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을 내기 전부터 글쓰기 공모전, 외부지면기고 등으로 꾸준히 글쓰기 근육을 늘려왔다. 많은 도전은 실패했으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깨달아보니 실패했던 순간이나 소소한 성공의 순간에도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모든 일에 스텝 바이 스텝이 있듯이 나의 글쓰기 궤적 또한 그렇다, 뒤돌아 보니 나를 성장시키는 소중한 시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글을 씀으로써 욕심만 앞서던 급한 마음을 다독이며 하나씩 하나씩 목표하던 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첫 책을 준비하던 5년 전에 비해 그 시간들의 보상은 많은 지식과 노하우를 알게 되었고 정보과 글을 정리할 수 있었다.
글을 쓰고 난 후 가장 기쁜 순간은 내 글을 보고 어떤 마음의 울림을 받았다던가 아니면 나의 영향을 받아
책을 만들었다는 사람을 만났을 때였다. 맞다, 혼자 쓰고 좋아하는 것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글이 전달되고 타인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쳤다는 피드백을 받는 것보다 기쁜 순간은 없을 것이다.
내가 조금씩 글을 공개했을 무렵부터 내 글도 같이 자랐다.
*글쓰기에 대한 이력과 공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외부 지면 글을 공개합니다*
<서울이야기 공모전> 특선 _ 우리 동네 다독다독 이야기
우리 동네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 있어요 동네 주민 누구나 오다가다 편하게 잠시 마실을 갈 수도 있고 차를 마실 수도 있는 곳 서울은 참 화려하지만 그만큼 그 화려함에 빛에 가려 그 진가가 가려진 곳이 많이 있어요 이 다독다독이라는 공간이 그러한 공간이에요 어느 힘든 퇴근길 저곳은 어딜까? 하는 의구심만 품은 채 그 따뜻한 불빛에 선뜻 가지는 못하고 그저 1년여를 궁금증만 품은 채 흘려보냈죠 그 당시의 저는 회사 내의 고된 업무와 노동자로서의 가치가 바닥을 쳤을 때라 만사가 귀찮을 때였어요 퇴사 후 오다가다 작은 입간판이 눈에 뜨였죠 뜨개질 클래스를 한다는 그 당시엔 그냥 머리 굴리지 않고 단순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혼자가 기는 뭐해서 여동생과 같이 방문했지요 그곳은 뭐랄까 처음엔 그곳의 정체(?)가 매우 궁금했어요 북까페 같기도 하고 뭔가 배우는 곳이기도 하고 그리고 무슨 노조 집단의 쉼터 같은 곳이기도 하고 암튼 동생과 방문 이후로 그곳에서 뜨개질을 배우게 됐지요 우린 뜨개질만 배우면 돼하면서 집과는 7여분 거리라 가는 것도 가기 편했고 뜨개질이라는 하나의 취미로 나이에 무관하게 3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어느 목요일 저녁을 평화롭게 뜨개질하면서 보냈어요 뜨개질이라는 것이 부드러운 실을 가지고 시간을 들여 정성을 들이는 일이잖아요 그러한 실을 만지면서 회원들은 배우기도 하고 지난 한주에 일어났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기도 했지요 저는 처음엔 제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어요 뭔가를 끈기 있게 오래 하는 타입도 아니고 뭔지 모르게 이질적인 그곳의 분위기에 녹아들지도 녹아들 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였을 거예요 그런데 그곳은 정말 이상한 곳이었어요 분명히 뜨개질 수강료도 시내처럼 비싸게 받을 수도 있을 텐데 , 음료 값도 깎아주시고 그러지 않으셨어요 퇴사 후 임금체불로 골머리를 앓던 저에게 노무 상담을 해주셨고 뜨개질 샘과는 독서모임 멤버라는 인연도 계속 이어가게 해 주었죠 동네는 늘 심심한 곳, 자극이 없어 홍대나 강남을 나가야만 했던 저에게 말 그대로 편안함을 주는 동네 최고의 핫플레이스가 되었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고마웠던 점은 동생이 직장생활과 임신으로 인해 늘 힘들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다고 태교는 꿈도 못 꿔! 