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농사일에 지친 부모님은 언제나 9시면 곯아떨어졌다. 주말만 기다렸다. 안방에 있는 흑백텔레비전의 소리를 제일 작게 하고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영화를 봤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풍성한 주름치마를 입은 예쁜 외국여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말을 타고 다니는 남자들과 키스를 할 때마다 부모님이 깰까 봐 가슴이 콩닥거렸다. 영화 속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었다. 마음 같아선 바보상자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친구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 방에 야한 비디오테이프가 있다고 했다. 친구와 안방 문을 잠그고 떨리는 손을 서로 꼭 잡은 채 비디오테이프를 틀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시간이었다. 두 살 어린 친구의 여동생이 엄마에게 다 말한다며 빨리 문을 열라고 난리를 펴도 우리는 절대 문을 열지 않았다. 제인 마치와 양가위 주연의 <연인>이었다. 손만 잡아도 어찌나 가슴이 떨렸던지. 처음 본 사랑영화였다.
고등학교 때는 뭐니 뭐니 해도 홍콩영화였고 유덕화였다. <천장지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다.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고독한 유덕화의 눈빛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오천련의 얼굴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사랑은 새드앤딩이라는 것. 그렇지만 한 번쯤은 해 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다. 유덕화의 오토바이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지만 나는 오천련이 아니었고, 제주에는 유덕화도 없었다.
양조위의 중경삼림을 보며 호텔 캘리포니아를 들었다. 양가위의 동사서독을 보며 중국의 사막을 헤맸다. 임청하의 동방불패를 보고 나서 잠을 자면 밤새 지붕 위를 날아다녔다. 그리고 인생영화를 많았다.
양조위와 장만옥이 그려낸 아름답고 슬픈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 OST인 등려군의 노래와 함께 어우러진 완벽한 영화였다.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영화 속 두 사람의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에 나를 투영시키곤 했다.
열 번 이상 봤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포인트가 나타났다. 눈빛이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지 마음이 표정에 어떻게 나타나고 숨기려 하는데 숨길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그 시절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등려군의 CD를 선물했고, 사랑하는 사람과 어깨를 기대고 첨밀밀을 봤다. 남자친구가 커다란 첨밀밀 영화포스터를 선물해 줘서 액자로 만들고 휑한 자취방 벽에 걸어놓았다.
오랜만에 남편과 넥플릭스 영화를 봤다. 유오성, 장혁 주연의 <강릉>이었다. 가끔 남자들만의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들만의 세계, 내가 모르는 짐작할 수 없는 세계를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다.
유오성 배우는 김길산이란 인물 그 자체였다. 강원도 사람인가? 정말 깡패 아냐? 호랑이 같다. 는 말을 주고받았다. 장혁은? 그냥 장혁이라는 생각을 했다. 뭘 해도 추노의 장혁이 생각난다. 그냥 내 생각이다.
건달들의 세력다툼과 배신, 목숨을 건 싸움은 색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 생각했다.
예전에 내가 봤던 조폭영화에서는 적어도 싸우는 명분이 분명했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거나 배신자를 처단하려고 하다 함정에 빠진다거나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불구덩이에 뛰어든다든가. 뭔가 인간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조폭이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결국 다 같은 사람의 이야기니까. 영화 <강릉>에서는 사람의 이야기가 없었다. 단지 자신의 이권을 위해 살인을 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돈밖에 없다. 돈 앞에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과 대립되는 악인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한다. 절대 악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 사람에게 공감되는 어떤 것이 있을 때 너무 밉고 싫은데 짠하다고 느껴질 때 재미가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대립자가 그저 싫기만 했다. 너무 싫어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는데 또 불사신같이 아무리 다쳐도 살아남아서 싫었다. 주인공에게 너무 당하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솔직히 그냥 영화가 끝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사람과 싸우는 이유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돈이 될 때 이야기가 얼마나 허술해지는지 알게 됐다. 극 중 누군가의 말처럼 낭만이 사라진 이 시대에 돈 외의 다른 것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였을까?
아름다운 강릉의 풍경도 사람들의 욕심과 이기주의 앞에서는 이용할 가치로 전락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시대가 변하는 것에 맞춰 변한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을까?
보고 나서 또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잊고 살다 어느 순간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 순간에 딱 어울리는 대사에 무릎을 탁 치기도 한다. 장면과 어우러진 음악이 감동을 배로 만들기도 한다. 잘 만든 영화는 상상할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 사람을 웃고 울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빠져 들게 한다. 가끔 영화가 끝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영화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과 적대자의 관계는 선과 악도 아니고 사회와 개인도 아니고 국가권력과 인간의 존엄성도 아니다. 적대자는 인간을 위협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인간을 인간 닮게 만드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이 적대자가 되었을 때 주인공은 어떻게 싸워야 할까? 과연 이길 수는 있을까?
영화 <강릉>을 보고 나서 우리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영화를 기억할까? 궁금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한다. 많이 보고 많이 느껴야 하는데 아쉽기도 하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주말을 기다릴 새도 없이 넥플릭스만 틀면 뭐든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는 지금 아이들에게 씨도 안 먹힐 생각만 하고 앉아 있다.
너무 빠른 것도 너무 편한 것도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