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너는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지. 엄마품만 파고드는 아기새처럼 작고 여린 너는 세 아이 중에 유독 말수가 적은 아이였어. 엄마와 있을 때는 수다쟁이인 네가 학교에서 발표를 거부하고, 선생님의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않아서 엄마는 많이 속상했단다. 그뿐이 아니라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가도 대답을 하지 않아서 의사 선생님은 엄마에게 진지하게 검사를 권한 적도 있었던 거 기억나니?
하지만, 엄마는 걱정이 없었어. 너는 말을 못 하는 아이가 아니라 안 하는 거였고, 말을 하지 않는 시간 동안 네 속에는 할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 널 보며 엄마도 답답할 때가 있었어. 먼저 말을 거는 붙임성이 있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아도 적어도 질문에 바로 대답할 줄은 알아야 할 텐데 하며 걱정이 들긴 했어. 너를 아는 사람들은 원래 그러려니 하며 넘어간다고 해도 아는 사람들만 만나면서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참관수업에 참석했을 때 기억나?
모든 아이들이 한 번씩 발표를 했지. 미리 연습한 것처럼 수업은 물 흐르듯 흘러갔고, 발표를 하는 아이들이나 대답을 듣고 정리하는 선생님은 자연스러웠지. 수업이 진행될수록 엄마의 기대감도 커졌단다. 네가 어떤 말을 할지 너무너무 궁금했거든. 모든 아이들의 발표가 끝나고, 선생님이 발표하지 않은 사람이 누구지?라고 질문했을 때 교실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너에게로 향했지. 그래서였을까?
너는 끝내 발표를 하지 않았어.
못한 건지 하지 않은 건지 엄마는 알 수 없었지.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단다.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 걸 못할까.
집에서는 그렇게 말을 잘하면서 밖에서는 왜 말을 안 하는 거지?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정말 어디가 부족한 건 아닐까? 궁금증에서 시작해서 화가 났다가 나중에는 걱정이 되더라. 네가 다니는 초증학교는 IB 교육을 지향하는 학교라 앞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작성해서 발표하는 일이 많아질 텐데 네가 잘할지 너무도 걱정됐어. 말 많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들 틈에서 위축되어 점점 입이 닫혀가는 너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지. 그래, 엄마는 미리 앞서나갔어. 너의 부끄러움이 불러올 최악의 상황을 설정하고 마치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짓을 했던 거야.
몇 년이 지난 지금 너는 발표를 잘하는 아이가 됐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른 사람이 됐어. 엄마는 그게 참 신기하더라. 발표를 하고 싶지만, 목소리가 안 나온다며 울먹이던 네가 친구들 앞에서 공들여 만든 PPT자료를 설명하고 질문을 받고 있지. 너의 변화는 너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탄을 불러오게 만들었어.
사람들은 네가 변했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알고 있었어. 너는 변한 게 아니라 속이 채우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물론 알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서 조급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렇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단다.
조급함은 빠르게 행동할지 몰라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가 있지.
느리고 천천히 가는 것은 누군가의 눈에는 답답하게 보여도
네 눈에 담아내는 세상은 훨씬 크고 넓은 거야.
안을 채우고 하는 말에는 무게가 있고,
확신을 기지고 움직이는 몸에는 거침이 없지.
그래, 이제 너는 준비를 철저히 하고 때를 기다리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된 거야. 그렇지 않니?
엄마는 너와 정반대의 성격이지. 모르는 것도 아는 척 손을 들기 일쑤였단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면 거침이 없었지. 그렇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건 얼핏 보면 잘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이 없는 허상에 불과할 때가 많았어. 그래서 늘 목소리는 떨리고, 말에 논리가 맞지 않았지. 생각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것을 여과 없이 풀어내버려야 속이 시원했던 거야. 성격이 급한 건지, 참을성이 없는 건지. 어쩌면 둘다였겠지?
너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 하는 게 고민이었지만, 엄마는 말을 하면서 떠는 게 싫었어.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요동치고, 목소리가 떨리는 게 싫었지. 자신 있게 말하고 싶었어. 그런데 말이야. 엄마가 엄마의 첫 북토크에서 떨지 않고 말했단다. 북토크전날까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데도 얼굴이 빨개지더라. 우황청심환을 먹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지.
그런데 준비 없이 나간 북토크가 너무 편안했어. 엄마의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소설이 재밌다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었지. 약속장소로 가는 도중 꿈을 이룬 걸 축하한다는 카톡을 받으니 힘이 나더라. 무엇보다 소설을 쓰기 위해 보냈던 삼 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어. 그 시간은 오로지 엄마 혼자 견딘 시간이었고, 따라서 몸속에 각인된 시간이었지.
예상치 못한 질문에도 말이 술술 나오더라. 질문 또한 내가 고민하고 답을 찾기 위해 몰두했던 문제였거든. 그때 엄마는 알았단다. 떨린다는 것은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부족해서 실망시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서 나온다는 것을. 너무도 간절히 바라던 일을 앞두고 설레는 것과 실수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다른 거지.
충분히 준비된 상태에서의 설렘이 가벼운 봄바람이라면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에서의 불안은 살얼음판이 이지.
내딛는 발걸음에 얼음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거야. 조마조마하겠지?
확신은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나를 믿고 하는 말에는 힘이 있지.
힘 있는 말은 곧바로 날아가 원하는 곳에 닿고,
상대의 마음을 흔들어.
자신이 없으면 눈치를 보다 말꼬리를 흐리거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지.
오랫동안 컴퓨터수업을 받은 너는 켄바를 이용한 PPT자료를 잘 만들어. 글씨도 잘 써서 너희 조에서 발표자료는 네가 다 만든다고 했지. 같은 조의 아이들이 하는 말을 옮겨적고 정리하는 게 힘들다고 하면서도 너는 완벽하게 자료를 만들어냈어. 그러니 발표할 때도 막힘이 없었던 거겠지?
결국, 말을 함에 부끄러움이 앞선다는 것은 자신이 없다는 말이겠네.
자신이 없는 건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는 말이니 그것은 문제 될 게 없어.
질문에 답이 없는 너를 보며 의사 선생님은 검사를 권유했지만,
너의 입을 열게 만든 건 바로 너 자신이었잖아.
네가 너를 키우며 충분히 할 만하다 할 때 술술 말이 나왔잖아.
너와는 달리 말은 많지만, 늘 떨리며 말하던 엄마 역시
오랫동안 소설을 써서 소설이야기만큼은 떨지 않고 말을 할 수 있지.
이제 너와 엄마는 발표할 때마다 떨지 않는 사람이 된 거야. 멋지지 않니?
모두가 손을 들며 존재감을 뽐내려 할 때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내는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지. 아는 것을 넘어하는 것으로 하게 되며 깨달은 것이 있는 사람의 말은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그러고 보니 너와 엄마의 변화가 결국 한 곳에서 만나고 있구나. 엄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알아갈 생각이야. 엄마와 함께 알아보지 않겠니?
*사족 : <엄마의 유산> 다음 글에 들어갈 키워드로 저는 '부끄러움'과 '책임'을 선택했습니다. '고통'과 '착함'을 가지고 열 달 동안 두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쓰면서 많이 울고 깨지고 아팠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써냈습니다. 다시 찾아온 키워드인 '부끄러움'과 '책임'은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됩니다. 신나게 키워드를 글로 만들어내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키워드에 관심이 있으신 작가님들의 소중한 댓글은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댓글 강요는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