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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서 해방되다!!!!

by 레마누

아이야.

엄마가 딱 너만 했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


어렸을 때, 엄마가 살던 집에는 화장실이 마당 끝에 있었어. 똥돼지가 있던 뒷간이냐고? 그 정도는 아니야. 물론 외할머니네 집 화장실에는 검은 똥돼지가 살고 있어서 볼 일을 보러 갈 때마다 밑에서 기다리긴 했어. 윽.. 지금 생각하니까 좀 그렇다. 그렇지?


엄마가 태어날 즈음 제주도의 시골마을까지 새마을 운동으로 들썩였단다. 초가집을 허물고 슬레이트지붕으로 얹은 집들이 들어섰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지붕색이 달랐는데, 우리 집은 짙은 주황색집지붕이었어. 아궁이에 불을 때는 작은 방과는 달리, 안방은 연탄보일러였어. 엄마는 큰 딸이어서 집안일을 일찍 시작했어.


7살 때부터 곤로에 밥을 짓고, 연탄을 갈았지. 심지가 굳은 곤로에는 불이 잘 붙지 않았고, 연탄은 때를 놓치면 꺼지기 십상이었어. 번개탄으로 불을 붙이다 보면 연기가 나서 기침이 멈추질 않았단다. 그때 엄마의 소원은 기름보일러가 있는 집이었어.


불을 때며 살았지만, 방바닥이 뜨거워서 좋은 점도 있었어.

두꺼운 이불을 깔아 두면 온기가 오래갔거든.

추운 밖에서 돌아와 바닥에 손을 집어넣으면 뜨근했지.

그제야 몸이 풀리고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져.

아, 집에 왔구나. 이제 됐다. 생각이 절로 들었지.


그런데 문제는 화장실이었어.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배가 자주 아팠단다. 신경질 나면 배가 먼저 아팠어. 어딜 가든 화장실의 위치를 먼저 확인했어. 학교화장실은 수세식이어서 좋았는데, 문제는 집이었어.


우리 집.

내가 제일 좋아하고 편안한 우리 집 화장실이

세상에서 제일 불편했단 말이야.

큰 길가에 붙어 있는 화장실에 가는 개 보였어

우리 집 옆에 난 골목에선 늘 아이들이 모여 놀았는데,

화장실에 가려면 또 거기를 지나가야 했어.

총체적 난관이었지.


낮은 담에 맞춰 허리를 굽혀 가다가 화장실에 들어가기,

화장실에 안 가는 척하다가 후다닥 들어가기.

참고 있다가 밤에 가기,

등 별의별 방법을 써가며 화장실에 갔지.


어린 시절 엄마에게 가장 큰 고통은 바로 먹고 싸는 것이었단다. 그래서 화장실이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 좋은 집, 멋진 집이 아니라 화장실이 안에 있는 집이면 됐어. 그것만 해결되면 행복할 것 같았어.


그런데, 말이야. 외부적인 환경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되는 거더라. 푸세식 화장실은 수세식으로 변하더니 부잣집에나 있던 양변기가 흔해지고, 비데를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잖아. 참고 견디다 보면 나아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


자, 이제 엄마를 제일 괴롭혔던 화장실과 연탄보일러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닌 게 됐어.

그러면 엄마는 아무 고통이 없을까?

마냥 행복할까?


힘든 일은 사라지지 않더라. 환경이 좋아졌는데, 기술이 발전했는데, 고통이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엄청 애를 쓰는 것은 보이는데, 오히려 엄마가 힘들 게 살았던 예전보다 더 불행해 보여. 고통도 더 크고 강력한 거 같아.


편안한 집과 편리한 교통과 풍족한 문화생활과 넘치는 물건들 속에서 사람들은 행복한 게 아니라 고통스럽다고 하면서 옛날이 더 좋았대. 말이 되니? 예전이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런데 또 말이 되는 게 엄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 때가 좋았다고. 우리 어렸을 때가 살만 했다고. 요즘 아이들 불쌍하다고.


엄마가 6학년 때 피아노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가 플라스틱 옷걸이로 엄청 맞았거든.

그때 엄마 소원은 학원에 다니는 거였어.

근데 너희들은 지금 너무 많은 걸 하잖아.

학원은 지겹다는 말을 할 정도로 많이 다니고,

친구들끼리 놀러 가거나 여행 가는 게 큰일이 아니지.