이렇게 마음에 여유가 없었는데 저보다 더 적극적으로 뜨개 모임에 나가게 됐어요 그러고 보니 다독다독서 외부 강좌도 초빙해 주셔서 정말 예쁜 크리스마스 카드도 만들게 되었어요 정말 예쁜 그 카드는 소장하고는 싶었지만, 평소 힘이 되어주는 네이버 포스트 작가님께 보내드렸지요 다독다독은 그런 곳이었어요 나만을 생각했던 나밖에 볼 줄 몰랐던 나에게 타인에 대한 마음을 자연스레 주고받게 해 준 곳, 동생이 출산할 때 갖은 출산 선물을 손수 만들어 주신 곳 그리고 저와 동생에게 늘 따뜻하게 대해준 곳 지난 일 년 동안 쉼과 정신적 기운을 주었던 곳……. 다독과 뜨개질 샘과 그 멤버들을 만난 저는 행운아였지요 이기적인 저는 제가 가고플 때 가고 가기 싫을 땐 안 갔지요 그래도 늘 변함없이 열려있는 그곳, 당시 세상 어디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제게 마음 한 자락 내려앉게 해 준 곳, 더불어 사는 공존(共存)의 삶을 자연스레 깨우치게 해 준 곳 그 사랑스러운 공간이 이제 겨울의 끝에 문을 닫게 됐어요…….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 아는 곳 그래서 주변의 화려한 카페에 가려져 있는 곳 카페는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 사기업처럼 수익 우선을 최우선으로 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세를 내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일주일에 하루 잠깐의 외출로 힘든 육아와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 준 우리 멤버들의 그 사랑스러운 시간도 그 소박한 풍경들도 우리의 기억 속에 머물다가 흘러가겠죠 참 안타까운 일이죠 말 그대로 우리 이웃들을 다독다독해주었는데 말이죠 서울은 참 변화무쌍하고 빠르고 빨라요 그게 장점이지만 어느 땐 그 빠름에 숨이 막히죠
저에게 잊을 수 없었던 한 박자 쉬어가던 여유를 주던 곳, 그 공간이 그리울 거 같아요!…….
우물쭈물하다 내 삽질할 줄 알았지 9호
공자는 불혹(不惑)을 정의하기를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현대에 이르러 수많은 마흔 둥이들이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세상일에 이리저리 휘둘려 수많은 삽질을 하며 흔들리며, 또 흔들리는 것을 전혀 몰랐나 봅니다. 77년 생 네! 딱 한국 나이로 전 마흔에 들어섰습니다. 12월생이라고 해도 난 아직 30대라고 앙탈을 부려도 그저 마흔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15년 12월 31일에 다시 인생을 리셋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 백수였고 자식도 남편도 없었고 덜렁 혼자만의 삶이 큰 숙제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어렸을 때부터 시시껄렁하게 생각했던 인생으로 누군가를 원망하는 삶으로 흘러갈 게 뻔했습니다. 내년엔 이러지 않겠노라 다짐을 마음속에 깊이 새겼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2016년 현재 지금도 백수고 남편도, 자식도 없고 여전히 제 방안에 혼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1년 만에 어떻게 드라마틱하게 인생이 얼마나 변할까요? 그러나 전 정말 많이 변했거든요. 그간의 많은 일들의 일부를 나열하자면 연기를 배웠고, 작곡을 했고 , 철학을 공부하고, 예전부터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글을 쓰리라는 오래 묵혀둔 소망도 실천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서도 일명 ‘여자들의 사춘기’라는 것은 교차로 계속 저를 괴롭혔습니다.
