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49제에 다녀왔다. 아니다. 돌아가신 분을 모르니 지인이 아니다. 내가 아는 건 고인의 남편이다. 결혼초기 시댁에 가면 언제나 가시방석이었다. 제사 명절 때면 수십 명이 사람들이 오갔는데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았다. 손님들은 나를 알지만 나는 그들을 몰랐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얼굴과 촌수가 연결됐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남편의 먼 친척이었다. 싹싹하고 예의가 발랐다. 제사상을 차리고 있으면 부엌에 들어와 먼저 인사를 했다. 무거운 과일들을 싹싹 날아갔다. 남편보다 어렸지만 일찍 결혼해서 아이가 있었다.
명절 때 우리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세뱃돈을 줬다. 그 외에도 아이들을 볼 때마다 용돈을 줬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한 시간을 달려 직접 찾아왔다. 마음속에 고마운 사람이라고 적어놨다.
몇 년 전에 그 사람의 어머님이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제주도에서는 명절에 친척들 집을 돌아다니면서 치르는데 이를 명절 먹는다고 말한다. 9시 즈음 처음 가는 집에서 제사를 지낸다. 암에 걸린 어머님이 명절 치르는 게 곤란해진 아들이 제안을 하고 친척들이 회의를 해서 명절을 각자의 집에서 지내자는 결론을 내렸다.
얼마 전에 남편이 부고문자를 받았다. 상주가 그 사람이었다. 우리는 어머님이 돌아가셨구나. 생각하며 장례식장에 갔다. 그런데 아니었다. 죽은 건 그 사람의 부인이었다.
죽음은 언제 만나도 무섭고 황당하다. 사연 없는 죽음은 없다. 다만 나이가 들어 죽는 것과 젊어 죽는 것에 안타까움의 차이가 있다. 어른들은 젊은이가 죽으면 명이 그건 걸 어뜩하냐고 한다. 정해진 명. 길고 짧은 생명줄은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일까? 그는 생명줄이 짧아서 그토록 황망하게 죽었을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49제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막내가 초등학교4학년이라고 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여자가 남편과 두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49제를 하며 망자가 좋은 곳으로 가길 빌어주는데 나는 남겨진 사람들이 안쓰럽고 죽은 자의 삶이 안타까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국어시간에 처음 <제망매가>를 배울 때 죽음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충격이었다. 슬플 텐데 안타깝고 미어지는 가슴을 열 줄의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문학이라는 걸 알았다. 그 후 죽음을 만날 때마다 <제망매가>를 떠올렸다. 제망매가를 주문처럼 외웠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삶을 충실하게 메꾸며 살다 어느 순간 동전이 뒤집히면 미련 없이 떠나고 싶다. 한 가지에서 났지만 떨어지는 건 제각각인 잎들을 보며 안타까워하지는 않는다. 간 사람을 기리며 나도 열심히 살다 가겠다고 다짐한다. 알고 있는데 잘 안 된다. 참 어렵다.
절을 하며 울고 잔을 드리며 울었다. 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울고 상복을 입고 점심상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막내딸을 보며 울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의 삶이 남의 것 같지 않아서 울었다. 울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상주에게 인사하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