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리추얼과 팁

영감을 키보드에 내려앉게 하는 법

by 강경아

매주 월요일마다 브런치 앱에 글쓰기 약속 알람이 울린다. 수강생에게 쓰도록 유도하고 등을 떠미는 입장에서 내가 글을 안 쓰는 것은 직무유기라 생각돼서 월요일마다 쓰도록 노력 중이다. 아래의 글은 글쓰기 초심자들을 위한 약간의 팁이다. 첫 문장의 공포를 잘 깰 수 있도록 정리한 글이니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른바 효율에 관한 글인데 하루키의 루틴을 떠올려 보면 쉬울 거 같다. 그는 새벽 일찍 일어나 대여섯 시간을 쉼 없이 쉬고 오후에는 달리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쉰다. 즉 집중과 몰입의 시간에는 글쓰기를 주력으로 그 외의 시간은 충전과 쉼의 시간으로!


키보드에 손을 얹었을 때 스르르 주르르 글이 잘 써지는 마법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영감은 확 하고 내게 오지 않고 테트리스처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 때 맞물리지 않으면 사라지고 만다.


눈처럼 왔다 사라지는 영감을 잡아채 흰 여백에 안착하는가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겠다. 이 방법을 알아내 지난번 수강생들에게 말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기껏 말해준 것은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말과 원고를 쓰고 나서 차갑게 식힌 후 시간이 지나서 다시 써보라는 팁이었다.



실은 나만의 방법이 있긴 하다. 무엇인가 하고 보니 되게 단순하다. 나란 사람은 책상 의자에 오래 앉을 수 없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새벽이든 늦은 밤이든 긴 시간 동안 화면 앞에서 앉아 글을 쥐어짜곤 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길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서 현재는 다른 방법과 다른 관점으로 글에 다가서고 있다.

일단 내 몸이 원하는 방향과 머리가 원하는 방향을 일치시켜 본다. 가령 내 몸은 나가서 걷고 싶을 수도 있고 먹을 것과 한 잔의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데 억지로 나를 모니터 앞에 앉혀두면 글이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컴퓨터 앞에 앉아 무엇을 쓰든 주르르 나올 때까지 마음을 달래서 앉히는 것이다. 이것은 리츄얼(무엇을 하기 전 하는 의식)과 관련되어 있는 방법이다.

나는 주로 오전 11시에서 12시 넘어서까지 작업을 하는데 간단하게 아침을 차려먹은 후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서 천천히 마신다. 멍한 상태로 커피를 내 몸에 주입하는데 실은 이 커피가 잉크가 되어 흰 여백에 찍히는 것이다. 마음이 천천히 부스터 되어 글을 쓰고 싶은 마음과 의자에 앉는 자세가 일치할 때 비로소 글이 써지고 그동안 무형의 아이디어로 둥둥 떠다니던 영감을 잡아채 글로 낚아 올리는 것이다.


최소한의 도구: 블루투스 키보드만 있다면 폰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영감이라는 수용체를 느끼는 통로는 바로 우리 주변에 있다. 음악, 음식, 예능, 뉴스 , 집 앞 고양이 형제, 나무, 전철, 라디오 등 곳곳에 있는 평범한 소재에 따라 나의 의식이 흘러가다 보면 어느새 영감 창고로 쌓이는 것이다. 정리하면 글을 쓰기 전 모든 잡다한 일들 고지서, 인스타그램, tv, 집안일, 드라마들을 다 섭렵한다. 그리고 밥과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앉는다, 두드린다.


우리 몸과 마음은 교활해서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에 더 집중하고 있다. 나의 방법인 즉 나를 방해하는 하고 싶은 일을 그냥 하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시점까지 그냥 자유로이 나를 방목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새 커피를 마신 후 집중력이 차올라 자판을 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마음이 들도록 나를 길들이고 다독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내 안에 쌓여있던 생각과 감정의 여과물을 걸러 순도 높은 영감을 글로 녹여내는 것이다. 그게 다다.


앞의 리츄얼이 잘 되면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1페이지 분량의 작은 이야기가 완성된다. 물론 초고이긴 하지만.


내 작업실은 현재 내 방이다.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몇 가지 조건의 리츄얼을 걸었다. 원고 계획표에 따라서 쓸 것, 딱 1시간이라도 집중하며 쓰며 그 시간 안에는 딴생각을 하지 않기, 그리고 잘 써지지 않으면 바로 키보드에서 미련 없이 손을 떼고 만다. 무언가 중단 없이 계속 쓰다 보면 말이 잘 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은 말들이 중언부언하고 덕지덕지 붙기 때문이다.


그 외 기본을 지키는 편인데 출간 기획서에 따라 글을 쌓아가는 것이다. 기획의도에 맞는지 내가 생각한 아웃라인에 맞게 글이 생산되어 가고 있는지 그리고 몇 줄이라도 꾸준히 쓰고 있는가를 말이다. 글을 쓰고 난 후 몇 퍼센트나 진행했는지 그리고 오늘의 날짜를 같이 원고 계획표에 조그맣게 메모해 놓는다.

글을 쓸 때 마감기한 없이 쓴다는 건 글을 쓰는 시간 대신 딴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주는 것이다. 벌써 네 번째 책을 쓰는 거지만 첫 책부터 지금까지 이 방법으로 책을 썼고 책을 쓰는데 실패한 적은 없다. 누가 등 떠미는 사람은 없지만 등이 떠미는 그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형식에 대한 고민이자 작업방식에 대한 일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점이 있다면 기획의도를 처음부터 깊게 생각하곤 한다. 현재 쓰고 있는 가제 ‘지금도 행복해지는 중입니다’ 같은 경우 2021년 팬톤 컬러에서 영향을 받은 거다. 희망의 노란색, 강함의 회색을 바탕으로 우리 생활에 대입해서 쓰고 있다. 물론 이 코로나 시기에 대한 애기도 빠질 수 없다. 그러면 목차를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하는데 이 찰나를 놓치지 않고 바로 목차에 반영해야 한다.


최소 20개의 소제목이 나올 수 있도록 쭉쭉 써 내려간다. 글의 최소 단위인 중심 소재와 분량이 나온다. 20개면 원고지 600페이지의 얕은 단행본 분량이 나온다. 기획이 먼저 바로 다음이 이렇게 중심 소재를 뽑아내는 목차 작업까지 한다면 30%의 작업이 끝났다고 본다.


책 한번 써봅시다 :장강명
책 한번 써봅시다 :장강명

글을 쓰는데 미사여구를 많이 남발하지 말 것, 한문 단어를 많이 쓰지 말 것, 깔끔하게 문장을 쓸 것 이런 조언은 흔한 조언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요점이 이것이다. 일 할 프레임을 짜야한다는 것이다. 제목을 잘 나타내는 기획과 목차에 따라 글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저 쓰기 시작하면 된다.


바로바로 글이 잘 안 나오는 것은 당연한 거고 자꾸 글에 자기 검열이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목차에 충실한 글을 쓰다 보면 어떤 감을 가지게 될 거고 그 감이 확신으로 응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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