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날리기 3

by 레마누
istockphoto-859761378-1024x1024.jpg 출처 : 픽사베이



호철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술은 붕붕 떠다니는 생각을 가라앉히는 즉효약이다. 뜨거운 해장국을 앞에 두고 글라스에 소주를 따라 마셨다. 밥보다 술이 먼저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속이 뭐라 하든 술을 들이부었다. 목을 타고 쓰리고 독한 것이 내려갔다. 뱃속이 요동을 친다. 그제야 조금 살 것 같다.


생각하면 안 될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떤 일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정말이지 재민이의 이름을 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를 닮아 키가 크고 멋진 우리 재민이, 변변한 학원 하나 다니지 않아도 늘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는 우리 재민이, 잘생기고 멋진 내 아들. 세상에 어느 아비가 자기 살겠다고 아들을 팔아넘길까? 아니, 일단 내가 살아야 재민이도 사는 거 아냐? 그렇지. 재민이의 뒷배가 되어 주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거지.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 했어. 정말 이번에만 잘 되면 내가 이 생활 청산한다. 그런데 당장 돈 백만 원을 어디서 구하지? 더 이상 전화할 데도 없는데. 재민이 엄마한테 전화하면 난리를 칠 게 뻔하고...


호철은 핸드폰주소목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속을 아는 사람, 인사만 한 사람, 적당히 아는 체하는 사람을 막론하고 호철은 일단 사람을 만나면 통성명을 하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사람은 언젠가 다 쓸 데가 있다는 게 호철이의 지론이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붙임성이 좋은 호철에게 사람들은 쉽게 경계심을 풀었다. 그럴듯한 명함과 깔끔한 옷매무새도 신뢰를 구축하는데 한몫했다. 호철은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옷 스타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호철은 참을성이 강했다. 오랫동안 지켜보며 상대의 패턴을 읽는데 선수였다. 동료들은 그런 호철에게 지독하다고 말했다. 재민이가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는 것도 어쩌면 그런 호철이의 야수본능을 닮아서인지도 모른다. 사냥꾼은 몸을 숨기고 움직이는 사냥감이 멈출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인내. 그렇다. 호철은 인내심이 뛰어났다.


당장 메꿔야 할 돈이었다. 그까짓 거 얼마 안 되는 돈이 없어 쩔쩔매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때, 문자가 왔다.

"재민이 내일 학원에 갈 때 제가 데리고 갈게요."


재민이의 절친 엄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단짝으로 붙어 다니는 한수의 엄마. 만나면 늘 환하게 웃으며 재민이를 칭찬했다. 생각해 보니 한수엄마에게 재민이 보험을 들어준 적이 있었다. 보험이라. 보험.. 탁자를 툭툭 치던 한수는 번뜩 생각이 난처럼 얼굴이 밝아졌다. 메모지에 뭔가를 적다 말고 볼펜을 죽죽 긋는다.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머리를 긁적이다 다시 쓰기를 반복하더니 등을 뒤로 젖히고 방금 쓴 문장들을 읽으며 흐뭇하게 웃는다. 문자를 보냈다. 다음날, 현수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돈이 입금됐다. 됐다. 이걸로 됐다. 이번 일만 잘 되면 현수 불러서 거하게 저녁이라도 먹어야겠다. 호철은 남은 소주를 한꺼번에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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