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아들이 이불에 엎드려 있다. 아들 졸렸구나. 하며 등을 토닥이는데 아이가 꼼짝을 안 한다. 힘을 잔뜩 주고 있다.
왜 그래? 화났어?
아들... 바로 누워보자..
버티는 사람과 돌리려는 사람. 엄마와 아들의 힘겨루기.
아들은 몇 번 힘을 써 보다가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엄마,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응? 뭐가? 왜 그러는데..”
“사실, 나 정말 안 그러려고 했는데 눈썹 세 개를 뽑았어.”
가슴이 덜컹했다. 얼마 전에 그 난리를 피고 다시는 눈썹을 뽑지 않겠다고 철썩같이 약속했는데, 다시 반복을 해야 하나?
“왜 뽑았는데? 또 간지러웠어?”
“아니. 엄마 나 나쁜 습관이 있나 봐. 머리는 뽑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손이 ..손이 자꾸눈썹을 뽑고 있어. 정말 미안해.”
아들은 말을 마치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내 몸의 반 정도 되는 아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로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약속을 깨뜨렸으니 화를 내고 혼을 내야 하나? 자기가 잘못한 걸 알고 먼저 말을 했으니 용서를 해줘야 하나?
울고 있는 아이를 일으켜 안았다.
“잘못 한 걸 알고 있어?”
“응, 엄마. 나 진짜 안 하고 싶었어. 그런데 눈썹을 뽑게 돼.”
많이 힘들었구나.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진 채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는 기척을 들으며 잔뜩 겁을 먹었을 아이는 지금
이 순간 얼마나 긴장되고 무서울까? 누구보다 따뜻하고 편안해야 할 엄마가 언제부터인가 아이에게는 잘못을 빌고,
울며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 괜찮아. 아들. 괜찮아. 네가 하지 말아야지 마음 먹은 거
너무 잘했어. 그런데 자꾸 손이 말을 안 듣는 거 . 그럴 수 있어. 엄마가 다음에는 더 일찍 들어올게. 우리 아들 졸리면 얼른 같이 들어와서 아들 손이 눈썹 뽑을 시간을 주지 말자.
어때?”‘
그제야 아들이 웃는다. 오른 쪽 속눈썹의 반이 없다. 가슴이 아팠지만.. 지금은 혼낼 타이밍이 아니다.
그래. 그래. 자자. 이쁘고 좋은 꿈 꾸면서 코 자자.
내일 아침에는 눈썹이 조금 자라 있을 거야. 아무 걱정 말고 자자.
작년 겨울 어느 날 아들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뭐지? 뭐지? 하다 손을 입에 가지고 가서 나오는 소리를 막았다. 아들의 눈썹이... 위에 눈썹은 듬성듬성. 속눈썹은 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뭐지?이게 뭐지?
아들이 뱃 속에 있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10년만에 얻은 아들이었다. 엄마는 내가 아들을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나보다 더 좋아하셨다. 큰 딸이 아이를 못 낳아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본인도 함께 죄인의 세월을 보냈기에. 10년은 길고 길었다.
그 손자를 보지 못하고 엄마가 가셨다. 그리고 나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이유로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울지도 못하게 했다. 울면 뱃 속의 아이가 놀랜다고.
배가 나온 채 누런 상복을 입고 앉아 있으면 사람들은 엄마의 죽음보다 나의 안정을 염려했다. 나는 그게 싫었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안쓰러워하는 것이 싫었다.매일 숨어서 울었다. 울다가 뱃 속의 아이의 발길질에 정신을 차리고, 울다가도 배가 고파 밥을 먹었다. 그렇게 울다 울다 보니 아이가 태어났다,
곱고 고운 아이였다. 잠 잘 자고 밥 잘 먹고 칭얼거리는 거 없이 잘 크는 아이였다.
아이는 5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처음에는 조금 늦는구나. 했다.
뒤이어 동생이 태어나고 나는 이제 울지 않는 세 아이 맘이 되어 있었기에 세세하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씀이 정신을 차리게 했다.
“어머니, ooo집에서는 말 하죠? 어린이집에서는 말을 잘 안 하네요. 솔직히 거의 하지 않아요.”
“엄마.”아들은 5살까지 엄마라는 소리만 했다. 누나가 옆에서 밀쳐도 동생이 기어와 장난감을 빼어도 "엄마“ 배고파도 ”엄마“ 똥이 마려워도 ”엄마.“
소아과 선생님께서 전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일단 기다려 보자는 말을 하셨다.
이런 아이들이 나중에 수다쟁이가 된다며...무난하고 착하고 조용하고 다정한 아들이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엄마는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임신했을 때부터 키우면서 했던 나의 모든 행동들을 곱씹으며 혹시 뭐 잘못했나? 일부러 그런 건 아니였겠지만, 모른 채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임신했을 때 내가 너무 많이 울어서 아이가 눈물이 많은 건 아닐가? 내가 소리를 질러서 아이가 더 입을 닫고 사는 건 아닐까?
지금은? 아들은 수다쟁이다. 매일 유튜브로 배운 카드마술을 보여주느라 바쁘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그 중에서 백종원같은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친구들도 많아서 주말마다 놀러가고 싶다고 한다.
오락실 한 번 가는 게 소원이고, 생일 선물로 ‘포켓몬스터박스’를 원하는 11살 아들.
그런데 왜 눈썹을 뽑는거니?
남편은 눈썹을 자르자고 말을 한다. 예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가 편해야 한다고.
안과에서는 그런 경우가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했다. 눈에 지장을 주는 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아직도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속눈썹이 자주 빠지고, 눈이 간지럽고, 자꾸 비비다보니 더 간지러운 거 같은데.. 한번 어떤 게 거슬리면 떨쳐버리지 못하고 계속 신경이 가는 건 다 마찬가지 아닐까?
몸도 마음도 조금씩 크고 있는 아들이 어느 날 답답해하다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뭔가가 생겨 나쁜 일인지도 모르고 계속 하게 된 건 아닐까?
예전에 큰 딸이 막내가 태어나자 손톱을 물어뜯었던 것처럼.
나 좀 봐주세요. 제가 뭔가 불만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아우성치고 있는 아들의 말을 들을 준비가 과연 나는 되어 있을까?
눈썹을 자르는 건 당장 간단하고 쉬운 해결책으로 보인다.
지금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왜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어떨 때 그런 행동이 나타나는지를 유심히 살펴봐야 할 시간이다.
아이들은 공을 들인 만큼 티가 나고 조그만 소홀해지면 금새 삐걱소리가 난다. 엄마의 초인적인 힘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