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이 뭔가요?
전업주부는 오후 5시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집니다.
1저는 20년 차 전업주부입니다. 결혼 전에 남편이 텅 빈 집이 무서워 방문을 잠그고 부모님이 올 때까지 혼자 지냈다는 말을 하며, 아이들이 집에 왔을 때 엄마가 집에 있으면 좋겠다는 말에 전업주부가 되기로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ENFP 형인 제가 집에만 있는다는 것은 감옥에 갇힌 것처럼 답답한 일이었지만 참았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저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할 말을 참고 사는 그저 평범한 여자였습니다.
전업주부라는 것은 솔직히 매력 없는 말입니다,
늘어진 티셔츠와 고무줄 바지가ㅡ 절로 따라옵니다, 아무리 요가를 하고 수영강습을 받아도 저는 그저 아줌마였습니다, 제가 배운 것과 했던 일들은 살림하는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됩니다.
아이 낳고 살림하기 하고 아이 키우기
하는 것에 비해 티가 하나도 안 나는데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집안일. 승진도 보너스도 없고 최선을 다해도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집에서 하는 게 뭐가 있냐는 말뿐이라 가끔 욱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결혼 20년 차지만 살림에는 젬병입니다. 해마다 농협에서 주는 가계부를 받고 한 달 정도 열심히 써 보지만 금세 포기를 해서 저희 집에는 텅 빈 가계부들이 뒹굴어 다닙니다. 저는 청소도 못하고 요리도 못합니다. 애당초 하늘만 보게 태어난 저는 빛 좋은 날은 유리창을 열고 대청소를 하기보다 시를 읽고 싶었습니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남편은 그런 저를 보며 혀를 찼지만 괜찮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가진 채 태어납니다. 저는 그냥 이렇게 태어난 겁니다, 하늘을 보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은 땅을 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줄줄이 태어나면서 그나마 현실 속으로 들어옵니다.
나무꾼은 선녀가 아이 둘을 낳자 숨겨두었던 날개옷을 꺼내줍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제가 세명의 아이를 낳은 건 우리 서방님이 제가 날아가지 못하게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서방님은 제가 책을 읽으면 불을 끕니다. 그만 자라고 하고. 힘들다고 합니다.
저는 날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숨겨진 선녀옷을 찾고 있습니다 서방님은 사슴을 찾아준 대가로 제 날개옷을 숨긴 채 전전긍긍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소주 한 병을 마시면 사람이 선녀가 됩니다.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사람은 꽃보다 아릅답습니다.
아들이 코딩수업을 받는 곳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촌입니다, 반찬가게가 참 많은데 그중에서 제일 핫하다는 곳에서 갈비찜과 멸치조림을 사고 와서 저녁상을 차릴 예정입니다. 약간 찔리지만 저만 조용하면 됩니다. 가끔은 숨 쉴 구멍도 필요합니다. 양심에 찔리면 가끔 김치를 만듭니다.
아이들이 학원에 돌아오기 전에 부지런히 글을 쓰고 발행을 누르고 난 후 주부모드로 변신합니다. 오늘도 아이들이 밥을 많이 먹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