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순간이 있기에 연애를 하겠지

루키라는 이름의 바텐더

by 강경아

아는 동생과 만났다가 늦은 저녁 집 근처 역에서 내렸다. '이디야'가 문을 닫았다. 그 점포는 그 몇 해 전에는 파리바게트였다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7년은 '너바나'라는 Bar였다.


그곳에서 루키라는 이름의 바텐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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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J였다. 그는 손님으로 온 나를 살갑게 챙겼다. 첫날 본 이후로 요즘 유행하는 " 강프로 식사 잡쉈어?"(수리남)의 부드러운 버전인 "경아 밥 먹었어?"라고 우리 엄마도 안 챙기는 내 밥을 꼬박꼬박 챙겼다. 20대의 나는 뭐랄까? 저런 흔한 안부 말에 심하게 흔들릴 만큼 항상 애정을 확인받고 이해받고 싶은 서글픈 청춘이었다. 그러기에 그런 단순한 멘트로도 마음이 활짝 열렸다.


그가 운명이라곤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가 하는 문자와 연락이, 자신이 매니저가 있는 bar의 매출을 올리기 위함인 걸 누구보다 뻔히 알았지만 그래도 그를 보기 위해 '너바나'에 찾아갔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그와 통화하다가 나 너바나에 가려고를 “너 보러 가려고”로 잘못 들어 착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닌 걸 알았을 땐 조금 슬펐다.


그는 주말마다 하는 바텐더들의 칵테일 쇼에서 날아다녔다. 주변의 공기마저 그의 몸짓 하나에 좌우되고 숨을 죽이게 만들었다. 그가 알콜을 입에 머물고 불을 시원스레 공중에 날릴 때면 그가 다칠까봐 얼마나 마음이 조마조마 하던지 그가 쇼 중간에 우리만이 아는 표정과 눈빛으로 날 바라볼 때 마가리타를 마실 때처럼 달콤하고 짜릿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 그를 보며 '재는 바텐더가 천직이다'라고 생각을 했다.


마가리타


친구와 썸 타는 사이를 아슬하게 건너 다니다가 지쳐 떨어진 건 나였다. J는 나쁜 남자를 더해 '돼먹지 않은 남자'였다. 소위 바텐더는 젊음이 디폴트 값이다. 그 너바나 매니저 자리를 박차고 나와 따로 바를 차렸다가 망했다. 그때부터는 내가 착하다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술을 밥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가끔 쌀이 떨어졌다, 공과금을 내야 한다며 나에게 손을 벌릴 때마다 충실하게 그의 요구를 들어줬다, 아마 그를 좋아했던 시간만큼 나는 그에게 ‘보상 받을 시간’을 기대 했던 거 같다. 그러나 마지막은 곧 다가왔다. 그 와중에 " 나랑 사귀자! "라고 했으나 그는 그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주저했다. 아마 그의 젊음이 정점이었을 때 만났던 여자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날 그가 살던 월세 방을 집에서 뺐다며 잘 곳이 없다며 나를 찾아왔다. 당시 난 8시간 서서 화장품을 파는 판매 사원이었다. 퉁퉁 부은 다리로 하루 종일 서서 점장 눈치 보며 매장 먼지 뒤집어쓰며 온갖 손님들한테 시달리며 월급 받고 일하고 있었다. 그날은 월급날이었다. ‘이젠 끝이다’ 그 애가 주었던 손톱만한 추억과 낭만은 이미 오랜 전에 바스락거리며 사라졌다. 나의 어리석은 사랑에 대한 인내심과 그에 대한 이름 모를 감정들까지 모두 갑자기 땅으로 꺼져버렸다. 미리 뽑아놓은 소액 수표를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그가 있는 집 근처 공원으로 갔다.


실없는 농담으로 날 웃게 했던

“경아 밥 먹었어” 라며 항상 묻던

칵테일을 만들고 쇼를 할 때 누구보다도 빛났던 너



그런 너로 인해 나는 잠시라도 반짝였는데 이젠 그렇게 추락하여 내게 도움을 구하러 왔구나.

안타까움보다 기분 나쁜 짜증이 솟았다. 그의 손에 돈을 내팽개치듯 쥐어주고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고맙다고 말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실 정확히 기억에 남기기 싫었다!

시간이 흘러 그에게 전화가 왔다. 만나고 싶다고. 나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번호를 바꾸었다.



(특정 직업에 대한 선입견은 없습니다. 그 직업군에서도 사람 나름이란 걸 깨달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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