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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밥솥으로 그릭요구르트 만들기

그때그때 달라요

by 레마누


요즘 전기밥솥으로 그릭요구르트 만드는 재미에 빠졌다.


요구르트를 좋아해서 마트에 갈 때마다 꼭 사 온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시중에 파는 요구르트가 너무 달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플레 뚜껑까지 깨끗하게 먹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변한 건지 뭘 먹어도 맛이 없었다. 그나마 그릭 요구르트가 나아서 종종 사 오는데 한번 수제그릭요구르트 맛을 보고는 또 그 맛에 빠져 대기업요구르트에는 손이 안 갔다. 하지만 수제는 너무 비싸서 다섯 식구가 숟가락 몇 번만 하면 만원이 사라졌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심정으로 그릭요구르트 만들기에 들어갔다.




요구르트제조기를 살 까 잠깐 고민했다. 웬만하면 사지 말자. 하는 마음으로 검색을 했더니 전기밥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굳이 새로 사는 것보다 있는 걸 활용하기로 했다.




일단 마트에 가서 제주우유 900ml 두 개와 불가리스 4줄을 샀다. 다이소에서 제일 촘촘해 보이는 면포를 샀다. 준비 끝이다.


준비물


우유 900ml당 불가리스 한 개


촘촘한 면 포, 전기밥솥

(*저지방 유유 안 됨, 요구르트는 농축발효유라고 적혀 있는 걸 사야 함)





◆ 그릭 요구르트 만들기 ◆
1.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낼 경우 실온에 한 시간 둔다
2. 잘 닦은 밥통에 우유 두 통을 비우고 불가리스 두 개를 넣고 살살 젓는다
3. 전기밥솥에 넣고 보온으로 한 시간을 유지한다
(* 예전에 깜빡하고 3시간 보온했더니 실패했다. 보온시간을 지키기 위해 타이머나 알람설정을 한다)
4. 한 시간이 지나면 전기를 끄고 8시간 정도 놔둔다 (궁금해도 밥솥뚜껑을 열지 않는다)
5. 8시간이 지난 후 밥솥을 연다. 연두부처럼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느낌이 눈에 보인다.
6. 큰 볼에 속이 깊은 그릇을 올리고 중간크기의 체를 놓는다. 면포를 평평하게 깔고 요 구스트를 비운다. 유청이 떨어진다
7. 면포를 사방에서 잡고 고무줄로 단단히 묶는다. 꾹꾹 누를 때마다 유청이 떨어진다.
9. 저녁에 냉장고에 넣고 다음 날 아침에 꺼낸다




다음 날 아침이면 이렇게 예쁜 그릭요구르트를 만날 수 있다. 꾸덕하고 단단하다. 빠진 유청으로 세수를 하면 얼굴에서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난다. 빈 용기에 담는다. 마음이 든든해진다.




용기에 담다 남은 요구르트를 다이소에서 산 예쁜 유리그릇에 담는다. 토종꿀을 한 바퀴 두른다. 그래놀라를 올리고 냉동블루베리를 골고루 뿌리면 아침준비 끝이다. 아침밥을 뽕그랗게 먹은 남편이 탐낸다. 기꺼이 내주고 면포에 남은 요구르트를 긁어먹었다. 그것도 맛있다.





전업주부는 왠지 요리를 잘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직업난에 주부라고 적어 놓고 집안일을 등한시하는 건 직무유기다. 원래 꼼꼼하지 못하고 집안일에 관심도 없는 나는 그래서 항상 죄책감에 시달린다.




일하면서 집안 일도 척척인 엄마들이나 주부잡지에 나오는 것처럼 집을 멋지게 꾸며 놓고 사는 엄마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그렇게 집에만 있으면서 자존감이 무너지려고 할 때 김치를 하거나 요구르트는 만든다. 김치 없으면 밥을 안 먹는 아이들을 위해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거다.




아기자기하게 집안을 꾸미거나 예쁘고 맛나게 음식을 잘 만들지는 못해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집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작은 위안을 찾는다. 뭐라도 만들고 쌓아놓은 날은 목소리가 커진다.




오래 두고 먹는 것을 만들다 보면 맛이 다를 때가 있다. 똑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만들 때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전문가처럼 계량을 정확하게 해서 만드는 요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구르트도 어떤 날은 많이 꾸덕하고 어떤 날은 묽다. 김치는 짜거나 싱겁거나 너무 맛있거나 그럭저럭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요리를 만드는 것도 결국 마음이구나. 내 마음이 콩밭에 있을 때 의무감으로 만드는 것과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의 결과가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모든 일들이 그런 게 아닐까. 관심이 있고 재미있게 하면 결과도 좋다. 잘하고 싶은 마음만 앞서고 결과를 먼저 바라면 과정이 지루하고 힘들다. 항상 못마땅하고 불만이 가득하다. 자꾸 찡그리게 된다




오늘 만든 그릭요구르트는 농도도 맛도 딱 맞았다. 기분이 좋았다. 나도 뭔가를 했구나 하는 마음과 할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 만나 든든하게 나를 받쳐준다.




그렇게 살림 아이템을 또 하나 획득했다. 레벨업이 코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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