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립출판제작자의 하루
너무 몸이 안좋아서 오후에
집에 누워있었다.
오후에 메일 알람이 와서 읽어보니,
동네에 남아도는 아가씨 10권 재입고 요청이었다. 원래는 메일로 응대했어야 했는데 어제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바로 전화를 드렸다. 책으로 인연맺고 그곳에 이번에 3번째 입고하는데도 통화는 처음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밝히고 책이 없어서 많이는 못 보낸다고 말씀드렸다
"지금 동남아가 거의 없어요, 다른 책방서 빼와서 다른 책방에 돌려막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남아도는 아가씨 내용을 좀 더 보완해서 리뉴얼 할 계획이예요. 3월쯤 예상하고 있어요. 인쇄비 마련하면 늦어도 3월안에는 인쇄하려구요 지금 제가 소설집 택배송도 나가야하고, 브런치 글도 써야하고 그러네요..."
그냥 보면 되게 평범한 대화다,
여기서 포인트는 돌려막기, 그리고 인쇄비 마련이다.
"저 책 반품 받을 수 있을까요? 다른 책방에서 재입고 요청이 와서요"
이말은 즉 너의 책방에서는 잘 안 팔리니,
내책을 잘 팔아주는 데로 보내겠다 라는 말이 숨어있다. 나는 책을 빼올 때 미안하다 못해 죄책감이 든다. 내가 책방 주인이면 선선한 마음으로 책을 반품해줄 수 있나?
특히 겨울은 독립출판계의 비수기다. 사람들이 추워서 잘 안돌아 다닌다. 그럼 책방은 무생물인 수많은 책과 책방 사장 혹은 고양이가 있다. 손님이 안 오는 추운 겨울에 책방 사장님들은 무슨 생각이 들까?
어제 택배물을 보관해 준 홍대책방에 가서 마저 남은 택배물 포장하고 보내고 브런치 글 올리려고 다시 아픈 몸을 겨우 추스리고 책방에 갔다. 또 나는 포장지며, 이것저것 벌려놓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공연을 한다는 거다. 그래서 트렁크에 노트북부터 몇십권 책, 포장지 등을 메뚜기마냥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쓸어 담았다. 정신이 하나 없었고
옷도 제대로 못 챙겨입은 채, 다시 홍대 길가에 서있었다. 공연한다는 걸 몰라서 그저 있는대로 작업한 걸 챙겨온거다. 내가 또 민폐를... 내 개인 작업실도 아니고...
트렁크안의 책들은 너무 많고 나는 너무 죽을 거 같이 피곤하고 트렁크 안의 책들을 무조건 줄이고 싶었다. 근처 책방 두곳에 디엠이나 카톡은 남겼다. 한곳은 퇴근시간이고, 한곳은 출장중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화요일은 휴무라고.
요즘 날짜감각이 없다. 11.30일 퇴사이후에
곧장 소설퇴고에 매달렸고 인쇄소 가고 북콘서트하고, 지금은 이러고 있다.
수요일인줄 착각했다. 일단 트렁크 짐을 줄이고 집에 가서 눕고 싶었다. 그나마 한곳은 저녁 수업을 하는 곳이니 짐은 줄일 수가 있다!
홍익대학교 정문 쪽에 테이블이 있는 벤취가 있었다. 트렁크를 좌우로 벌리고 이것저것을
정리하는 가운데 내가 포장하려고 가져온 종이가 날라가고 알루미륨으로 된 텀블러도 계속 쓰러져 철퍼덕 넘어졌다. 또 이리뛰고 저리뛰고 했다.
문득 4월에 나갔던 퍼블리셔스 생각이 났다. 차라리 그때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따뜻했으니까. 정말이지 춥더라... 가까스로 멘탈 정리하고 상수역쪽으로 트렁크와 쇼핑백을 이고 걸어갔다. 거의 삼거리포차쯤 왔을 때 택시가 겨우 잡히고 탔다. 그리고 망원에 도착했을 쯤 택시를 세웠다. 가는 책방이 골목 안쪽에 있기에 말이다. 또 트렁크를 끌고 걷기 시작했다. 작년 6월 이후에 너무 오랜만에 가는거고 밤에는 또 야맹증이 있다. 길을 잘 못 찾는다. 가까스로 또 정신을 차니고 지도앱으로 책방에 갔다.
가보니 한참 수업중이었다. 사장님이 따뜻한 차와 캠핑의자에 앉도록 해주셨다. 의자에 앉자마자 그냥 몸이 의자에 감기더라
너무 편해서. 평상시면 불편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진짜 몸이 의자에 폭 하고 감겨버렸다. 이대로 몇시간 의자에서 기절해버리고 싶을만큼. 의자에 앉아서 블라인드북 작업을 했다. 영화 소공녀 포스터를 활용해 덮고 「움트다,마음」에 내 싸인과 홍보문구를 적어드렸다.
9시 마침 이 모임의 신년회가 있었다.
실은 너무 배가 고팠다. 점심도 진짜 대충 먹어서. 일본식 이자까야에서 아까 못한 수업합평은 진행하고 술과 안주가 나오고 있었다.
또 눈치없이 염치없게도, 내 눈은 그냥 연어사시미랑 가쓰오부시가 뿌려진 우동볶음만 보였다. 그래도 민폐니까,
참으려 했는데 어느새 연어 사시미 한점이 내 입에 녹아들었다. 난 요즘 혀가 말썽인데도
너무 맛있었다. 실은 너무 과로를 해서
혓바늘이 돋구 갈라지기 직전이다. 그래서 매운거 자극적인거 못 먹는다. 그런데 일본식 해물짬뽕이 또 눈 앞에서 보글보글 끓어댄다. 앞에 분이 작은 접시에 챙겨주신 걸 또 허겁지겁 흡입하다 혀도 아프고 사레도 들고 뿜기 일보직전이었다. 겨우 물을 마시고 진정했다. 몸이 노골노골 풀리고 있었다. 그냥 집에 가서 뻗고 싶었다.
"사장님 여기 회비 N/1한거 나옴, 알려주세요"
그러는데 사장님이 손사래를 치시며, 그냥 가랜다. ㅠㅠ 실은 이분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책내고 입고 하러 갔다가 우연히
학교얘기하다가 알게 됐다. 정많은 내 동창사장님은 늘 이리 날 챙겨주신다.
트렁크를 챙겨들고 나오는데 또 사장님이
무거운데 어떻게 가냐고 걱정해주신다.
"이게 독판인가봐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예? 독판이요 ㅎ 알겠네요"
독하디 독하게 고생하는 독립출판말이다.
춥고 배고프고 남들한테 민폐 잔뜩 끼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 일이 좋고 비로소 이게 내길이라 확신이 드는데.
영화 「소공녀」 속 미소는 결국 한강에서 텐트치고 살지만 나는 문제 많은 원룸이라도 따뜻한 잠자리가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트렁크를 끌고 역으로 향했다.
내가 조금씩 진짜 제작자가 되어가는구나 이상한 희열을 느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