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징악을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 읽는 모든 책의 주제는 "권선징악"이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 정해진 결말을 알기에 주인공의 고난과 시련을 벼랑 끝에 몰리는 위기에 닥칠 때에도 조금만 참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 진실은 결국에 밝혀지고 억울함은 풀리며, 오해했던 사람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과연.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틀에 박힌 듯이 혹은 어떤 규칙이 있는 듯 시련을 겪고 각성을 하며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는다. 옛이야기들의 묘미는 주인공이 나쁜 놈들을 얼마나 혼내느냐에 달려 있었다.
나이가 들고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때쯤 책과는 다른 세상에 혼란을 느꼈다. 지고지순한 사랑은 어리석고 미련하며 착한 사람은 속절없이 당하기만 하고 입바른 소리 잘하고 시대의 흐름을 잘 읽는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한다.
이야기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굉장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꿈을 좇으며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꿈을 이룬다는 것은 그리스인 조르바나 가능한 일이었다. 적당히 세속적이고 은근히 돈을 밝히며 사람들의 평판을 무시할 배짱이 없었던 나는 오래전 꿈을 잃은 채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 속없이 허허 웃으며 살고 있다
그런 게 인생이지 뭐. 인생 뭐 있어? 내 몸 건강하고 무탈하면 그만인 걸.
거짓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느라 입술은 마를 새가 없었다.
세상의 모든 작가는 거짓말쟁이다. 안 되는 걸 알고 있으면서 된다고, 하면 된다고 썼다. 착한 사람은 봉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나쁜 사람은 성공하는 세상을 사는 작가들은 방구석에 틀어박혀 그래도 권선징악은 존재한다며 헛소리를 하고 있다.
순수의 시대. 그런 게 있다면 참 좋겠지만 없으니까 그래서 만들어낸다. 작가들의 상상으로 없는 걸 만들어낸다
넥플릭스에서 <사냥개들>을 봤다. 8부작이었는데 이틀 동안 몰아봤다.
내용은 단순하다. 집안이 망한 김건우는 힘을 키우기 위해 복싱선수가 됐다. 홍우진은 복싱대표선수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곁에서 맴돈다. 홍우진과 김건우는 권투시합결승전에서 만나고 김건우가 이겼으며 둘은 친구가 된다. 해병대 선후배라는 끈끈한 줄에 연결된 채. 그들의 세계는 사채업자 김만길과 연결되어 있고,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된다.
코로나로 매출이 떨어진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는 건우의 어머니는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사채업자의 노예가 된다. 건우는 어머니의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사채업자의 사냥개가 된다. 언제든 돈이 문제다
오랜만에 몸으로 부딪치는 드라마를 봐서 좋았다. 주인공인 김건우와 홍우진은 권투선수로 나오는데 그들의 싸움을 보면 예술적이었다. 사람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움직임 하나에 눈을 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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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나 총은 싫다. 비겁하다. 동물들은 눈앞의 먹이를 두고 몸으로 부딪친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비겁하게 무기를 들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몸과 몸으로 부딪힌다. 사람이 무기를 만들게 된 후부터 동물과는 차이를 두게 됐지만 참 많이 비겁해진 것도 같다. <사냥개들>에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사람을 악으로 두고 사람 닮게 살려고 하는 사람을 맞은편에 두었다.
돈 앞에 장사 없다지만 적어도 자신이 한 만큼만 받을 줄 아는 사람을 등장시킴으로써 작가는 자신의 로망을 실현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는 꾸며 쓰는 글을 싫어했다. 판타지, 환상이 담긴 글은 허무맹랑하다고 폄하했다. 반성한다. 적어도 작가들은 그런 세상을 그려냄으로써 팍팍한 현실을 살아갈 힘을 독자들에게 안겨 준다.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지만 그래도 권선징악을 믿으면 설령 지금은 당장 달라지는 것이 없어 보여도 언젠가는 바뀌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냥개들>은 주인공들의 고난과 각성과 복수의 삼박자가 잘 어우러져 있었다. 악인이 강할수록 극이 재밌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똑같은 인간이 되지 않은 채 이겨서 좋았다. 비록 그들이 좀비처럼 칼을 맞고 30대 1로 싸워도 살아남지만 그 정도는 봐 줄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