희망에 부풀어 의욕 있게 이것저것을 슈퍼맨처럼 힘든 기색 없이 처리하다가도 어느 때는 밥 수저 들기도 힘들 만큼 무기력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IF라는 가정법이었습니다. 매우 단순한 발상일 수도 있지만 내가 기혼이었다면 고학년의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고 무미건조하게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면 난 어땠을까? 하는 상상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들을 불평하며 툴툴거릴까 하는……. 일을 관둔 시기에 거둔 가장 큰 수확은 나 자신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관성대로 살았던 직장인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자 갈피를 못 찾아 한동안 힘들었지만 내 맘과 내 몸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 가고 싶었던 장소 , 만나고 싶은 사람들, 참여하고 싶은 모임 , 그리고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차근히 내 앞에 데려다주었습니다. 과거의 전 스스로 무채색이자 단순한 사람 , 난 매력 없는 수동적인 사람이라 칭했습니다. 온전한 나만의, 나만을 위해서 향유할 수 있는 취향을 조금씩 찾아가면서 아주 젊은 20대에서도 못 느꼈던, 순수한 열정 같은 것이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번 아웃되지 않고 강제로라도 멈추지 않았다면 아마도 몰랐을 것들입니다. 인생의 잠깐의 한순간이었지만 멈추었기 때문에 나에 대해 그리고 내 인생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엔 미리 걱정을 당겨서 했더니, 지금 누려야 할 것을 못 누렸더니 후회만 남았습니다.
다가오지 않는 미래를 당겨서 걱정하고 그로 말미암은 불안이 젊은 날의 저를 갉아먹었습니다. 그 결과 아쉬움만 남은 대충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심장이 시키는 일만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지금은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인생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기로 자연스럽게 나 생긴 꼴답게 살기로 했습니다. 딱히 행복하지도 않지만 과거처럼 불행이 내 등짝에만 딱 붙어있다는 피해의식은 없어졌습니다. 인생은 늘 그렇게 삽질만 하다 끝날 것입니다. 그래도 삽질을 해서 각자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하자보수라면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도 불안해하는 습관은 남아있지만 현재를 충실히 보내고 그 느낌에 충만해져 있는 저는 많이 넉넉해져 있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말은 festina lente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천히 서둘러라 급할수록 돌아가라)
어른이 되어가고 싶을 뿐, 되고 싶지는 않다. 10호
내일 눈뜨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기 전에 이런 주문을 외웠었다. 매일 무기력했고 매일 망상에 빠졌었다. 2015년 임금체불로 퇴사한 후 집에서 몇 달 동안 고민에 고민만 거듭했다. 내 문제점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이 40살, 비혼, 니트족, 각종 병에 시달리는 몸, 무엇보다 자존감 바닥……. 이러니 매일 아침에 눈뜨지 않았으면 했겠지.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그 어디도 가기 싫었고 이렇게 누워 있다가 암모나이트처럼 굳었으면 좋겠다 했다. 나이만 꽉 차다 못해 넘쳤는데, 전혀 어른답지 못했고 어른의 삶을 살고 있지 않았다. 비참했다.
우연히 남동생 방에 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지은이 하야마 아마리(가명: 나머지·여분으로 스스로 부여한 1년 치의 삶을 뜻한다).
나도 이 책의 주인공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시간 앞에서 괴로워하기보다는 시한부적인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서른아홉 살 어느 날의 결심이다. 일단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 늘 하던 부정적인 생각 말고, 1년간의 유예기간이 있다면 이처럼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살까부터 생각해봤다. 우선 나는 내 모든 것이 마땅치 않았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답 안 나오는 무의미한 정신 소모 말고 현재 혼자 하나하나 해결할 문제에 대한 해답 위주로 생각해봤다. 전에는 사고가 주로 자학과 자책이었다면 이를테면 공대생같이, 아래와 같이 현실과 맞닿는 해결 방식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 모든 문제점에 맞게끔 말이다
[싱글 SOLO]
*save 돈을 아끼고 모아라
☞내가 결혼제도가 맞지 않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중에 폐지 줍고 다니지 않고 가족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려면 경제력이 필수다.
*organize 재무 체계화
☞돈이 없음 안 써야 하는데 돈이 없어도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여행 등을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해서, 빚이 쌓일 수밖에 없는 소비 환희형 인간이었다. 꼭 교정해야 할 나쁜 습관이었다.
*labor 일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랑 단절되지 않고 심리적 소속감을 느낀다. 점점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고립된 생활 2년째가 되니 그냥 외로운 한 사람의 '섬'이 되더라.
