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내가 보고 싶을까?

by 레마누

우리 집은 동네에서 제일 가난했다.

적어도 어린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동네에서 세계문학전집이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제일 먼저 책장 앞에 섰다. 읽지 않은 책들을 손으로 짚었다. 비굴하지 않게 최대한 친절하게 빌려달라고 말하면 어떤 친구는 흔쾌히 대답했고, 어떤 친구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동네에서 제일 예뻤다.

내 눈에만 예쁜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랬다.

동네 사람들은 엄마가 남제주군에서 제일 예쁘다고 했다. 미인대회에 나가서 입상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제주 출신의 탤런트인 고두심보다 더 예쁜 우리 엄마는 허름한 슬레이트집에서 시부모님과 시동생, 그리고 세 명의 딸을 낳고 키우며 바둥바둥 살았다.


우리 아빠는 동네에서 제일 싸움을 잘했다.

아빠는 술을 마시면 제대하는 날 여객선에서 18대 1로 싸웠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키가 크고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아빠는 9인용 코란도에 사냥용 개를 태우고, 공기총을 들고 꿩을 잡으러 다녔다. 동네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아빠를 찾았다. 싸움의 맨 앞에는 언제나 아빠가 있었다. 아빠는 가끔 뉴스에 나왔다. 전경들과 마주 서서 소리를 지르는 아빠를 경찰서에 가서 데려오는 건 언제나 엄마 몫이었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무서운 아빠와 사는 예쁜 엄마가 좋았다.

그래서 늘 불안했다. 엄마가 도망갈까 무서웠다.

엄마는 어둠을 밝히는 형광등 같은 사람이었다.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큰 딸인 내가 뭐라도 해야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어버이날 특집방송이었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쓴 편지를 방송국에 보내면 사연자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였는데, 엄마가 해마다 빠지지 않고 보는 방송이었다. 엄마는 방송을 볼 때마다 울었다. 나는 엄마가 왜 우는지는 몰랐지만, 엄마가 방송에 나가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장한 어머니상이라면 우리 엄마가 받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날부터 해마다 방송국에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써서 보냈다.


글솜씨가 부족했는지, 엄마의 사연이 약했는지 방송국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어버이날 특집방송은 계속되었고, 엄마는 방송을 볼 때마다 울었고, 나는 우는 엄마를 보며, 엄마가 아나운서와 인터뷰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엄마 옆에 앉아 있다가 나에게 질문이 돌아오면 대답을 잘해야지. 혼자 연습도 했다.


무대, 마이크, 이야기, 감동.


어린 시절 내가 막연하게 꿈꾸었던 것들.

엄마가 없는 지금 나는 엄마의 이름으로 무대에 오른다.


엄마의 사연을 써서 보냈던 어린아이는 이제 없다.

그리고 나는 엄마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

잔소리가 아니라 진심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려 한다.


나와 같은 마음의 엄마들이 모여 낭독극을 공연한다.

어린 시절 엄마를 생각하며 글을 썼던 꼬맹이가

이제는 딸을 앞에 두고 편지를 읽는다.

그때도 지금도 마음은 하나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 하나를 들고 무대에 오른다.


엄마가 보면서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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