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 after
"짜장면 나왔습니다!"
석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짜장면을 내려놓은 그녀의 손보다 그녀의 긴 속눈썹에 한순간에 빠졌습니다. 석이는 오직 그와 그녀만이 있는 것처럼 공기가 멈추는 것을 느꼈습니다. 식당의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목재상에서 일하는 석이는 호기심과 앞날에 대한 긍정도 가득한 청년이었죠. 장교로 지원했지만 색약이라 떨어지고 없는 집의 장남이라는 무게까지 있는 그였지만 말이죠. 요즘 그의 머릿속에는 '순이'라는 여자가 차지하고 있었죠.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긴 속눈썹의 그녀가 생각이 났죠. 고민 고민하다 그녀의 친구에게 친근하게 굴며 그녀가 좋아하는 것과 쉬는 날엔 뭘 하는지 물어봤죠. 이걸 나중에 순이가 안거죠! 석이는 안거예요. 순이 친구 곁에 맴돌면 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질 거라는 걸. 석이는 또래 남자보다 키가 작고 얼굴이 평범했으나 밀당을 아는 영리한 청년이었죠. 그리고 3번만 만나면 자신의 운명의 여자를 알아 볼 수 있다는 ‘촉’을 가진 남자였죠.
.
.
.
1년 후 눈이 소담스레 내리는 어느 겨울, 석이와 순이의 첫 아이가 태어났어요! 석이는 돌림자가 있는 집안의 딱딱한 이름보다 아이에게 특별하고 의미가 있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죠. 한자사전을 찾아보며 빛날 경 맑은 아라는 음을 따서 '경아'라고 지어주고 스스로 흐뭇해했죠. 그리고 그 아이는 커서 어느 모임을 가도 "돌아와 경아~~ 돌아와 경아!~~~" 라고 박 혜성의 경아라는 노래로 평생 고통 받습니다 ㅎㅎ
네 이 이야기는 부모님의 러브스토리입니다. 중간에 급 스킵이 됐네요. 제가 들은 이야기가 그들이 처음 만난 순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부모나 자식에게는 연애 이야기를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죠, 그들의 연애보다 자식들의 연애가 우선이고 현재니까요.
제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하니 ‘내가 사랑한 최초의 남자는 바로 석이구나’ 싶었어요. 내가 본 최초의 남자였으니까요. 그리고 내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으니까요. 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주 젊은 시절의 아빠는 퇴근 후에 저와 놀이터에서 자주 놀아줬다고 해요, 그때 했던 이야기들이 생각나면 좋으련만 하고 상상을 합니다. 그 놀이터에서 아직 젊고 세상에 대한 긍정이 가득했던 석이라는 남자를 그리고 ‘경아’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아이에 대해서. 저 멀리서 ‘순이’가 그들에게 “저녁 먹으러 가자”하고 마중을 나옵니다. 세 사람은 어느덧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을 등지고 경아의 손을 한쪽씩 잡으며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현재 저희 부모님은 싸우면 며칠 서로 말은 안 하시면서 밥은 같이 드세요 또 서로의 늙음을 보완해주려 염색도 서로 해주십니다. 그 예전 오래전 처음 아버지가 어머니의 속눈썹에 빠진 이후로 줄곧 말이죠. 이것이 동화책 끝에 나오는 그들은 항상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의 Ever after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