*overcome 심리적 외로움, 경제적 압박 극복
☞나이 마흔에 여기저기에 징징거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들 살기 바쁘다. 내 정신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붙잡아야 했다. 이렇게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하자. 하나씩 도장 깨기 하는 심정으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 우선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자신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사소한 거부터 시작했다. 11시나 12시 기상 시간을 조금씩 당겨 봤다. 건강과 활기를 되찾으려면 아침이 필요했다. 그리고 늦은 기상으로 아침에 부모님께 듣기 싫은 잔소리를 여러 차례 들어야 했다. 한 달반이나 두 달 사이에 연습 삼아 일어나는 시간을 조금씩 당겨 최소 9시에는 일어나는 시간으로 변경했다.
오랫동안 사회생활하느라 내 감정, 상처 받은 내 마음을 확인하는데 시간을 썼다. ‘처세’라는 이름으로 사회생활하는데 염증을 느껴서이다. 여러 회사를 전전하고 감정노동을 오래 해서인지 냉동인간처럼 감정이 차가워져 있었다. 시니컬한 걸 넘어 타인에게 감정이입을 잘 못했다. 내 생애 가장 분노 에너지 ✕ 들끓는 시기였다. 내 안에 그득한 독부터 빼내야 했다.
★아래의 표를 보면 나의 변화가 한눈에 보인다. 글로 3년간의 행적과 구구절절한 사연은 이루 말할 수 없어 간단히 표로 만들어 봤다.
연도별 변화
어른은 이래야 한다는 ‘당위적 사고’에 많이 힘들어했다. 사회 기준에 미달되어 어중간하게 사회에 휩쓸려서 살아가느니, 인생의 방향키를 나에게 맞춰 살고자 했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사회가 짜 놓은 구조 속에서 억지로 끌려다는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인생의 방향키를 잡고 가는 사람이다. 위의 표 대로 처음부터 기획서 쓰듯이 시간을 살아낸 게 결코 아니었다. 한 치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손으로 발로 직접 뛰어다니면서 체득한 나만의 로드맵이다. 이렇게 3년 살아내니 불가항력인 문제 외에는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어졌다. 이전에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워서 인생의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 이제는 다르다. 아침이 기다려지고 기대가 된다. 이제는 인생을 나만의 방식으로 주도하면서 살아서이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정의이다. 다만 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싶을 뿐, 되고 싶지는 않다. 되어가는 과정 속에 의미를 찾을 뿐이지, 어른의 무게를 지고 가면서 그 무게에 무릎을 꺾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을 충실히 살아갈 뿐이다. 오늘 하루를 1인분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많은 어른의 어깨가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아직은 설익었을 뿐이다.
9월의 어느 멋진 날에 드리는 답장 _ 좌충우돌 인생의 방향키 잡기_ 심화 편 11호
Q: 중년 비혼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하고 싶은 바를 추구하는 노하우를 대방출해 주세요^^
정보성에 중점을 두고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면 좋을 거 같아요!
A: 저도 알고 싶어요 ……. 정말로, 레알 트루 또르르…….
원고 의뢰 날 : 9월의 어느 멋진 날.
발신인: 한번 연을 맺으면 끊을 수 없는 당신의 영혼의 사채꾼, 레알 에디터님.
수신인: 동네에 남아도는 아가씨의 작가 준.
이 글은 10호 ‘어른 찾아 삼만리’ 좌충우돌 인생의 방향키 잡기의 심화 편이라 할 수 있겠다. 어른이 되려면, 비혼 여성이 단단해지려면 돈을 아끼고 모아라, 재무 체계화, 일 , 심리적 외로움, 경제적 압박 극복을 해야 한다고 했었다. 아래 통계청 자료를 보건대, 비혼 인구가 늘어가고 있다. 이 집단은 늘어가고 있는데 정작 그들의 삶에 대한 지표나 그들이 어떻게 경제력을 유지하며, 하고 싶은 일에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쏟는가? 에 대한 특히 ‘비혼 여성’에 대해 알려진 거의 바는 없다. 이들은 새롭게 등장하는 분류군으로 존재하되, 존재감을 드러낸 적이 없다. 이전에는 없었기에 추적 관찰 결과로 ‘이들이 어떻게 살았다더라’라는 통계도 없다. 그래서 협소하지만 정부의 파트타임 근로자이자, 독립출판 제작자로의 나의 삶에 대입해 보려 한다.
