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성 있는 시간의 합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이 유행했었다. 1가지 일에 만 시간을 들여 노력하다 보면 이루어진다는 말. 그런데 1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일을 하고 끝을 잘 못 맺는 사람은 소원을 이루지 못할까? 갈래가 여러 가지에 걸쳐 있어도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나아간다면 흩뿌려진 시간의 결과물을 모아진다면 원하는 한 가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작가교육원이 있는 여의도 건물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어렴풋이 알았다. ‘나는 드라마 작가가 되지 못하겠구나 많은 학생들 뒤의 들러리 겠구나’ 생각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예전의 나의 섣부른 판단을 뒤로하고 나는 독립출판물 작가가 됐다. 그 전에는 수많은 공모전에 글을 써서 보내는 습작 시간이 존재했다.
첫 책을 낸 후 너무 많은 생각에 치여 이 세계를 잠시 떠나 있을 때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겠구나 책은 이젠 더 이상은 못 만들겠구나 ‘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잠시 잊은 듯 회사생활에 집중했다. 그러는 가운데 나의 책들은 조금씩 팔리고 있었고 정산이 되고 있었다.
거제에서의 석 달의 강사생활이 끝나고 나서 요즘 하는 나의 일은 이 책의 원고를 느리지만 무심하게 한 자 한 자 쓰고 있고 서울시의 도서관에 강사 이력서와 강의계획표를 이메일로 송부하고 있다. 반응은 기대보다 그저 그렇다. 열심히 돌리고 있지만 강사가 될지 안 될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조금씩 노력하고 있고 나아지고 있다.
인간에겐 그런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고 내 계획대로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감각, 내 인생에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일구고 있다는 그런 감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작가교육원에 나왔을 때 끝이라 인식하고 글쓰기를 멈추었다면, 습작을 하면서 긴긴 시간에 고민과 노력을 녹여내지 않았더라면, 첫 책을 내고 크고 작은 어려움 때문에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남을 가르쳐보는 ‘보람’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나는 절대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갈래로 뻗어 있을 지라도 나는 ‘작가’라는 목표에서 벗어나지도 글을 게을리 쓰지 않았다. 장르가 다른 글이지만 드라마 대본, 서울시 공모전 글, 잡지 공모전 글을 , 소설 등을 꾸준히 써봤다. 그렇게 해서 나는 여러 장르를 오갈 수 있게 됐고 그에 따른 글쓰기 방법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의를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지 못해 자책하고 있는 특히 창작과 연관이 있는 지망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은 매일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걸 쌓아가고 있다고 그리고 꼭 결과를 내 보일 테니 매일 조금씩 노력함의 힘을 믿어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