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행동하는 지식인 볼테르와의 첫 만남

by 레마누

볼테르 (1694~1778) 절대군주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시기 프랑스에서 태어난 시인, 극작가, 역사가, 철학자. 이성의 고귀한 힘을 옹호하고, 모든 권위와 신념, 지식을 시험대에 올려놓았으며 광신과 불의를 고발하고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위해 펜으로서 공론을 제기하고 이끌어나갔다.


볼테르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미크로메가스


천 개의 감각을 지닌 우주인 미크로메가스와 일흔두 개의 감각을 가진 토성인이 지구에 와서 다섯 개의 감각을 가진 지구인을 만난 이야기다. 시리우스인 미크로메가 스는 이성적인 철학자이고, 토성인은 곧장 오류를 범하는 철학자이다. 미크로메가스는 시리우스별의 궁정에서 추방당하여 우주를 여행하면서 우주의 다양함에 눈을 뜬다. 우주에서 그는 자신보다 훨씬 더 열등한 존재와 우월한 존재들을 만난다.




모든 것은 작은 것에 비하면 크고, 큰 것에 비하면 작다. -만물의 상대성

어디서나 차이를 보이지만, 또 어디서나 조화를 보게 된다.-만물의 다양성과 통일성


미크로메가스는 우주를 여행하면서 경험과 관찰을 근거로 진리를 추구한다. 반면 토성인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믿는다. 그들은 우연히 지구에 도착했지만, 거대한 그들의 눈에 지구는 황폐하고 황량한 별이었다.


거인의 눈에는 인간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 크고 지구인은 너무 작았다. 지구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을 발견한 거인은 놀란다. 먼지보다 작은 인간에게 오장육부가 있고, 정신이 있으며, 사고능력과 욕망이 있다는 것에 놀라지만,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받아들인다.


볼테르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상대에 따라 우리는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 키가 크고 작다. 몸무게가 많다 적다. 잘 산다 못한다. 오래 산다. 빨리 죽는다. 행복하다 불행하다. 만족하다 불만족하다. 나는 크다고 하면 큰 사람이고 작다고 하면 작다. 크려고 생각하면 작은 사람을 보면 될 것이고, 작다고 느끼는 건 큰 사람옆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큰가? 작은가? 절대적으로 큰 사람은 없다. 만물은 상대성을 지닌다. 따라서 크게 기뻐할 일도 슬퍼할 필요도 없다. 좋게 보면 좋은 것이고 나쁘게 생각하면 한없이 나빠진다.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찾았다. 80점을 맞으면 70점 맞은 친구를 보며 위안을 삼았다. 만원밖에 없을 때는 천 원을 가진 사람을 봤다. 그렇게 하면 견딜만했다.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다. 저보다는 내가 낫다고 위로하며 살았다.


가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한없이 작아진다. 너무도 멀리 있어 얼마나 큰지도 모르는 별들이 눈 안에 들어온다. 빛나는 별도 희미한 별도 별이다. 하늘에 박혀 있다. 그들은 내가 그려내는 별자리에 관심이 없다.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맞춰 기뻐하고 눈물 흘리는 것은 나다. 내가 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이다.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기준을 낮추는 것이 나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보다 하지 않고 머물러있는 것이 안정이라고 생각했다. 실패할지도 모르는 도전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고, 성공은 하늘에 있는 별과 같아 보이긴 하지만 닿을 수 없었다. 가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정신의 부재를 깨닫지 못하고 나를 키울 생각도 없으면서 원대한 꿈을 꾸는 것은 허망이고 망상이고, 쓸쓸한 자기 위로이다. 볼테르의 <미크로메가스>를 읽으며 나는 부끄러웠다. 원소보다 못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다 아는 척하는 것을 거인에게 들켰다. 거인의 숨길 하나로 날아가버릴 거면서 개미를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졌음에 우쭐했다.


사물의 모습과 구조는 달라도 기본 원리는 같다.


불행이 죽음이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태어난 이상 죽는 것이고, 나이가 들면 아픈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인데도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비껴갈 거라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나의 고통의 크기와 발에 밟히는 개미의 고통 중에 어느 것이 더 클까? 애당초 처음부터 비교가 불가능한 것을 가지고, 순위를 매겼다.


너의 불행은 결코 나의 불행과 견주어 부족하지 않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는 것은 착각이고, 오만이다. 우리는 다른 듯 닮았다. 닮은 것보다 다른 것이 더 많아 보여도 결국 우리는 하나다. 그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나만 아니다. 나만 아니면 된다. 나는 다르다. 가 아니다. 나도 너도 그렇다. 나는 이렇고 너는 이렇다.



받아들임과 인정하기


마이크메가스와 토성인은 원소처럼 작은 지구인이 자신들과 대등한 지성을 지녔음에 놀란다. 그들은 지구인과 대화하며, 만물의 상대성을 몸소 경험한다. 또한 세상에는 다양한(상상할 수 없을 만큼 혹은 상상보다 더한) 사람들이 다양한 일을 겪으며 살고 있고, 그들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주인들은 지구인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절대"라는 말은 위험하다. 절대 그럴 리 없어. 절대로 안 돼. 는 말은 만물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부정한다.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한쪽만 알아서 그럴 수도 있다.

모르는 것은 배운다

치우친 것은 불안하다

중심을 옮겨 균형을 잡는다.


기존 생각을 깨뜨리고, 잘못된 것을 고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잘못을 받아들이고, 고치는 과정 모두가 고통이다. 추구하는 바가 높으면 고통의 강도는 세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알고 싶어서, 하고 싶어서, 더 잘하고 싶어서 고통을 자처한다.



지혜가 없는 자에게는 세상의 모든 재치가 쓸모가 없다. 본질적 고통 감지 능력이 지능 수준에 따라 증가한다. 그러므로 지능이 높은 사람은 가장 높은 단계의 고통 또한 느끼게 된다. -쇼펜하우어-


따라서 지금 고통스럽다면 감사해야 한다. 고통스러울수록 감사해야 한다. 가장 높은 단계의 고통은 지능이 높은 사람만 맛볼 수 있다. 나는 지금 고통스러운가? 불행하게도 아니다. 나는 지금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다.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부끄럽다.


그러므로


고통을 찾아 나선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향해 기꺼이 어둡고 험한 여행을 떠난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그 안에서 배운다. 배우고 익히고 체화시킨다. 그 모든 것이 즐거운 고통이 된다. 간절하게 고통과 마주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이어서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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