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다

by 레마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잠투정을 하면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들 셋과 나란힌 누워 내 마음대로 동화를 각색해서 들려주면 아이들은 꺄르르 웃다가 스르륵 잠이 들곤 했다. 5년 동안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남편은 늘 바빴고, 도움받을 곳도 없었다. 그때 읽었던 동화들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동화를 읽으며 같이 울고 웃었다. 그래서일까? 유독 기억에 남는 책들이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는 일본인 소설가 미야자와 겐지의 소설 <첼로켜는 고슈>이다. 고슈는 동네 음악단의 첼로 연주자다. 솜씨가 뛰어나지 못한 그는 지휘자에게 늘 야단을 맞았다.


"첼로가 늦잖아!! 따안딴따 딴따다, 여기부터 다시 시작!!"

"첼로, 현이 맞지 않아. 자꾸 그러면 곤란해. 나는 자네에게 도레미 같은 기본을 가르칠 시간이 없단 말이야."

"고슈 군! 자네 때문에 정말 큰일이야. 자네의 음악에는 표정이라는 게 없잖아!! 화를 내거나 좋아하는 등 감정이라는 게 전혀 없어. 게다가 다른 악기와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언제나 자네 혼자만 신발 끈이 풀린 채 다른 사람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 같아. 그러면 정말 곤란해. 정신 바짝 차리고 신경 써야지. "


자신에 대한 실망감,

다른 단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미안함,

가난한 자신에 대한 한탄이 섞여 고슈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연습을 시작했다. 이때 동물들이 고슈를 찾아온다.


<첼로켜는 고슈>는 실력이 부족해서 늘 야단맞고, 단원들에게 피해만 주던 고슈가 동물들과 밤을 보내며 연습하고, 실력을 향상시키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왜 그만두시는 거죠? 우리 뻐꾸기들은 아무리 오기가 없는 녀석이라도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소리치는데요."


얼마 전 초등학교6학년인 아들이 <위플래쉬>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위플래쉬>는 완벽한 연주를 위한 집착과 한계를 뛰어넘는 신념이 맞붙어 보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영화다. 지휘자 플래처는 단원들의 역량을 끌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다그치고 몰아세운다.



서로 경쟁하게 만들고 (너 아니여도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다시! 다시!! 다시!! !!!)

섣부른 동정이나 위로를 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 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야. "


플래처의 목적은 오직 하나뿐이다.

찰리 파커같은 전설을 다시 만드는 것.

그 하나만을 생각하기에 그의 말과 행동은 폭력적이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 그 자리를 원하면 스스로 쟁취하라."


뉴욕의 명문 음악 학교에 다니지만 특별히 주목받지 못하던 드러머 앤드류는 우연히 교내 최고의 밴드를 이끄는 플레쳐 교수의 눈에 띄어 그의 밴드에 발탁된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한 연습 또 연습!!

플레처의 가혹한 평가와 모욕적인 폭언, 폭행이 반복되면서 앤드류는 점점 이성을 잃어간다.

앤드류의 집념이 점점 광기를 띠어갈수록 플래처의 완벽을 향한 집념 역시 높아진다.


플래처 - 하나라도 틀려 봐. 내가 다 잡아낼테니

앤드류 - 못 할거라고? 아니, 당신의 눈 앞에서 완벽하게 해내겠어.

플래처 -어라? 제법 하네? 그럼 같이 놀아볼까?

앤드류 -아직은 아니야. 내가 신호를 줄 때까지 기다려.

플래처 -그래,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 조금만 더. 더!! 더!! 더!!!!!

앤드류 - 힘들어. 너무 힘들어. 그런데 멈출 수가 없어. 아니 멈출 수 없어.


영화의 마지막 5분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명장면의 연속이다. 영화를 보며 그들의 눈빛과 표정, 손짓과 몸짓에서 마음을 드러내는 말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아들과 롤러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먼저 롤러를 배운 누나가 뒤로 타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하자 아들은 괜찮다고 했다.


아들은 뭐든 혼자 배우는 걸 좋아한다. 호기심이 많고, 이해력이 좋아서 혼자 해도 제법한다. 하지만 늘 그걸로 끝이다. 적당히 하는 것,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만족한다. 사실 그게 편하기도 하다.


뭐든 적당한 것을 넘어서는 데는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

그저 남들 하는 정도만,

할 수 있는 정도만 하는 게 목적일 때는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뛰어넘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렇지 않으면 늘 중간에 머무를 게 뻔했다.


아들을 불러 호되게 야단쳤다. 네가 가자고 해서 왔으면 열심히 롤러연습을 해야지 그렇게 건성건성할 거면 엄마는 집에 가겠다. 할 일을 미루고 너 때문에 여기 왔는데, 엄마가 헛수고를 하는 것 같다. 시간을 낭비할 수 없으니 집에 가자. 아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뭘 원하냐고 물었다. 나는 쉬지 않고 롤러장 50바퀴를 돌라고 했다. 아들은 열 바퀴도 한번에 돌아본 적 없었다. 막상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들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들은

50바퀴 돌면 되지?

라고 하더니 롤러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 후 땀범벅이 되어 돌아온 아들이 말했다.

60바퀴 돌았어!!!!

거봐. 할 수 있잖아. 잘했어.

그걸로 끝이었다.


해 보지 않으면 어디가 끝인지 모른다.

그래서 가다가 멈추는 게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

적당히 하는 것에 만족하며 살다보면 적당한 사람이 되겠지.

아이들이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엄격한 엄마가 된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의 마음을 후벼판다.

가슴팍을 파고드는 아이를 밀어낸다.

더이상 못 할 것 같다고 하면 아직 멀었다고 하고, 그만하고 싶다고 하면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한다.


나폴레온 힐은 자신의 저서에서 금광맥을 1미터 앞두고 포기한 금광 탐사자 더비의 이야기를 통해 '집요함'즉 역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표를 끈질기게 추구하는 능력의 가치를 설명했다. 채굴을 중단했던 곳에서 1키터 내려간 곳에 금맥이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더 걸어야 목표에 도달할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얼마나 더 걸어야 성공할 것인가는

다음 모퉁이를 돌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만하면 됐어. 라는 말은 위험하다.

이만해서 되는 것은 없다.

고슈를 찾아온 뻐꾹이는 뻐꾹이라는 소리를 제대로 내기 위해 목에서 피가 나도록 연습했다.

앤드류는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모욕과 수치를 감수했다. 그리고 연습 또 연습했다.


행동과 습관이 운을 뒤에 끌고 다닌다 -지담-


안락하고 편안하고 한적한 곳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힘들고 척박하고 어지러운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싹은 스스로의 힘으로 진흙을 뚫고 나온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을 의미없이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뜨거운 물을 쓰며 흐리고 멍한 눈으로 하늘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

성공하고 싶다고 입으로 말하면서도 몸은 누워 있고,

잠을 자야 꿈을 꿀 수 있다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지는 않은가?

세찬 바람이 유리창을 흔들고 있는 겨울의 어느 새벽이다.

문득 저 바람을 온전히 맞을 힘이 나에게 있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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