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셋째 주는 저희 자매의 휴가 주간이었습니다. 원래 휴가는 한창 더울 때를 피해서 가는 거지요 ㅎㅎ 그 주 목요일에는 아빠, 엄마, 조카들과 가까운 을왕리로 고고 바다와 가까운 펜션을 잡아서 놀았습니다. 하루 자고 놀다 올 건데 마트에 가서 장을 27만 원 치나 봤는데 좀 오버였을까요? 뭐 괜찮습니다. 우리 가족이 먹을 거니까요 ㅎㅎ 대신 방은 12만 원대의 저렴한 곳으로 갔습니다. 부모님과 해수욕장을 가는 게 30년 만에 가는 거라 기분이 새롭긴 하더라고요.
펜션에 짐을 풀고 조카들과 바닷물에 몸을 담갔습니다. 물이 그리 맑지는 않았지만 뭐 그래도 바다 아니겠습니까? 일이 많은 서울과 고작 한 시간 사이에 고운 모래와 넘실대는 파도가 있다니 신기한 일입니다. 재미나게 물속에서 놀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꼬리가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플렉스 한 먹거리를 펼쳐놓고 먹을 준비를 해야죠,
숯불을 피우고 관자, 새우, 프랑크 소시지, 삼겹살, 목살 등을 올립니다. 아빠는 잘 태우시니까 여동생이 집게와 가위를 들었습니다, 저와 엄마는 샤샤삭 야외의 나무 테이블 위에 잽싸게 세팅을 합니다. 식사시간 중간에 꼬맹이 형제 둘이 서로 삐쳐서 네가 있으면 안 먹겠다 실랑이를 했지만 그런대로 6 식구 신나게 바베큐를 잘 먹었습니다. 여동생이 고기를 잘 구워준 덕분입니다, 중간에 고기쌈을 여동생 입에 넣어줬는데 와사비를 좀 많이 넣어줬다고 핀잔을 들었습니다. 힝 ㅎㅎ 식사가 끝나고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아버지의 한차례 말씀이 있으실지 알았는데 엄마와 바로 티브이를 보러 들어가시더군요 ㅎㅎ 이젠 할 잔소리가 바닥났나 봅니다.
조금 자다가 11시쯤 을왕리 바닷가로 동생과 나갔습니다. 그냥 자면 서운하니까요, 간간히 폭죽은 울리고 있고 밤은 고요하고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간간히 해안가를 사이에 둔 상인들의 호객 소리만 울리고요.
그리고 우리 휴가의 하이라이트 _ 작년에 이어 운동모임에서 래프팅을 가게 되었습니다. 2년여를 다닌 모임으로 저와 여동생은 아직 초보 탁린(탁구)이지만 사람들과는 가족처럼 친해졌습니다.
이번 래프팅에서는 물이 많지가 않아 작년처럼 빅재미가 없었지만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오랜만에 게임도 하고 난생처럼 포카도 배우며 일상보다는 조금 화려한 하룻밤을 보내다 왔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
여동생은 노래를 틀었습니다. 올 때는 동생과 나 둘만이 함께했기에 편안한 분위기였지요, 어제의 왁자지껄한 기분이 가시고 있고 차분한 이문세의 노래가 차 안을 감돌고 있었습니다. 마침 익숙한 동네 어귀가 눈에 밝히고 마음에 편안함이 펴졌습니다.
- 우리의 20년, 30년 후를 상상해 본 적 있어?
- 아니, 아직 멀었는데
저는 잠시 이번주의 우리가 참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20년 30년 후에는 건강하고 행복했던 평범한 오늘의 우리 자매를 참 많이도 그리워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 자매는 뭐랄까요? 그냥 우애가 좋은 자매라고 하기엔 특별한 자매입니다, 제가 폐쇄병동에서 약에 취해 아플 때도 갓 고등학생인 제 여동생은 제 병상에서 가만히 제 손을 잡아주었고, 제가 글이라는 열병에 끝없이 저의 가능성을 의심할 때 일단 써보라고 등을 밀어주었습니다.
그러한 동생에게 저는 어떤 언니였을까요?
늘 돈을 버시느라 바쁜 부모님 대신에 친구, 일, 연애 하다못해 결혼과 이혼까지 저와 먼저 상담하고 의논했던 동생입니다.우리는 한쌍의 너트와 못처럼 서로에겐 없어서는 안 될 자매간이지요.
그리고 어느 날인가, 사는 데 너무나 지쳐, 제가
- 내가 만약에 네 곁에 사라지면 어떡할 거야?
난 병도 있고 빚도 있고 가족들한테 짐만 되는 거 같아 그래서 내가 없어지는 게 나을 거 같아...
동생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거 같은 얼굴로
제게 말했지요
- 언니 때문에 힘들어도 언니가 끝까지 우리 옆에 있는 게 좋아!
사실 조울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겐 죽음은 삶과 한 세트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가늠할 수 없는 우울과 무기력에 늪에 빠지면 마치 자연스럽게 '죽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물론 일상생활을 잘하면서도 말이죠, 떼어낼 수 없는 타르처럼 껌처럼. 머릿속 어딘가 마음속 깊은 동굴 어딘가에서 늘 스탠바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 날 이후로 저는 한 번도 동생에게 죽음 그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살아갈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면 남은 가족들을 바라보며 그들을 위해서라도 의지를 짜내며 살아가야 한다고 무른 마음을 바로 잡았습니다. 그 이후는 빚을 해결하고 마음관리를 더 건강히 하였습니다. 저 때문에 사랑하는 동생이 슬픈 건 싫었으니까요.
저는 운전하는 동생을 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 나는 너보다 먼저 죽을래
-엥?
-혼자 남는 게 두려워 너보다 먼저 죽을 테니
네가 날 그리워 해줘!~
동생은 오래전 그날처럼 그 큰 눈에 눈물이 곧 고이더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습니다. 저도 난데없이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계절은 아직 여름인데 우리의 차 안에서는 이문세가 흐르고 우리자매의 진득한 마음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왜 행복과 슬픔은 맞닿아 있을까요?
너무 행복한 일상인데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아서일까요? 그날따라 유독 행복한 휴가 귀가길이 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