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i Nov 17. 2023

만 서른 여덟이 되었다. 인생 2막으로 넘어간다는 느낌

만으로 서른여덟이 되었다. 2년 후에는 마흔이고, 12년 후에는 쉰이네. 가끔 문득 '앗, 내가 벌써 이렇게 나이가 먹었네.' 라는 생각이 들어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찰나의 시간 같기도 한데, 시간으로 따져보면 벌써 사십년 가까운 시간을 살아왔고, 사회생활을 시작한지도 벌써 십오년이 다 되어 간다니... !! 그래도 이 시간동안 지금의 나로 잘 자라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든다. 



지난 몇년 간 심리적, 물질적으로 본격적인 인생의 2막을 준비해왔다고 느꼈는데, 요즘에는 그 2막에 이제 막 진입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도,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기울이고 싶은 것도, 관심이 가는 것들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언제부턴가 삐까뻔적한 팝업스토어나 예쁜 것이 가득한 백화점이나 상점에 가도 왠지 좀 시큰둥하고 갖고 싶은 것이 별로 없다. 사실 그래도 이번 생일에는 좀 삐까뻔쩍한 걸 하나 나에게 선물해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백화점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딱히 갖고 싶은게 없었다. 아이패드를 살까 살짝 고민했는데, 집에 두고도 쓰지 않는 맥북을 보니 굳이 아이패드를 산다고 해도 추가적으로 사용할 용도가 없을 것 같아서 왠지 애물단지를 하나 더 들이는 기분이 들어 그냥 사지 않기로 했다. 



생일에는 친구와 점심을 먹고, 합정 땡스북스에 들러 책을 한 권 샀다. 20대 시절부터 들락거리던 서점이 여전히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좋은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남자친구가 내 생일이라고 일찍 퇴근을 해서 둘이 같이 오랜만에 근사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옆 동네에 새로생긴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는데, 커다란 화덕에서 막 구워서 내주는 피자와 생면으로 만든 파스타가 정말 맛있었다. 평소에는 우유나 치즈를 먹지 않지만, 어제는 특별히 생일기념으로 치팅을 해서, 크림 파스타와 피자에 올라간 치즈를 맛있게 먹었다. 사실 비건을 하면서 제일 먹고 싶은 건 고기가 아니라 우유와 치즈, 버터, 계란, 그리고 오징어인데, 아주 먹고 싶을 땐 너무 참지 않고 가끔 먹는데 어제가 그 날이었다. 밥을 먹고는 비오늘 날이라 왠지 오징어가 들어간 파전이 너무 먹고 싶어서 광명 전통 시장에서 오징어 파전과 막걸리를 한잔 마셨다. 오랜만에 생일이라고 과식을 하고 기름기 많은 파전을 먹고, 술까지 마시니 기분이 한 10분쯤 좋았는데, 역시 건강하게 먹지 않으니 왠지 좀 더부룩하고 속이 가볍지가 않다. 비건을 하니 확실히 좀 더 예민해졌는데 이런게 참 좋다. 내 몸에 이상한 걸 넣으면 바로 반응이 온다. 



남자친구는 생일 케잌 사는 걸 깜박했는데, 예전의 나 같으면 어떻게 여자친구 생일에 케잌 사는 걸 까먹을 수 있냐고 섭섭해 했을텐데, 이번에는 전혀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배가 너무 불러 산책할 겸 근처 제과점에 가서 케잌을 사왔다.  '지금처럼 행복하게 해주세요' 라고 소원을 빌고 촛불을 껐다. 샤워를 하고, 요즘 보고 있는 빨강머리앤 만화를 보며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니 정말 행복했다. 



생일이라고 친구들이 축하도 해주고, 또 몇몇 친구들은 선물도 보내줬다.  나는 기념일을 정말 못챙기는 편이라 친구들은 물론이고 가족 생일도 잘 못챙기는데, 이렇게 매년 잊지 않고 챙겨주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고, 반성도 하게되고, 나도 좀 잘 챙기자라는 다짐을 한다. 더불어서 몇 달전 세상을 떠난 J오빠 생각이 났다. J 오빠는 지난 몇 년간 생일에 늘 케잌 기프티콘을 보내줬다. 주위 사람들 잘 챙기고, 늘 열심히 일하던 오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건 정말 충격이었고, 사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데, 생일에 더이상 오지 않는 오빠의 연락을 보니 다시 한 번 오빠가 정말 세상을 떠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나는 사후 세계와 환생, 영혼의 세계를 믿으니,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때때로 오빠의 죽음을 생각하면 왠지 슬프고 공허해질때가 있다. 



생각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는 내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로 옮겨가게 된다. 도대체 이 짧은 생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내가 정말 지켜야 하는 건 무엇인지, 삶에서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인지, 내가 이 생에 배우고자 하는 것, 경험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지금의 나는 그래도 꽤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제는 예전처럼 주변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거나 휘청이지 않는다. 내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사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조언, 유명한 사람들의 훈계 같은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2200년도를 사는 인간이 2023년을 바라본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