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by 레마누


학교 다닐 때 금요일 밤마다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다.


내일 비 오게 해 주세요.


토요일은 그나마 학교에 가서 오후에만 밭에 가면 됐다. 하지만 일요일은 비가 오지 않는 한 무조건 밭에 가야만 했다. 고3 여름방학 때까지 그렇게 살았다.



하늘은 나의 간절함과는 상관없이 대부분 날이 좋았다.



일요일 새벽에 들리는 빗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빗소리를 들으며 늘어지게 잠을 자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인 것 같았던 그때. 아침에 내리는 비보다 더 반가운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일을 하는 도중에 내리는 비다.



엄마는 꾸물거리는 우리 세 자매를 재촉해서 밭에 끌고 나갔다. 밭은 넓고, 할 일은 많았다. 그렇게 하기 싫다는 것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일을 하고 있을 때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는 결코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툭툭 떨어지다가 두두둑 하면서 쏟아지면 밭에 있던 우리는 신나게 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빠르게 집에 갈 준비를 끝낸다.



일을 마치지 못해 아쉬워하는 엄마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저 오늘 하루 비가 와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만으로 기뻐 날뛸 뿐이었다. 일요일에 조금이라도 일을 돕지 않으면 월요일에 엄마가 남은 일을 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비가 오는 걸 어떡해. 난 몰라. 하고 돌아서도 되는 건 나였고, 내가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자신의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건 엄마의 몫이었다.



그건 어른들의 세계였다. 내가 아직 발을 집어넣지 않은 곳. 책임감을 갖고 끝날 때까지 허리가 끊어지는 아픔과 어깨가 빠지는 고통을 견디며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것.



그게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이었고, 어른의 모습이었다.






g65f8d7fdbb46a4114f660172e55bde2f598eaf91cb8ba1ad4374d24856afe4e36ac52e1e110.jpg?type=w773 © thedanw, 출처 Pixabay




결혼하고 6개월 즈음 지나 임신을 했다. 제주에는 명절 다음으로 큰 집안 일이 벌초였다. 벌초 전 날 시어머니가 전화해서 나도 오라고 말을 했다. 시어머니에게 임신 7주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임신을 해서 안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괜히 생색내는 것 같았고, 설마 일을 시킬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성산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해서 제주시에 왔다.


내가 생각하는 벌초는 무덤 몇 개를 후다닥 하는 거였는데 시댁은 4군데의 산소와 700평이 넘는 공동묘지를 하루만에 벌초해야 하는 중노동이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던 공동묘지에는 내 키만한 풀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남자들은 풀을 베고 여자들은 베인 풀을 밭 가장자리에 가져갔다. 한사람의 손이라도 아쉬울 판이었다. 나는 형님들과 똑같이 일을 했다.


점심을 먹을 때 배가 사르륵 아파왔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화장실이 없어서 옆에 있는 산소 뒤에 가서 바지를 내렸는데 피가 살짝 비쳤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이거 다 하면 병원가자고.


나는 신혼이었고 믿을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게속 풀을 날랐다. 가끔 서 있으면 시아버지가 도끼눈으로 쳐다봤다. 오후 3시쯤 공동묘지가 끝나고 마지막 산소라며 차를 타고 이동을 했다. 그 장소에 가자마자 나는 누군가의 밭 구석에서 쪼그려 앉았다. 붉은 게 물컹하고 나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번에는 정말 아닌 것 같아 남편에게 말하고 작업복을 입은 채 병원으로 달려갔다.



일부러 여자의사인 곳을 찾아갔는데 환자들이 많아서 두 시간 동안 기다렸다. 가랑이사이에서는 계속 무언가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딱딱한 대기실 나무 의자에 앉아 울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흘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울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쯤 흘렀을까. 진료실에 들어가서 만난 여자의사는 따뜻한 손으로 내 몸을 여기저기 만져보더니

이미 유산이 되었다는 말을 했다. 짐작은 했었지만 전문가의 입으로 듣는 그 말은 너무도 차갑고 날카롭고 아프게 가슴을 찔렀다.



왜 울어요?? 아파요? 아프진 않을 텐데


선생님. 아픈 건 아닌데요. 그냥 눈물이 계속 나와요


아까부터 계속 울었죠? 왜 괜히 대기실 분위기 나빠지게 그렇게 울어요? 어른 닮지 못하게.


화가 났다.



어른답지 못하다고요? 선생님은 유산하는 사람을 자주 봐서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저는 처음이에요.


울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그게 그렇게 잘못인가요?


뭐예요? 정말 미성숙한 사람이네.



울다 지쳤던 나는 쉽게 목이 메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었다. 팔을 잡고 끄는 남편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그때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던 남편에게 실망했다. 내가 이 남자를 믿고 살 수 있을까?



집에 와서도 계속 눈물이 나왔다. 속상해서 울었고, 아무것도 모른 채 흘러가버린 나의 첫 번째 아가에게 미안해서 울었다. 어른답지 못하다며 나를 몰아붙인 의사한테 화가 나서 울었다. 하루 종일 울었다




그때 아. 30% 정도는 유산이 된다는데 제가 거기 해당되는 것이군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하고 우아하게 말하고, 의사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와야 내가 어른스러운 것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 일을 겪으며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위가 사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태도가 그 사람의 지위를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처음으로 의사가 부럽지 않았다.



지켜주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그리고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더 강해져야 한다는 걸 알았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더 단단하고 강해져야 한다.


그런 게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다라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첫 아이를 잃었던 그때, 정신없이 울고 나서 미역국을 먹으며 나는 어른이 되었다.


스물아홉 살이었고, 늦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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