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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신청자가 한 명도 없어요

by 레마누

단편소설집 <당신의 안녕>이 세상을 나온 지 한 달이 되었다. 갓난아이라면 이제 제법 젖을 빠는 힘이 생기고, 배냇저고리 안에서 손과 발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싹이라면 어떨까?

흙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잔뿌리가 나와 흙을 단단하게 부여잡고, 머리 위의 흙을 밀어내며 나온 싹은 비바람에 흔들리 지언정 뽑히지 않는다.

<당신의 안녕>은 갓난아이어서 아직은 나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후 나온 싹이길 바란다.


과연 그럴까?


<당신의 안녕>을 건네자 지인은 북토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지인의 말은 달콤했다.

북토크라.

<당신의 안녕>을 읽고 온 독자들과 마주 앉아 소설이야기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좋았다. 도와줄 사람의 연락처를 받고 돌아오며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상상을 했다. 진짜 뭐라도 된 것 마냥 어깨가 으쓱했다.


추천해 준 독립서점에 전화하고, 사장님과 약속시간을 정하고, 찾아갈 때까지만 해도 실실 웃음이 나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책과 책상만으로 꾸며진 북카페도 마음에 쏙 들었다. 매번 참석해서 강의만 들었지 내가 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하게 됐다.

레마누 정말 소설가가 됐네. 북토크라. 멋지다.!!


그 멋진 건 누가 만드는 걸까?


사장님께 <당신의 안녕>을 건넸다.

12월 12일 금요일 오후 5시에 북토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12월 1일 SNS에 북토크를 한다는 공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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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됐다.

SNS에 좋아요를 누르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 확인했다.

잘 만들어진 홍보문구를 보며 또 혼자 뿌듯해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도 없이. 어떤 주제로 북토크를 한지도 모르면서 좋아만 했다. 사장님이 알아서 해 주겠지. 질문지가 오면 거기에 대한 답만 하면 될 거야.


과연 누구의 북토크 인가?


내 소설이고, 소설이 나온 후의 첫 북토크인데 그 안에 나는 없었다. 북카페사장님이 주체였고, 나는 객원이었다. 초대손님처럼 굴었다. 시간 되면 가서 인사하고 할 말하고 끝내려고 했다.

정말 그렇게 해도 되는 걸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지?

모르면서 아는 체를 했다.

한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마치 다 한 사람처럼 굴었다.

주도권을 가져다 바쳤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제발 알아서 다 해주세요.


북토크신청자가 한 명도 없어요.


자기소개란에 세 줄도 다 못 채우는 이력 없는 소설 가면서

아는 사람도 없고, 올 사람도 없으면서

와 달라고 부탁할 사람도 없고, SNS활동도 활발하지 않으면서

부를 친구도 가족도 없으면서

나는 무엇을 믿고 북토크를 한다고 했을까?


어제 문자를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떡하지? 이제 어떡하지?

머리를 싸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남들 다 한다고 해서 나도 한다고 했는데, 괜한 일을 벌였나?

아무것도 모르고 SNS에 올려서 인사받고 낄낄거렸다.

어리석고 우둔했다.

동생 보고 오라고 할까? 요즘 바쁠 텐데. 그렇게 자리를 채우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이라도 안 한다고 할까? 내가 뭐라고 사람들이 몰려와서 내 얘기를 들으려고 한단 말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신청자가 없는 게 이해가 됐다.


취소할 수는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


오게 만들어야 한다.

<당신의 안녕>은 좋은 소설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올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게 뭘까? 무엇으로 그들을 오게 만들 것인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식당주인이 되고 싶지는 않다. 밖에 나가서 전단지라도 돌리고, 메뉴를 개발하고, 청소를 하며 언제 손님이 와도 당황하지 않는 전문가포스 넘치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다.

<당신의 안녕>은 내 자식이다.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는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힘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 또한 자기 자신도 스스로 도전해 보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랄프왈도에머슨-


며칠 동안 깊은 바닷속에 있는 것처럼 멍하게 보냈다. 그 시간들을 메꿔야 한다.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그것이 내가 나로 사는 길이다.


주어 없이 서술어만 있는 문장은 좋은 문장이 아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북토크에 사람이 오고 안 오고 가 문제가 아니었다.


<당신의 안녕>은 스스로 밀어 올리는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정작 내 삶의 뿌리는 썩어 있었다. 이 상태라면 나는 <당신의 안녕>에게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한다. 썩은 뿌리를 털어내고, 흙을 바꾸고 더 큰 화분으로 혹은 땅으로 분갈이를 할 시기다. 나를 분갈이할 때다. 나를 그에 걸맞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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