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피어 아름다운
엄마가 딸 셋을 내리 낳고, 마흔에 얻은 아들은
눈치가 빠르고, 눈물이 많았다.
동생은 7살이 되자 태권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누나 셋은
노란 학원차를 타는 게 소원이었는데,
동생은 매일 학원 가기 싫다고 울었다.
어느 날, 아빠는
학원차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세우는 것을 보고 동생을 다그쳤다.
낡고 허름한 집을 보여주기 싫었다고 말하며 동생은 펑펑 울었다.
그날 밤, 안방불은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돈을 모아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동네에서 마당이 제일 크고, 멋진 집이었다.
넓은 현관에는 여러 개의 등을 있었다.
동생은 까만 밤에도 훤하게 빛나는 집으로 친구들을 불렀다.
어머니는 꽃을 좋아했다.
아버지는 길에 피어 있는 꽃들로 꽃다발을 만들었다.
마당이 생기자 아버지는 현관 앞을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들로 채웠다.
빨간 장미와 하얀 백합, 올망졸망한 철쭉과 진달래가 앞다퉈 피었다.
아버지가 뚝뚝 장미를 꺾으면
엄마는 환히 웃으며 꽃병을 찾았다.
그 시절 엄마는 누구보다 아름다웠고,
우리는 눈이 마주치면 크게 웃었다.
자려고 누우면 이 집이 우리 집이라는 것이 좋았다.
너무 좋아서 꿈만 같았다.
너무 좋아서 늘 불안했다.
엄마가 죽은 날부터 집은 빛을 잃기 시작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 먼지가 쌓였다.
한숨과 눈물이 섞이고, 한탄과 원망이 버무려진 집에서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눈물을 흘렸다.
장미는 봄마다 피어났지만, 아무도 장미를 꺾지 않았다.
꽃보다 가시가 더 많은 장미는 그렇게 홀로 피었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낮이나 밤이나
장미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혹은 그저 묵묵히 피고 지고 있었는지도
마지막으로 집에 간 날,
나는 톱으로 장미가지를 잘랐다.
가위도 칼도 없어서
손에 익지 않은 톱을 가지고 장미가지를 잘랐다.
가시에 찔려서 피가 났다.
동생이 소리를 질렀다.
눈물 조배기를 뚝뚝 흘리는 동생 앞에서
괜찮아 괜찮아. 진짜 안 아파.
집에 돌아와 가위로 끝을 다듬고,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물에 담궜다.
어느 날, 아무것도 없던 가지에서 싹이 올라왔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가져온 장미가지에서 파릇파릇한 싹이 나왔다.
바짝 마른 그래서 고집스런 늙은이같았던 가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 싹
잘린 몸뚱이를 탓하지 않고
처한 상황에서 살 궁리를 하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15cm가지에서 싹이 나온다.
오늘도 싹이 하나 더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