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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아 May 03. 2023

나의 사적인 빚밍아웃

개인파산 극복기

몇 달 전 생경한 경험을 했다. 바로 지인에게 나는 빚이 얼마며 어떻게 빚이 생겼으며 개인파산까지 했다는 빚밍아웃을 한 것. 바로 전날 500만 원의 대출을 받아서였다. 카드 값이 과하게 나온 동생이 빌려달라고 통사정을 한 것. 진짜 십 수 년 전에 어렵게 빚 청산을 한 후 크게 돈 빌린 일이나 신용카드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 나이기에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빚을 오픈하게 된 것. 예전이나 빚을 지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을 뿐 요즘에는 빚을 안지는 사람이 드문 경우라 서로 터놓고 얘기 할 수 있었다. 지인은 사업을 하다가 빚이 생겼다고 한다. 나는 좀 다른 그리고 특이한 경로로 빚을 지게 된 경우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못하고 대략 얼마의 빚이 있었고 현재 상황은 어떻다는 정도만 오픈했다. 다시는 빚을 만들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건만 사람 사는 일이 예외가 종종 발생한다. 나는 이미 2000년대 말 개인파산을 해본 경험자로써 돈에 대한 커다란 프레임은 공포 혹은 압박이라는 것을 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수 천통에 달하는 독촉청구서들

하루가 멀다 오는 역시 빚 독촉 전화 및 문자테러들

혹은 사채업자가 동네로 쫒아 와서 마주친 후 얼음이 돼 버린 것

그리고 집에 추심인이 닥치면 내가 본인이 아니라 동생이라 거짓말 한 일들

우리 가족이 독촉 전화를 받으면 멀쩡히 집에 있는 내가 가출했다고 한 일 등    

 

돈이 잘못된 방향성을 가지면 이런 문제가 연달아 일어나는 것이다. 이제부터 나의 사적인 빚밍아웃 그 블루지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돈은 수입 안에서 써야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겪은 여러 가지 일련의 일들은 사실 금융구조 혹은 사회 문제에 깊은 연관성이 있다.  

    

20대의 나는 뭐랄까 물욕이 꿈틀꿈틀 잠재되어 있던 호구 소비자중 하나였다. 때는 카드를 만드는 게 쉬운 때라 2~3개의 카드를 가지고 있었고 카드빚이 폭발한 계기가 있었다. 바로 그 당시 젊은이들을 꾀어내 큰돈을 벌수 있다는 다단계가 그 시작이었다. 아는 동생을 통하여 그곳에 현혹된 뒤 300여만 원의 물품을 샀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생각보다 돈은 쥐꼬리만큼 벌었고 그곳 사람들의 안내?에 따라 카드 깡을 하면서 빚을 키워갔다. 1년 이내에 사채사무실을 들락거리면서 차근히 빚을 키워갔고 결국 갚지도 깔아뭉개지도 못한 채 정확히 처음 300만 원은 10배 3000만원의 빚이 20대말에 생겼다. 

    

내가 쓴 돈이 아닌 빚이 3000원이 아닌 3000만원이 생기면 첫 번째로 실감이 안 난다. 그리고 속병이 발전되어 우울증 및 대인기피가 생기고 현실부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가족들의 질타 및 불신 등. 일을 하는데도 문제가 발생하는 건 물론이다. 내 명의 통장을 쓰지 못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며 양질의 일자리에 명함을 못 내미는 것이다. 한창 푸릇하고 꿈 많은 20대의 나이에 이미 큰 빚은 젊음을 나아가게 하지 못하고 나를 방구석 청춘으로 옮아 매게 만들었다. 그 때 겪었던 돈에 대한 공포심이나 매일 추심인에 시달리면서 내 머릿속은 내 발로 다단계 회사에 첫발을 내민 날에 대한 기억이었다. 감히 빚의 기세에 눌려 갚을 생각도 해결할 생각도 못하고 어디 도움을 구할 데가 없었다. 부모님도 갑자기 겪은 상황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셨다. 워크아웃이나 신용회복위원회 등을 알아봤지만 당시 뚜렷한 직장을 잡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아픈 상황에서 상환은 암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작은 회사에 다니던 어느 날, 내가 빚을 갚을 수밖에 아니 더 이상 뭉갤 수 없는 일이 드디어 발생했는데 바로  월급차압이 들어 온 거다. 사람이 살면서 두 눈앞이 깜깜해 지는 때가 있는데 바로 그날이었다. 그리고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말이 동시에 떠오는 날이 바로 이날이었다. 

