른다. 작은 무선키보드를 챙겼다. 기다리면서 글도 쓸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오히려 좋아다.



사족 : 내일 레마누가 어디에 있던 글을 올리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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