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쓰고 달콤한.
안녕하세요. 제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녹차밭농부입니다. 제가 오늘 들려드릴 노래는요 첫사랑을 생각하며 만든 제 자작곡입니다. 여러분들도 첫사랑이 있으시죠? 저는 중학교 3학년때 그러니까 열여섯 살에 교회수련회에 가서 2살 위의 누나를 만났어요. 정말 첫눈에 반했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정말이지 그 누나만 생각하며 살았어요. 딱 일주일보고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그때 누나를 생각하면서 50곡의 노래를 만들었고, 그 노래들이 제가 계속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 줬습니다. 오늘 제가 부를 곡이 누나를 생각하며 만든 50번째 곡이에요. 이제 이 노래를 끝으로 누나를 보내주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누나 소식을 들었는데,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누나 덕분에 제가 노래를 불렀고, 저만의 노래를 만들었으니 제가 보낸 시간들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누나가 있어서 가능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누나에게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소설을 출간한 초보소설가입니다.
소설책을 몇 명의 사람에게 선물을 보냈는데, 그중에 한 명이 제 첫사랑이었습니다.
그를 처음 본 건 중학교2학년 11월의 어느 토요일오후였어요. 일이 있어서 하교가 늦어진 저는 잔뜩 화가 난 채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어요. 그때 맞은편 인도에서 어떤 남자가 걸어가는 게 보였어요. 고개를 숙이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에 심장이 철렁 내려갔답니다. 눈이 그의 발걸음을 따라갔어요. 얼마 후, 버스가 왔고, 저는 아쉬움을 잔뜩 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아무도 안 보이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거예요.
저는 눈이 무척 나빴는데요,
학교 운동장에서 체육복을 입은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그 사람만 보였어요. 우리 학교 1년 선배였거든요.
그의 이름을 알아내고, 같은 동네 사는 친구를 통해 그를 알아갔어요.
처음 전화번호를 누를 때의 심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얼마나 떨렸는지 "여보세요"하는 말을 듣는 순간,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그렇게 듣고 싶고 말을 하고 싶은데 듣자마자 끊어버리는 거예요. 제가 바보 같았어요. 밤마다 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부치지 못할 편지가 상자 가득 찰 때 즈음 용기를 내서 편지를 보냈어요.
그리고 답장이 왔는데, 아뿔싸. 제가 망설이던 사이에 그는 이미 선배언니와 사귀고 있었던 거예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하지만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죠. 원래 사랑에는 장애물이 있어야죠. 너무 쉽게 풀리는 사랑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답니다.
그와는 이상하게 조금씩 어긋났어요. 만날 약속을 하면 일이 생겼고, 우리는 전화와 편지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습니다. 사실 전 그와 만날 자신이 없었어요. 그는 나의 하늘이고, 별이었거든요. 별이 지상으로 내려오면 소멸하듯 그를 만나면 그가 사라질까 두려웠어요. 그래서 만나자는 그의 말이 좋으면서도 아팠답니다. 그렇게 저는 5년 동안을 지독하게 첫사랑이자 짝사랑에 매달렸어요. 다가오는 그를 밀어내며 설렘과 눈물 속에 십 대를 살았습니다.
늘 마음속에 묻어둔 사람이었습니다. 언젠가 그에게 말한 적이 있어요.
내가 소설을 쓰면 제일 먼저 오빠에게 보낼 거예요.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책을 받은 그가 문자를 보냈습니다.
출근해서 방금 받았습니다.
이런 경험 처음이라 설레고 감동입니다. 몰래 눈물 훔칠지도.
감사해요
그리고 마지막 말,
고맙다.
그는 왜 고맙다고 했을까요? 그는 늘 저에게 글을 쓰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겠지요. 깊은 밤,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쓸려 써 내려간 편지를 그에게 보내고 나면 맘 졸이며 답장을 기다렸습니다.
나중에 그가 말하더군요.
너의 편지에 답장을 하지 못했던 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고 말입니다. 편지를 받아도 될지 편지 속의 내가 과연 나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럴 만도 합니다.
저는 그때 젊은 베르테르였고,
그는 나만의 베아트리체였으니까요.
저의 모든 소설적 환상과 상상을 담아 편지를 썼으니 편지 세 장이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그는 아직도 저의 편지를 시골집에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 제가 아주 유명한 소설가가 되면 공개를 한다는데, 생각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인기작가가 되는 걸 포기할 수는 없으니 진퇴양난입니다. 그런데 첫사랑의 소식을 어떻게 아냐고요? 아직도 연락하는 것이 수상하다고요?
저도 그게 참 신기하긴 합니다만, 오해는 금물입니다. 그는 저의 첫사랑이자 제 동생의 시아주버님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연락이 끊겼던 그와 다시 만난 건 동생의 상견례자리에서였고, 제가 듣는 그의 소식은 대부분 동생의 입을 통해서입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요.
다시 녹차밭농부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녹차밭농부는 탑동 해변공연장 무대에서 기타 하나를 들고 나와 노래를 부르기 전에 차근차근 첫사랑에 대해 말하더군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첫사랑 이야기가 제 가슴을 아리게 했습니다. 처음 듣는 그의 노래에 빠져들어 주변의 소음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공감.
같은 감정을 나누는 것은 마음을 달래주는 것을 넘어 다시 살아갈 힘을 줍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 적막한 새벽에도 어디선가 나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를 위해 누군가 초를 켜서 불을 밝히고 내 이름을 부르며 축복을 내려주는 것처럼 그렇게 공감은 따뜻합니다.
녹차밭농부는 그래서 노래를 만들고, 저는 글을 쓰는 것이겠지요.
제가 그랬듯 또 다른 이에게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가사를 쓰고, 음을 고르고, 단어를 찾습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쓰는 새벽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