     

나를 구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는 생각으로 두 눈을 비벼가며 밤새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 바로 법무사를 통해 개인파산을 진행하는 것 내가 어렴풋이 이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음에도 안 했던 건 '개인파산' 후의 금융기록이나 회사생활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등의 풍문을 많이 들어서였고 나의 사유(다단계로 인한 빚 발생)가 가능한가를 몰라서였다. 지금은 어떤 기준으로 개인파산을 시켜주는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 알아보니 나의 사유로 가능했다. 여러 개로 옮아져있는 개인채무서류와 빚 사유서와 선처를 바라는 글을 써서 법무사에게 넘겼다. 비교적 적은 소액으로 나는 어렵사리 빚의 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직도 법원에서 받은 선고 서류를 서랍 깊숙이 잘 보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서류가 아니라 젊은 날 내 실수에 대한 낙인이자 앞으로는 절대 빚을 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약속이기도 했기에.    

 

그리고 현재는 가장 확실하게 돈을 잘 쓰는 방법으로 살고 있다. 바로 내가 버는 범위 내에서만 소비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몸을 움직여서 돈을 벌고 있다. 가계부와 재무상담을 받았으며 나중에는 금융상담사 과정까지 공부를 하게 됐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를 가장 많이 생각했었고 긴 시간과 괴로움 끝에 한숨 쉰 다음 내가 한 생각은 돈에 대한 나의 태도를 되돌아 본 것이다. 내가 돈쓰기를 좋아하고 돈의 기쁨을 취할 땐 그저 즐겁기만 했는데 돈의 슬픔과 괴로움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니 생각이 달라진 거 이었다.      


1개의 신용카드만 쓸 것

대출은 가능한 하지 말고 했으면 소액으로

대출을 했다면 상환 일을 꼭 지키기

두세 번 고민하고 쇼핑하기

월급의 1/3이상 넘기지 않기

“내가 쏠게” 병 고치기

그리고 돈에 대해서 공부하고 건강한 가치관을 가질 것     


을 신조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한 젊은이를 빚의 구덩이에서 해방시켜준 사회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 갓 나온 젊은 청춘에게는 유혹이 많다. 나같이 다단계 회사든, 명품쇼핑이던 간에 필요이상으로 돈을 쓰게 하는 소비 마케팅이든 말이다. 그 보기에는 얕아 보이지만 쉽게 빠져 나갈 수 없는 빚의 맨홀을 잘 피해 나가는 길은 사회가 건강한 소비구조를 만들고 나 또한 돈에 대한 개념을 잘 이해하고 좋은 방향으로 쓰는 것이다.      


지난주에 몇 달 전에 대출했던 돈을 전액 상환했다. 내가 하도 걱정을 하고 신경을 쓰니 여동생이 갚은 것이다. 개인 파산을 하면 돈도 못 빌리고 신용카드도 못 만들고 하다못해 교통카드까지 제약이 있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다 가능하게 되었다.      


돈은 인생과 생활에의 윤활유이어야 하지 돈이 나를 옥죄는 사슬이 되면 안 된다. 내가 이제는 잊고 싶은 먼 과거의 빚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과거 나의 슬프고 사적인 빚의 괴로움을 지금 누군가는 현재 겪고 있기 때문이다. 돈에 의해 파생되는 그 괴로움을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나의 사적인 빚밍 아웃이 꼭 누군가에게는 멈춤을 혹은 도움이 되는 정보가 간절히 되기를 바라이다. 

특히 사회에 처음 발을 내민 초년생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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