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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Apr 22. 2018

출장 전 날 밤

원래도 출장이 많았지만 작년 말 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출장은 간다. 두 번의 일본 출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싱가폴행이다. 내일 출장도 싱가폴행이다. 싱가폴은 일년 반 정도 살다 온 나라이기도 하고, 출장 때문에 워낙 자주 들락나락 거려 익숙해지다 보니 다른 나라로 출장간다는 설레이는 느낌 보다는 그냥 좀 더운 곳에 잠깐 빡세게 일하러 간다는 느낌이 더 크다. 


하지만, 한 때 싱가폴은 나의 꿈의 나라였다. 첫 회사를 그만두고, 두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첫번째 사업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게 도대체 무엇인지 하염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반 년 정도의 시간동안, 나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한국을 떠나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감사하게도 싱가폴은 그리고 지금의 회사는 내게 그 기회를 주었다. 한국이 재미있는 지옥이라면 싱가폴은 재미없는 천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에 비해 재미없고 지루한 싱가폴이지만, 5년 반 전 이민가방 싸들고 창이공항에 내렸던 그 순간이 떠오르면, 매일 걸어 다니던 오트람 파크에서 티옹바루 까지의 출퇴근 길을 혹시라도 지나가게 될때면, 그 때의 순수함과 무모함, 열정이 떠올라 가슴이 쿵쾅 거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초심, 초심을 잃지 말아야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열정만으로 문을 두드렸던 나를 반겨주고, 기회를 주고, 믿어준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나 또한 그런 기회를, 믿음을,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나 실천은 쉽지 않다...) 


이번 출장은...어려운 출장이다. 생각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들도 많고, 발표해야 하는 것도 있는데, 솔직히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의심도 들고 걱정도 된다. 괜히 헛소리를 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발표할 때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해서 동료들의 노고에 해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래서 하염없이 덱을 들여다보게 되고, 숫자를 머릿속에 외우려고 노력하게 되고, 무슨 말을 해야하나 생각하게 된다. 근데 그러다가도 또 한 순간, 내가 정말 이 일을 할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 한없이 사색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근데, 뭐 어쩌겠어. 뭐든 처음부터 짜자잔 하고 잘하게 태어난 사람은 없는 것처럼. 지금 못하면 망신당하고, 실패하면서 배우면 되는 거고, 실수하면 사과하면 되는거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면 아, 나는 이 분야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물러나면 되는 거다. 결국 제일 무서운 건 스스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을채 요행을 바라다가 제대로 노력한 번 해보지도 않은채로 실패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노력하자. 그래야 적어도 이게 내가 노력해서 잘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노력해도 잘 못하는 건지, 그러니까 나는 다른 일을 하는게 더 맞는 사람인 건지 알 수 있으니까. 


일단..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서 발표덱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디스커션 준비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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