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드라마 <나의 아저씨 >8회 앞부분.
박동훈은 애써 외면했던 것들의 진실을 알게 되고, 괴로워한다.
혼자 동네에서 맥주를 마시는 박동훈.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달려온 이지안,
함께 술집에서 나와 오래된 동네의 좁은 골목길을 걷는다.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거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인생의 내력이 뭔데요?
걸음을 멈추고 쳐다본다.
몰라.
나보고 내력이 세 보인다면서요.
다시 앞을 보며 걷는다.
내 친구 중에 정말 똑똑한 놈이 있었는데, 이 동네에서 정말 큰 인물 하나 나오겠다 싶었거든. 근데 그놈이 대학 졸업하고 얼마 안 있다가 뜬금없이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 버렸어. 그때 걔네 부모님 앓아누우시고, 동네 전체가 충격이었는데 걔가 떠나면서 한 말이 있어, 아무것도 갖지 않은 인간이 돼 보겠다고.
다들 평생을 뭘 가져보겠다고 고생고생하면서 나는 어떤 인간인가 보여주기 위해서 아등바등 사는데 뭘 갖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원하는 걸 가졌다고 해도 나를 안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금이 가기 시작하면.......
못 견뎌. 무너지고.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나를 지탱하는 기둥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진정한 내력이 아닌 것 같고, 그냥 다 아닌 것 같다고.
무의식 중에 그놈 말에 동의하고 있었나 보지. 그래서 이런저런 스펙 줄줄이 나열돼 있는 이력서보다 달리기 하나 쓰여 있는 이력서가 훨씬 세 보였나 보지 뭐.
겨울이 싫어.
좀 있으면 봄이야.
봄도 싫어.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싫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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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사를 하고 돌아서 걷던 이지안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파이팅.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 거 같기고 하고, 박동훈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한 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던 듯. 수줍게 작게 말을 했다
바닥만 쳐다보던 그 작은 아이가 처음으로 얼굴을 똑바로 들고
항상 긴장되었던 얼굴이 조금 풀린 것 같다.
항상 궁금했다,
나는 홀로 견딜 수 있을까?
집, 가족, 친구, 사람들,
나를 둘러싼 안전하고 평화로운 것들이 무너진 들판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나라고 믿는 것들이 과연 진짜 나일까?
인간이 가진 내력은 과연 무엇일까?
나의 내력은 강한가? 약한가?
우연히 4년 전에 쓴 글을 읽었다.
아니다. 우연이 아니다.
상처 입고 거친 숨을 쉬며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두꺼운 옷을 입어도 떨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두 손으로 컵을 잡고 커피를 마셨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뭐라도 해야 했다.
가장 익숙한 공간, 비어 있지만, 모든 것이 있는
작은 방 책상 앞에 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니?
하얀 벽이 물었다.
대답도 하기 전에 눈물이 나왔다.
그때 생각이 났다.
오래전, 나만큼이나 삶이 지친 사람들이 하루를 견디며 살고 있었던
그 공간, 그 시간들이 떠올랐다.
4년이 지났는데,
4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바람 불면 춥고, 비가 오면 우산이 뒤집힌다.
그래도 올라가겠다고,
기어코 구름 위에 가보겠다고 앉아있다.
이틀 내내 가로로 비가 내렸다.
오늘은 흐리지만, 내일은 날이 좋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