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는 큰딸의 친구엄마로 만나 14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지인이다. 그도 나도 첫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그 앞에서 동동거리다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을 텄다. 같은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를 보내는 동안 만난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만날 때마다 매우 밀도 있는 시간을 보냈다. P는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리지만, 감각이 뛰어난 디자이너이고, 따라서 나는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P 또한 나를 언니로 생각해서 인생의 고비 때마다 연락해서 조언을 구한다. 어떤 때는 몇 달 만에 연락하기도 하고, 일 년이 넘게 만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우리에게 시간이나 만남의 횟수, 통화량은 가치를 배길 근거가 아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살고 있다. 또래를 키우는 공통점이 있어 가끔 만나 고민을 나누면 큰 도움이 된다.
어제 P와 고등학교입시설명회에 갔다 왔다. 어린이집에서 제일 작았던 두 아이가 이제 고등학생이 된다면 감회에 찬 말을 나누던 중, 얼마 후에 나올 소설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 올여름에 허벅지 안쪽에 땀띠가 엄청났잖아
-언니, 그 정도는 해야죠.
-거기다 대상포진 걸려서 고생했어.
-언니, 축하해요. 그건 정말 축하할 일이에요. 자기가 하는 일에 상처가 있는 건 당연한 거예요. 다림질에 데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의상을 만들겠어요? 겨울에는 추위에 손이 곱아서 잘 펴지지도 않는데 바느질을 했어요.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어요,
곱상하게 생긴 P는 서울에서 혼자 디자인공부를 한 경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냉동만두를 전자레인지 없이 해동해서 밥으로 먹었다는 말에는 눈물이 날 뻔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라고 하던데, 역시 P와 얘기가 통하는 이유가 있었다. 나 또한 생라면 하나로 4일을 버틴 기억이 있다.
그러나 P와 내가 확연하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P는 버텼고, 나는 포기했다는 것이다. P는 디자인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으로 성공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의 고된 생활을 참고 버텼다. 그리고 내려와 제주에서 자신만의 샵을 차렸다.
반면 나는 일상에 굴복했다. 열정페이만을 받고 일상을 살 수 없었다. 배고파야 글을 쓰는데, 나는 배고픔을 참지 못했다. 동굴에서 뛰쳐나온 호랑이처럼 그렇게 소리 지르며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내내 후회와 회한 속에 살았다.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소용없는 일이지만, 잠시 상상해 본다. 지금의 나라면 그때를 버텼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성공의 뒷면에 고난과 역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십 대의 나는 실패 없이 성공을 꿈꾸었다. 쌓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주어지는 것을 받을 궁리만 했다. 어렵고 힘든 길이 아니라 쉽고 빠른 길을 가고 싶었다. 힘든 게 싫었다. 힘들게 살아서 조금 편하게 살고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경에 처했을 때 두려움과 운명론, 자기 연민에 사로잡힌다. 부정적인 생각에 집중해서 인생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증폭시키고, 더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며, 명확한 핵심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 이러한 실패 의식은 지속적인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주 1)
누구나 실망감을 느끼고 일시적 패배를 경험한다는 것을 몰랐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고개는 뻣뻣하게 들고, 눈은 부릅뜨고, 입은 씰룩거리며,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걷는 것으로 모르는 것을 숨겼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못한다고 단정하고 포기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소설을 쓰고, 단편소설집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 나는 최소한 나에게 부끄럽지 않다. 그것은 홀로 견딘 시간의 결과였고, 공과 정성을 다한 것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홀로 빛나려 하는 욕심을 버리고, 누군가에게 내가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 마음을 바꿔 먹었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노고를 치하하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안전하다. 그들의 미소에는 억지가 없다. 그들의 축하에는 시기와 질투가 없다. 왜냐하면, 앞선 것이 아니라 먼저 시작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순위를 매기고,
메달색을 달리하고,
시상대의 높이가 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먼저 가고, 나중에 가는 것일 뿐 도착점은 똑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혼자서 전체를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모여 전체가 된다. 하나는 스스로 전체이면서 부분이다.
홀로도 빛나고, 같이 있어도 빛난다. 함께 하면 빛은 더 커지고 오래간다.
오래전 동네 어린이집 앞에서 P에게 말을 걸었을 때는 인연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 몰랐다. 우연히 그를 만났고, 오며 가며 우연히 마주치다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연히 말하다 보니 공통점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소설의 첫 독자가 되었다.
2025년 1월 우연히 브런치에서 지담작가님을 만났고, '위대한 시간'에 참석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소설가 문수진으로 다시 태어났다. 우연은 늘 내 옆에 있었다. 우연은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필연은 우연을 가장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레마누를 우연히 만나신 작가님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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