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붙은 내 인생
디자인을 배우던 동생이 과제로 선인장 일러스트와 ‘말라붙은 내 인생’이라는 제목의 과제를 보여줬다. 그날 이후 제목과 이미지에 꽂혀 다음에 쓸 소재로 쟁여 두었다.
‘비’가 주제인 이 장에 말라붙은 내 인생이라니, 반어적이면서도 딱 맞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싶다. 말라붙으면 반드시 물기가 필요하다. 더구나 거의 없는 상태면 일상을 윤기 나게 할 어떤 습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말라붙은’은 ‘권태’를 의미한다. 말라붙은 내 인생은 즉 권태로운 내 인생이겠지.
권태라는 말이 얼마나 마음을 말라붙게 하는지를 나는 영화 ‘권태’『알베르토 모라비아 소설 권태』을 보며 알게 됐다. 이야기는 간단한데 한 이혼한 중년 교수가 17세 누드모델에게 홀려서 권태롭지만 안정된 일상이 위태롭게 흔들이는 이야기이다. 결국 애인과 여행 가는 여자에게 돈까지 주면서 매달리는 이야기다. 그런데 스크린을 통해 남자주인공에게서 생기를 엿보았다. 그의 말라 붙은 일상에 단비 같은 그녀와의 만남이 그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이 어리석은 일에 알면서도 빠져드는 일을 이해하기로 했다. 알 수 없는 충동에 몸을 맡겨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인생이 말라붙은 줄도 모르게, 묵묵히 살아간다. 권태 속에서 내밀한 마음 어딘가에서부터 단비를, 사건을, 사람을 깊이 욕망하게 된다. 그러니 사람이 그런 사건에 어찌할 수 없는 마음으로 휘말렸을 때 비난보다 연민을 가져보자. 그리고 그 사람이 잠시나마 흠뻑 인생에 취할 수 있도록 축복하자. 그런 충동에 풍덩 온몸을 내던지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