생계를 유지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작년부터 준비했던 거 같다. 또박 또박 월급 나오는 회사원에서 비정기 수입의 프리랜서로 전향을 강력히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 책을 열심히 만들었고, 홍보하고, 독립서점에 입고시켰다. 그리고 작업실 겸 가족으로부터 개인 시간을 분리하기 위해 독립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생활이 원활히 유지돼야 한다’는 조건에서 정부 일자리를 지난 4월부터 하고 있다. 독립 초라 노동과 자아성취가 잘 되고 있다 라는 답을 내리기가 아직 이르다. 앞으로의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나라는 한정된 자원’과 ‘나의 시간’을 매니징하고 있다.
0. 일_ 49:51의 비율로 노동과 책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오전에 책 작업 오후는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직업군을 선택할 때 20대, 30대 특성이 필요한 직업(체력, 정보화를 요하는)은 선택하지 않는다. 경쟁이 치열하고 나이에 맞는 직군 선택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내 경우는 돈보다는 ‘시간’이 중요했기에 파트를 선택했고, 4대 보장이 일반 회사보다 잘 되는 정부 일자리에서 찾았다.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 뉴딜일자리/ 각 구청 일자리 참조)
1-1. 경제력과 소비 철학 기준 지키기_ 통장 나누기를 통해 공과금, 생활비, 청약, 비상금 저축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계부 앱을 이용해 소비패턴을 파악하고 있다. 재무상 담을 하는 것도 추천, 자신의 돈 성향을 알 수 있다. 즉흥 소비를 하는지 꼭 필요한 곳에 쓰는지 파악 가능.
1-2. 소득 증대 준비와 기획_ 독립출판을 하기 전부터, 독립출판에 대한 트렌트를 수집하려 노력했다. 앞으로 노력을 더 해야겠지만, 책 반응이 좋으면 글쓰기 수업이나, 강연이 가능하다. 큰돈은 아니지만 이 역시 소득과 연결 지을 수 있다. 이외에 책에 관련된 수입증대를 고민하고, 기획하고 있다. 현재 책 제작비, 입고처 , 정산 등을 엑셀로 관리하고 있다. 출간 이후 소액이지만 고정수입이 생겼다.
2. 매니징_ 나의 심신건강, 시간 관리, 일 관리 등을 들 수 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보다 시간관리이다. 혼자라 공간도 분리했겠다. 얼마든지 게을러질 수 있다. 글쓰기는 일반 직업과 다르기에 정량이라는 개념이 없다. 언제, 어떻게, 어느 분량이 나올지 가늠이 안 되기에 날짜 작업 표를 두고 정해진 시간에 따라 쓰고 있다, 그리고 독립 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해야 할 ‘살림’도 꽤 된다. 달력에 쓰레기 분리수거 날짜와 세탁, 청소 등을 표기해 지키고 있다. 스케줄러, daily To do list를 체크하며 지키고 있다. 쓰고 반복하면 관리 가능하다.
3. 마인드 컨트롤 & 좋은 준거집단_ 비혼 여성은 사회계층 중에 약자 of 약자라 생각한다. 스스로 강해야 하는 자. 그래서 위에 열거한 0~2번을 잘 지키려 노력한다. 그리고 나라는 한정된 에너지의 자원을 ‘고갈’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지금에 충실할 수 있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일을 선택할래? 자아성취를 선택할래? 는 비정하다. 얼마든지 길을 낼 수도 있고,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행복은 어디에 치중하느냐가 아니라 균형이며,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49:51의 비율로. 그리고 지속되어야 한다. 나의 최종 목표는 작가가 되는 거다. 그러기에 내게 좋은 영향을 주는 취향 맞는 친구, 나의 응원군,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같이 글을 쓰는 독립출판 제작자와 긴밀하고 밀도 있는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준거집단: 한 개인이 자신의 신념, 태도, 가치 및 행동방향을 결정하는데 준거기준으로 삼고 있는 사회집단)
에디터님의 원고 의뢰에 얼마만큼의 답이 되는지 모르겠다. 나도 방법을 찾아가고, 이렇게 저렇게 시행착오를 하고 있는 문제라, 생각을 정하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나아가면 된다. 당신은 스스로 병아리가 될 것인가? 계란 프라이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