돈이 없어서 먹지 못하거나

먹을 게 없어서 동동 거리지도 않아.


엄마는 고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그안에서 배우고 몸에 익힌 습관들이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단다. 무엇보다 어떤 힘든 일 앞에서도 견뎌낼 수 있었어. 옛날에는 더 심했는데, 이 정도는 양반이지. 하면서 말이야. 그러고보면 힘든 일이 꼭 나쁜 건 아닌가봐. 고되고 힘들때는 고통스럽지만, 지나고 나면 어렵고 힘들게 살아온 시간들이 살아갈 날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거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고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거야.


고통을 없애려는 생각자체가 고통에 집중하는 거란다.

그래서 고통을 없애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고통이 점점 심해져.



고통을 이기려고 극복하려고 힘들게 산에 오르고, 명상음악을 들으며, 내면에 집중하고, 백팔배를 하며 참회하는 것도 물론 좋은 방법이지만, 효과가 떨어지면 다른 방법을 찾게 되잖아. 그걸 찾느라 또 고통스럽고. 임시방편은 당장의 고통을 해결할 순 있지. 하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건데?


더 큰 고통이 찾아오면,

더 높은 산에 오를 거니?

종일 음악 듣고,

천 번씩 절할 거야?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일단 고통의 본질을 알아보자. 그래야 어떤 고통이 와도 고통에 흔들려도 중심을 잡을 수 을 테니 말이야. 엄마가 네게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거란다.


고통은 할 일이 있어 오는 것이니, 고통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고통을 해석하자.

고통이 왜 왔는지 알고 해석할 줄만 알면, 고통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고통이 제 할 일을 하는 동안 너도 네 할 일을 할 수 있겠지.


네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고 싫어하거나 피하지는 말자.

그건 고통의 몫이니 그것까지 네가 결정하겠다는 것도 오만이고 자만이겠지.

다만, 너는 고통이 왔을 때 정신으로 해석하고,

행동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거야.


좋기만 한 일도,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단다.

동전의 양면 모두가 동전이듯이 고통과 쾌락 역시 한 팀인 거야

.

가지고자 하는 것을 갖지 못하면 고통스럽고,

간절히 원하는 것을 갖게 되면 행복하지.

바라고 원할 때는 그것만 가지면 행복할 것 같지만,

손에 들어오는 순간,

다른 것에 눈이 돌아가.


다시 또 고통이 시작되는 거지. 지금 너에게 찾아온 고통은 너를 괴롭히거려 온 것이 아니고, 미워해서 온 것도 아니란다. 단지 올 만하니까 온 거야. 그러니 아이야. 고통이 와도 너는 네 할 일을 해 보자. 고통은 고통의 일이 있고, 너는 너의 일이 있으니 각자 맡을 일을 하는 거야. 오늘도 묵묵히 네 몫을 해나가길 바라. 사랑한다. 아이야.




woman-4737919_1280.jpg 출처 : 픽사베이


사족 : 올해 초 <엄마의 유산>에 들어갈 편지 두 통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잡은 키워드는 '고통'과 '착함'이었습니다. 9개월 동안 키워드 하나 잡고 글을 쓰는 건 고되고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만나는 못난 저를 인정하는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저는 비극의 여주인공 놀이를 좋아합니다.

작은 시련을 크게 부풀려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게 취미입니다.

삶은 늘 고통스러웠습니다.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는 저에게 실망하고, 자책하면서 살았습니다.

마음의 고통이 그림자처럼 어딜 가나 따라왔습니다.

꿈이 어지럽고, 사는 것 또한 칠칠치 못했습니다.


'고통'을 쓰며 고통에게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통을 이겨내거나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통을 당겨 쓰는 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에게 '고통'을 알려주기 위해 시작한 편지였지만, 쓰다 보니 저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살기 위해 쓴 글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고통이 뭔지 알았습니다.

고통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았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상황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마음 하나 바꾸었을 뿐이데, 더는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엄마의 유산>을 쓰며, 공부하며 배우고 익히고

몸에 스며들어 체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큰 수확입니다.


초대합니다.

변화를 간절히 바라시는 작가님들을 초대합니다.

11월 11일에 만나 우리 허심탄회하게 얘기 나눠봐요.

무엇이 중한 지를 같이 찾아가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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