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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Feb 10. 2024

우붓일기 day 8, 내 몸에 감사하기

아침에 일어나서 레몬 즙을 내고 서 물에 섞어 마신다. 프렌치 프레소로 커피를 내려 몇 모금 마시고 요가 수업 갈 준비를 한다. 오늘은 그랩을 다운 받았는데, 고젝보다 훨씬 저렴하다. 아침에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이 꽤나 상쾌하고 좋다. 


오늘 아침 요가 수업은 '몸'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작했다.우리  몸은 선물로 주어졌다. 선물로 주어진 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니 몸이 선물로 주어졌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몸은 하나의 제약이자 한계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몸에게 고마움을 느낀 적은 많다. 건강하게 큰 장애 없이 태어난 것도 감사하고, 안경을 안써도 시력이 좋음에 감사하고, 비교적 근육이 많은 것도 감사하고, 내가 무리하게 사용했을 때에도 잘 버텨준 것도 감사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서는 몸에 대한 아쉬움이 늘 존재했다. 요가를 하거나 운동을 할 때면 왜 더 유연하지 못한 건지, 지구력은 왜 약한지 아쉬웠고, 거울을 볼때면 살을 좀 더 빼고 싶다거나 다리가 좀 더 길었으면, 눈이 더 컸으면, 얼굴이 좀 더 작았으면과 같이 아쉬운 점이 계속해서 보였다. 쉽게 피곤해지고 지치는 체력을 가진 것도 아쉬웠다. 그런데 오늘 수업을 들으며 몸에게 감사하다는 마음 너머로 내가 이 몸을 받고 태어난 것 자체가 큰 선물이고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 몸을 받고 태어났을까 생각해본다. 이 몸으로 경험해야 하는 것들이 있고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기에 이 몸을 선택해서 태어났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카르마가 결과로 나타난 것이 지금 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몸이 있기에 나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고, 경험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이 몸은 한계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몸이 가진 한계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 한계는, 그리고 한계라는 모습으로 나타난 나의 패턴과 카르마는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가 수업은 매우 좋았다. 선생님 수업이 좋아서 다음주 저녁에 하는 요가 테라피 수업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음! 



두번째 수업으로 기공을 들었다. 별 기대 없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일단 손가락 끝으로 미묘하게 느껴지는 기감이 너무 좋았고, 아주 간단하고 쉬운 동작인데 그걸 통해 에너지의 흐름이 정렬되는 느낌이 참 좋았다. 기공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호주 출신의 남자 선생님이다. 이 선생님은 티베탄 싱잉볼 명상도 하시는데 호주 출신 백인 남자가 중국에서 온 기공과, 티벳에서 온 티베탄 싱잉볼을 가르친다는 게 좀 재미있기도 하다. 오늘 잠시 이야기를 들어보니 살던 곳 (멜번)에 티벳의 라마승이 세운 절이 있다고 한다. 이 라마승은 달라이 라마의 12제자 중 하나라고 하는데 이 분에게 싱잉볼을 직접 배웠다고 한다. 현대에 불교같은 동양의 깨달음 전통이 서양으로 퍼지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충분하다고 느끼기 전까지 깨달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면 행복할 수 있을거 같으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자신이 원하던 걸 가지게 되면 자기가 추구했던 것이 사실 큰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시점을 지나게 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추구하게 된다. 이 때 길을 잘드는 게 중요한데 불교 전통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괜히 이상한 종교나 영성, 스피리추얼리에 빠지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고 수승하다. 무엇보다 요즘은 스피리추얼리티를 그냥 사업 수단 중 하나로 사용하면서, 자신이 조금만 신끼가 있다거나 잘 보거나 느끼면 그걸 무기로 스피리추얼 티칭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중 대다수는 진짜 가르침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혼미하게 만들고 의지하게 만들고, 본질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도 지난 십수년간 수많은 스피리추얼리티를 경험하고 기웃거렸지만, 결국 가장 수승한 진리는 부처와 예수가 전했던 (종교화 되면서 변질된 것이 아닌) 가르침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기쁜 일은 오늘 시도한 음식들이 모두 맛있었다는 것! (인간은 참 단순하다!!) 요가와 명상 수업을 마치고 어디에서 밥을 먹을까 고민하다 The seed of life 에 갔다. 생채식/비건 식당으로 오래전부터 아주 유명한 곳이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비건 로푸드 웜 라쟈나를 먹었는데 어제 먹은 라쟈냐와는 비교도 안되게 맛있었다... 밀가루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는지 정말 신기할 뿐. 사이드로 나온 시저 샐러드도 너무 맛있었는데, 분명 비건인데 마요네즈와 치즈의 풍미가 느껴졌다. 앞으로 나의 참새 방앗간이 될 것 같은 느낌. 구글 리뷰 써주면 로비건 초코볼을 준다고 해서 디저트로 초코볼도 받아서 먹었는데 이것도 진짜 맛있었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분위기도 좋고. 



우붓의 맛있는 로푸드들 



희안하게 여행지에서 맛없는 걸 먹으면 두배로 속상하고, 맛있는 걸 먹으면 두배로 기쁘다. 사실 이런 마음도 바람직한 마음은 아니긴 하다. 더 잘먹고 맛있게 먹고 싶다는 마음도 결국은 탐욕의 일부일 뿐이니까. 맛있는 걸 먹어도 기뻐하되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맛없는 걸 먹어도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채움에 감사하고 실망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저녁은 요가원 바로 앞에 있는 moon by sun 에서 주키니면 페스토 파스타를 먹었는데, 이 또한 너무 맛있었다. 우붓에 있는 한 달 간 로푸드를 쉽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누리려 한다. 생채식으로  모든 끼니를 해결하는 건 아직 엄두가 안나지만, 적어도 한끼정도는 다양한 로푸드를 시도해보고 싶다.  



어제 밤에 여기까지 쓰고 쓰러져 잠드는 바람에 불을 키고 잠들어버렸다. 그래서 새벽에 깼는데 천둥번개가 치고 있어서 잠을 못들어서 오늘은 아침 요가 수업 못가고 대신 여유롭게 집에서 커피 내려 마시고, 파파야랑 어제 사온 그래놀라 바이트 먹으면서 보내고 있다. 꿈을 꿨는데 지디가 F*** 라는 곡이 타이틀곡으로 담긴 앨범을 출시해서 음반 차트를 석권하는 꿈이었다. 노래 가사랑 멜로디도 들었는데 그건 잘 생각이 안나네. 도대체 이 꿈은 왜 꾼 걸까? 그나저나 지디 앨범 진짜 언제 나오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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