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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May 24. 2023

제주토박이가 제주 살기 힘들다고 느낄 때

알레르기 비염과 삶의 질


열흘 전부터 숨 쉴 때마다 기침이 나왔다. 말을 하려고 할 때나 숨을 들이켜면 왼쪽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기침이 나오는데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서 오른 주먹을 쥐고 툭툭 치면 기침이 컥컥 나왔다. 오후에 오름을 오를 때 증상이 심해졌다. 요 며칠 제주는 한라산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미세먼지가 나쁨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기침을 했다. 더럭 겁이 났다. 전신암검진을 받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렇게 갑자기 몸이 나빠질 수도 있는 걸까. 혹시 급성인가? 혼자 낑낑대다 병원을 찾았다.



호흡기전문내과에서 폐와 얼굴주위 사진을 찍었다. 결과를 들으러 갔더니 선생님이 화면을 쭉 당기며 말했다.


3년 전에도 초기천식증상이 있어서 조심하라고 했는데 왜 관리를 못하셨어요?


네?


좋은 소식은 폐에는 이상이 없다는 거고, 나쁜 건 오른쪽 코가 꽉 막혔다는 거예요



콧물은 밖으로 흘러나와야 한다. 콧물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뒤로 넘어갈 경우 기관지를 자극에서 기침이 나온다. 끈적한 콧물이 목에 달라붙으면 목이 간지럽고 기침이 나오는데 잘 떼어지지 않는다. 지금 내 상태는 막힌 콧물이 뒤로 넘어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알레르기 비염과 기관지염에 관한 약을 2주 치 타고 왔다. 






2주 치 약이다.





한 달 전부터 사라봉과 별도봉을 도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기겁을 하신다.


안 돼요. 지금 운동하시면.




아빠는 과수원을 사자마자 돌담을 따라 쑥대낭을 심었다. 집과 과수원이 쑥대낭으로 둘러싸였다. 쑥대낭의 표준어는 삼나무인데 제주에서는 쑥쑥 자란다고 쑥대낭이라고 부른다(낭은 나무의 제주사투리다) 쑥대낭은 정말이지 쑥쑥 잘 자랐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우리 가족은 봄만 되면 눈이 빨개지고 콧물을 줄줄 흘렸다. 코가 간질간질하면서 기침이 나왔다. 제주시에 살 때는 괜찮은데 촌에만 내려가면 증상이 나타났다. 나중에는 제주시에서도 봄만 되면 병원을 찾아야 했다. 남동생과 내가 유독 심했는데 남동생은 서울 살면서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봄이 되면 쑥대낭꽃가루가 공기 중에 떠다닌다. 사라봉과 별도봉에는 쑥대낭이 있다. 마스크도 끼지 않고 매일 운동을 했으니 알레르기비염을 초대한 셈이 된다.



 제주토박이지만 제주에서 힘들 때가 있다.  예전에 성산에서 2년 정도 살았다.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집이었다. 바다 위에서 뜨는 해를 매일 볼 수 있어 좋았다. 보름달이 뜨면 창문틀에 걸터앉아 절로 나오는 시를 읊기도 했었다. 매일 바다를 보며 걸었다. 



바닷가집이 얼마나 습한지 몰랐다. 마루를 걸을 때면 쩍쩍 소리가 났다. 얼굴에 빨간 것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손 쓸 새도 없이 번져나갔다. 세수를 할 때마다 짜증이 났다. 피부과에서는 습도가 높아서 그렇다는 말을 하며 제습기를 추천했다. 



결국 바닷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로망은 습한 바닷바람 앞에서 무너졌다. 제주시에 오자 얼굴이  깨끗해졌다. 



며칠째 약을 먹으며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 매일 만보씩 걷다 쉬니 몸이 무거운 느낌이다.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해서 억지로라도 2리터의 물을 마시려고 하고 있다. 숨 쉬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조심해서 몸을 달랠 예정이다.



멀리서 보는 제주도는 아름답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특별히 좋지도 싫지도 않다. 그저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나갈 일이 없어서 산다. 적응을 해서 살든 병원에 다니며 살든 그건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뭔가를 결론 내리기엔 내 코가 석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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