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와 등원을 하며 노래를 불렸습니다. 오늘의 날씨는 여름의 더움이 물러가고 가을이 선선함이 성큼 다가온 듯 큰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오늘이야말로 정말 좋은 하루 시작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저의 하루는 약간 무거웠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너무나 무거워져서 꺼낼 수밖에 없었던 쓰디쓴 다크 초콜릿.
윗글 나의 사적인 빚밍아웃에서 밝혔듯이 저는 20살에 친구 꾐에 빠져 다단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거기서 평생의 지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글에는 간단히 우울증과 대인기피라고 했지만 더 정확한 진단병은 '양극성 정동장애 즉 조울증'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23년에는 이상하고 또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 그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많아서 우울증이나 조울증 환자가 많아서 그게 뭐라고 할 수 있고 (정신과 선생님들이 많이 하는 말 중 정작 정신과에 와야 할 사람들은 안 오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는 말이 있답니다)
또 정신과를 쇼핑처럼 드나드는 일이 흔해서 그게 뭐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병이 제게 찾아온 게 1996년 갓 19살이 넘은 제게는 가혹한 낙인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 병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장 큰 상처는 다름 아닌 '수치심'이었습니다.
: 내 정신이 작은 약 몇 알로 좌지 우지 된다는 점
: 그 약물들을 평생 먹고 관리해야 한다는 점
: 그 약물들로 인한 부작용으로 체중이 증가했는데 그로 인한 차별적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
: 이 병에 대한 이해를 가족, 친구, 지인에게 충분히 이해를 못 받고 있는 점
:나는 남과는 영원히 다르다, 이 망할 병이 나를 외롭게 할 거다, 나의 의지가 아닌 약물로 누른 이성의 힘만이 내 인생을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연애나 결혼 같은 남들과 같은 일상 또한 먼 일이다.
오늘 이야기를 써야지 마음은 먹으면서 이 병이 찾아오게 된 그즈음을 회상했었습니다. 저를 다단계에 데려간 고등학교 동창 친구 또한 같은 대학 선배들의 꾐에 빠져 들어간 것입니다. 그 사무실은 신사동의 한 지하실로 처음 갔을 때 문 앞에 수많은 손들이 악수를 하기 위해 좀비 떼처럼 새로 온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원형 테이블에 새로운 사람들을 앉히면 데려온 사람이 앉은 사람의 어깨에 손은 얹고 못 일어서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밀착마크를 하고 감시를 합니다.
: 데려온 사람이 여자면 남자 선배에게 전화를 하게 해 자궁 외 임신을 했다며 수술비를 청하게 하고
:친한 교수님에게 무릎을 꿇게 하면서 돈을 구걸하게 만들게 하고
: 학교의 비싼 물품을 파손했다며 부모님께 변상비를 구걸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잠을 못 재우게 하고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면서 사람의 정신을 도라 버리게 만듭니다.
저의 1996년 여름과 가을 사이는 그렇게 까맣게 타들어 가면서 '조울증'이라는 병과 함께 폐쇄병동으로 입원을 하게 됩니다. 거기서 비록 약물은 무거웠지만 그동안에 너무 피폐하고 못 쉬었기에 자고 먹고 자고 먹고 하면서 두 달을 보내게 됩니다.
퇴원 후 저는 거울 속의 낯선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저 친구의 일상적인 약속을 믿고 나간 자리였는데... 50킬로대의 저는 70킬로 대가 넘는 거구의 사람이 되었고 갑자기 투약한 약물로 인하여 눈빛은 초점을 잃고 겁을 먹었으며 무엇보다 생기를 잃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저와 저만의, 저만이 아는 자그마한 전쟁이 제 안에서 벌여졌습니다. 그 이전 여름의 나로 돌아가기 위한 긴 여정의 시작말입니다.
우리는 부서지기 쉽지만 단단해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하기에 저는 저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