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혼자가 찾아왔다

자작시라 쓰고 내 마음이라 읽는다

by 레마누

어느 날 갑자기 혼자가 찾아왔다

혼자는 뚜벅뚜벅 걸어와

혼자 있는 나에게

넌 혼자라고 말했다

나는 갑자기 슬퍼졌다

왜 울어?

그냥 눈물이 나와

혼자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혼자의 손은 따뜻했다

넌 혼자가 아니야

내가 있잖아

네가 혼자인 걸

그러니까

넌 혼자를 가진 사람이야.

내가 네 안에 들어가 살게.

그러면 넌 어딜 가든 혼자가 아닌 게 돼

나는 기꺼이 혼자에게 가슴 한쪽을 내밀었다

그날부터 나는 혼자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혼자 밥을 먹을 때도 혼자 잠을 잘 때도

내 안의 혼자가 토닥여주는 소리에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나는 혼자인 채 혼자가 아닌 사람이 되었고

어느 날 깊은 우물에서 나와

마침내 어른이 되었다




독서모임에서 참석자들에게 자신을 꽃으로 표현해 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수선화'라고 답했다. 이십 대 시절 허름하고 깜깜한 자취방에 들어가서 불을 켜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담배에 불을 붙이는 거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혹은 길에서 담배 필 용기도 없었다. 아니다. 밖에서는 담배가 없어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작은 방에 혼자 앉아 있으면 외로움에 파묻혀 내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살고 싶어서 피울 때마다 기침을 하면서 담배를 피웠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던 내게 담배는 유일한 친구이자 위로이자 위안이었다.



그때 읽었던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를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 외로움이 무서워 울고 있을 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말을 건네줘서 고마웠다. 새들도 산그림자도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좋았다. 누군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뭐냐고 물어오면 망설이지 않고 수선화라고 말한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 사랑, 자존심, 고결, 신비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 아름다운 청년 나르키소스가 빠져 죽은 연못가에 홀로 피어난 꽃 수선화. 수수하지만 도도하고 외롭지만 슬프지 않은 수선화에 의미를 더하며 나는 감히 수선화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수선화다. 나르시스가 빠져 죽은 호수에 핀 노란 수선화다. 목동인 나르시스는 매우 잘 생겨서 요정들은 그의 미모에 반해 구애를 했다. 하지만 나르시스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양 떼를 몰고 가던 나르시스는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처음 보는 아름다운 얼굴에 놀란다. 물속에 손을 넣으면 얼굴은 사라지고 잔잔해지면 다시 나타나는 얼굴.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모습이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 나르시스는 자신을 잡으려고 손을 뻗다 호수에 빠져 죽었다.



나르시스가 죽은 자리에서 나는 싹을 피웠다. 나르시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내게 수선화라는 이름을 붙이고 고결과 자존심, 강한 자기애를 이야기한다. 누구 맘대로 나는 그저 노란 수선화다



홀로 피어 바람에 휘날리고 노란 꽃잎으로 몸을 감싼 채 봄을 보낸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가느다란 잎사귀들은 휘어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쳐다보면 나도 가만히 그들을 쳐다본다. 인간들의 눈동자에 내가 비친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 홀로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강한 존재이면서 한없이 약한 인간들.


날 보며 아름답다고 말을 하고 사진을 찍지만 돌아서는 순간 나를 잊고 슬픔의 늪에 빠져 살며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는 인간들. 그래서 정호승이란 인간은 수선화에게라는 시를 썼나 보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자신이 울고 싶었으면서 왜 가만히 있는 나를 들먹였는지

사람만 외롭다는 그 자만심도 우습다. 평생 한자리에서 같은 하늘을 보며 다른 세상을 꿈꾸고 사는 나에게

왜 하필이면 그토록 섭섭한 의미를 붙였는지. 나는 울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은 그저 노란 수선화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사람들이 오면 오는 대로 깜깜한 밤이 오면 고개 숙여 잠을 자는. 홀로 살아 견디는

어리석은 인간이 물에 빠져 죽은 자리에서 싹을 틔운 노란 수선화다


혼자 있으되 외롭지 않은 수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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