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체감되는 시기이다.
지난 몇 주간 chat GPT와 이야기하고, 미드저니를 통해 생성된 작품을 보고, 마이크로소프트의 Copilot 관련 내용을 보니, 앞으로 왠만한 사무직 일자리는 물론이고 비교적 안전하리라고 여겨졌던 창작 분야의 직업들도 AI 로 쉽게 대체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을 상상할 때 마지막까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안전하리라 여겨졌던 분야는 창작분야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글쓰기, 그림, 비디오, 사진은 물론이고 작곡까지 웬만한 사람보다 훨씬 더 나은 수준으로 뚝딱해내는 AI를 보고 있자니 참으로 다양한 감정이 올라온다.
AI로 인해 우리는 더 적은 노동시간을 투입해서 더 많은 것들 만들어낼 수 있으니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사회에 진입할 수 있을까? 혹은 AI로 인해 촉발되는 공급 증가의 혜택은 극소수에게 돌아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족한 일자리에 따른 소득감소를 감내하고, 자신의 쓸모가 다했다는 괴로움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양극화의 모습이 만들어질까?
아주 이상적인 시나리오를 상상해보면, AI가 만들어내는 생산성의 혁신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무의미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기업은 근로 시간을 감축하지만, 노동자에게 동일 임금을 지급한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적게 일하면서도 같은 임금을 받고, 늘어난 시간 덕분에 그 시간을 이용해 더 많이 생각하고, 공부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세금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생계를 해결할 수 있게끔 해주는 기본소득을 지급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여가에서, 재미로 하는 공부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고대 그리스시대에 소수의 시민들이 노예들에게 모든 노동의 책임을 넘기고 가질 수 있었던 토론의 문화, 여가의 문화, 시민 정치의 문화가 꽃피운다.
아주 이상적인 사회로 이행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합리적인 정치적 의사결정, 시민 의식의 고양, 기술을 가진 극소수 엘리트/자본가들의 선의, 사람들이 일이 아닌 다른 것에서 자신의 존재의 쓸모를 찾을 수 있는 성찰 능력과 같은 것들일 텐데,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아무래도 지금 사회에서 곧장 이상적인 사회로 넘어간다는 건, 지금 내가 몇 시간 명상해서 팔선정에 도달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듯하다.
그럼, 앞으로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논리에 따라 다양한 예측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예측은 미래를 대비함으로써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지만, 예측대로 세상의 모습이 펼쳐질 것이라 쉽게 단언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
아니 그럼 도대체 어쩌라구? 사실 이 질문은 내가 최근 자주 하는 질문인데, 나는 세상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쏟는 노력의 단 10%라도 우리가 존재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존재 그 자체의 감각을 느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아주 비생산적일 수도 있는 것들에 마음을 쏟을 때가 아닌가 싶다. 이유없고 목적없이 산책을 해보고, 꽃향기를 맡아보고, 온전히 음식의 맛을 느끼며 식사를 하고,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며 마음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관찰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을 맞대는 그런 행동들 말이다. 생산성이란 이름에서 아주 멀찌감치 떨어진 이런 것들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들이고 우리의 진정한 창조성을 깨워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와는 또 별개로,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서도 좀 더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에 함몰되어 인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호모사피엔스라는 종 자체를 관조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거지.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에 함몰된 인간은, 호모사피엔스가 AI의 출현에 따라 그 쓰임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에 자연적으로 거부감과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데, 종이라는 한계에 갇히지 않고 생각할 때 비로소 인간은 AI 가 가져다주는 좋은 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어쩌면 호모사피엔스를 넘어서서 진화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렇게 바라보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흥미진진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상상만 하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동시에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는데, 인류의 집단의식은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 참여자이자 관조자로서 지켜볼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