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라 쓰고 하소연이라 읽는다
도서관, 서점, 문방구점
속상할 때 찾아가는 곳.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을 때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있는 듯한
그곳에 가서
굶주린 사람이 우물물을 마시듯
지친 나그네가 발을 뻗고 휴식을 취하듯
두리번거리며
처음 보는 것들과 만나다 보면
모든 것들이 다 신기해서
내 안의 묵은 것들이 뒷걸음친다
사서, 서점사장, 문방구사장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
뭐 있어요? 하면 척하니 건네는 모습에
하트 남발하다
당신이 되고 싶어요.
도서대출카드를 만들고
볼펜을 고르고, 신간에서 어슬렁거리다 결국
아는 작가의 책만 사는
숲 속에서 가장 외로운 용
나무는 울창하고 날개는 퇴화해서
도마뱀이 친구인 줄 알고 툭툭치고 간다
숲에서 보이는 하늘은 딱 숲크기만큼의 하늘
이곳에서 바다를 아는 자는 바보가 된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하늘에 새들만이 날아다니고
매일 하늘만 쳐다보다 고개가 꺾어져 죽은
시체들이 가득한 바닥에는
개미가 기어 다닌다.
당신이 읽고 싶은 책의 제목을 말하세요
그걸 모르겠어요
그럼 전 당신을 도와줄 수가 없어요.
제목이 중요해요. 뭐든 그렇죠
제목과 이름은 책의 얼굴이니까요
밖에 나갈 때 세수하는 것과 똑같아요.
설마 수건을 목에 두르고 얼굴을 씻겨달라는 소리는 아니겠죠?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른다고요
저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당연하죠. 당신은 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당신의 대출목록만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있을 뿐이에요
내가 되고 싶다고 말했죠?
내가 누군지 알고서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아무나 되고 싶다고 말하지 말아요.
나는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주 많은 것들을 버려야 했답니다
당신은 무언가를 갖기 위해
살을 에는 아픔을 참은 적이 있었나요?
9시에 문을 여는 2층 문헌자료실 앞에 8시 50분에 도착했다. 문 앞에 얌전히 앉아서 사서가 계단을 올라오는 모습을 상상했다. 9시 출근이지만 8시 50분에 올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시간을 잘 지키는 도서관사서는 9시에 계단을 올라왔고, 문을 열었고 곧이어 도서관에 불이 켜졌다. 나는 하나도 안 기다린 것처럼 9시 5분에 들어갔다. 사서 3명은 오래전부터 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 들어가도 되나요? 물론이죠. 친절한 그들의 미소에 힘입에 열심히 읽을 책을 찾아서 나온다.
기분이 좋았다.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그래, 작가의 삶이란 이런 거지. 오전에 책을 읽고, 오후에 글을 쓰는 삶. 매일 읽고 쓴다. 그렇게 생각하니 뭐라도 된 것 같다. 착각의 늪에 한 발이 빠졌다.
오전에 남편이 은행과 주민센터에 가야 한다고 했다. 언제나처럼 통보다. 오후에는 세 아이의 엄마로 살다 보니 저녁 9시가 훌쩍 넘어서야 나로 돌아왔다. 30분도 허용할 수 없다며 재워달라는 아이를 놀부가 흥부 쫓아내듯 벌컥 화를 내며 방으로 보내버렸다.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은 얻었지만 아들은 엄마 없이 혼자 울다 잠이 들었다.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시도 때도 없이 실지렁이우주가 열린다. 전업주부는 시간이 많다고 하는데 그 많은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할 일을 한 후에 한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한다. 그래서 매번 부딪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