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엄마와 딸

by 레마누

내가 사랑하는 미드 "프렌즈" 시즌 6

에피소드 7화의 한 장면.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자란 피비는 자립심이 강하고 틀에 박힌 삶을 못 견뎌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카페에서 부르는 자작곡도 제멋대로다.


레이첼은 의사 아버지 밑에서 편안하게 자랐다. 아버지의 말만 잘 들으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을 만큼 부잣집 딸이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느라 정작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모른 채 성인이 되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피비와 함께 살게 된 레이첼은 처음 주어진 자유에 흥분하며 좋아했지만 얼마 안 가서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피비에게 조금씩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두 사람은 센트럴 파크에서 조깅을 했다.


조깅복을 제대로 차려입고 주위를 의식하며 예쁘게 달리는 레이첼과 달리 오로지 달리는 것에만 신경 쓰느라 어떤 모습으로 달리는지는 상관하지 않는 피비.



레이첼은 피비의 달리는 모습이 너무 이상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친구들에게 피비와 같이 달리는 게 창피하다고 말한다. 마치 폴짝 뛰는 개구리와 육백만 사나이를 합쳐놓은 것 같다고 말하는 레이첼.


상대가 이해 안 되는 건 피비도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뛰는 레이첼에게 피비는 그것도 달리기냐며 자신처럼 달려보라고 권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레이첼은 피비와 함께 하는 걸 피해 혼자 달렸다.


하지만 피비와 대화하면서 생각이 바뀐 레이첼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느닷없이 피비처럼 자유롭게 한 마리 개구리처럼 육백만 달러의 사나이처럼 최선을 다해 달렸다. 처음으로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달리기에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달리는 레이첼을 한번 쳐다볼 제갈길을 갔다. 레이첼이 걱정했던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피비 말마따나 한번 보고 말 사람들 때문에 그동안 레이첼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걸 깨닫는다.



레이철은 두 팔을 벌리며 개구리처럼 허우적대며 달리는 피비와 마주한다. 그리고 피비에게 환희에 찬 얼굴로 말한다.



달리기에만 집중하느라 팔과 다리의 모양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레이철은 비로소 자신이 달리기를 순수하게 즐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건 너무 신나고 자유롭고 마음이 편한 경험이었다.


왜 이 장면이 생각이 났는지 모른다.

어쩌면 오늘 아침 식탁에서 젓가락질하는 큰딸을 지적해서 큰딸의 눈에 눈물방울 맺게 했기 때문일지도.



이상하게 큰딸이 하는 젓가락질이나 씹는 모습이 눈에 거슬릴 때가 있다. 정해진 것도 아니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뭔가 이상해서 자꾸 지적을 하게 된다. 한참 밥을 먹다 엄마한테 지적을 받았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마치 딸인 모니카를 만나자마자 머리모양부터 귀걸이, 옷까지 지적질만 하느라 바쁜 모니카엄마처럼.

모니카엄마 별로였는데 가만히 보니까 내가 하는 행동이랑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니다. 모니카 엄마 그 자체였다. 불쌍한 우리 딸ㅜㅜ


딸에게 혹시 내가 이렇게 보이지는 않을까ㅜㅜ

내가 가진 기준과 잣대로 아이들을 키우겠다는 게 엄마의 이기심인지 욕심인지 사랑인지 잘 모르겠다. 밖에서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하느니 내가 혼내는 게 나았다.


젓가락이나 연필 잡는 법. 음식을 먹을 때 소리 내지 않고 먹는 것.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 등을 펴고 바른 자세로 앉기 (딸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내가 제일 자주 하는 말 "등 펴!!")



나는 아이들이 피비처럼 자유롭게 생각하고 생활하기를 바라면서 레이철의 부모처럼 못 미더워 교문에 숨어 보는 부모였다. 그래놓고서 너는 혼자서 제대로 하는 게 왜 없니? 하고 있다. 나보다 훨씬 잘하고 있는 아이 앞에서.


가끔 생각한다. 내 성격에 아이가 한 명이었다면 그 아이는 아마 숨이 막혀서 살 수가 없었을 거라고.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면 종이가 타들어가듯이. 나는 충분히 그럴 사람이다. 누구보다 극성엄마가 되어 치맛바람을 제일 앞에서 휘둘렀을 것이다. 행여나 내가 작고 가여운 아이에게 못 되게 굴까 봐 하느님은 두 아이를 내려주셨다. 덕분에 나는 한 명의 아이에게 집중하는 대신 시선을 세 아이에게 돌릴 수 있었고, 혼을 내도 세 명에게 분산을 하기 때문에 세 남매는 타격을 적게 입을 수 있게 됐다.



정말 다행이다. 아이가 셋이어서. 나는 매일 자유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아이들에게는 복종을 강요하고 있었다. 피비처럼 자유로운 영혼이길 바라면서 레이철처럼 반듯하게 뛰기를 강요했다.



이 글은 반성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조금 더 거리를 두고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다짐하는 글이다. 겨울방학의 시작은 늘 다짐으로 시작해서 원망과 후회로 점철되다가 어느 순간, 달력을 보고 희망을 키운다. 아무리 추운 겨울도 계속되지 않는다. 어디선가 봄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과거과 미래를 만드는 것은 현재의 나다. 지금의 충실하면 지나간 날을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는다. 미래가 꼬이고 복잡해질 일도 없다. 잔소리를 줄이고, 맛있는 밥을 차리자. 그것이 오늘 내가 할 일이다. 그 전에 이야기수집가에 걸맞는 글을 써야 하는데, 오늘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 반성문으로 대신했다.


며칠 전에 유튜브쇼츠에서 본 장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딸이 성실하고 착한 남자와 결혼해서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데, 딸이 하는 모든 게 마음이 들지 않은 엄마의 이야기였다. 딸을 질투하는 엄마가 있다는 댓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엄마가 딸을 질투하지?


이틀 동안 물음표를 띄워놓고 낑낑댔다. 생각에 살을 붙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졌다. 쓸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 조금 있으면 점심 먹을 시간이다. 지언작가님의 말처럼 돌아서면 밥이다. 돌밥의 시간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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