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과거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주인공의 능력, 한 번쯤 이런 능력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 않나?
작년, 오랜만에 친구 L과 P를 만났을 때 L이 건넨 질문이 떠 올랐다.
"10년 전의 나로 돌아가서 한마디 해 줄 수 있다면 뭐라고 이야기 해 줄거야?"
10년 전의 나라면 한창 세상에서 제일 열심히 일하고 놀면서 세상을 안다고 자만했을 때다. 그 이후에 나름의 성공을 거두기도 했고, 또 번아웃에 빠져서 긴 어둠의 날들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과정들을 잘 헤쳐왔고, 그 모든 과정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과거의 나로 돌아간다고 해도 잘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살 거라는 말 빼고는 딱히 해 줄 말이 없다.
"음.. 글쎄, 잘하고 있고, 잘할거라고 말해줄래." 친구에게 말했다.
같이 있던 친구도 비슷한 말을 한 것 같다. "너를 믿어." 정도였던가?
L은 깔깔 웃으면서, 자기가 많은 사람들한테 이 질문을 했는데 이렇게 답한 사람은 너네가 처음이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 무조건 비트코인 사서 절대 팔지 마 절대로!" 라고 말했다고 했다. ㅋㅋㅋㅋㅋ
2013년에는 비트코인 가격이 최고로 치솟았을 때도 대략 200달러 정도였고 그 아래였으니. 그때 비트코인을 10개만 사놨어도 이게 얼마야. ㅋㅋㅋㅋ
(여기부터는 어바웃 타임 스포가 나옵니다)
어바웃 타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던 주인공의 조상들 중 몇몇은 돈을 버는 데 그 능력을 사용했다는, 미래를 이미 알고 있다면 마치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주식이든 땅이든 뭐든 돈을 벌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주인공의 아버지는 또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 조상들의 최후는 그리 좋지 않았다는.
그래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색다르게 사용한다. 바로 시간을 마음껏 늘리는 거다.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는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두세번씩 읽는 사치를 부린다. 일찍 은퇴해서 가족들과 소소한 일상의 재미와 행복을 쌓아간다.
과거로부터 그가 배운 것은 행복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건 어마어마한 재산이 아니라, 자기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보내는 사소하고 자칫 소소해 보이지만 충만한 시간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때때로 평범한 하루를 두 번씩 살아보기도 한다. 그것을 통해 같은 하루라도 사소한 웃음, 작은 친절,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시선을 통해 전혀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러니까 찬란한 순간을 만드는 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경이롭게 바라볼 수 있는 우리의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지혜로움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이 깨달은 것은, 마치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한듯, 그러니까 우리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야기하는 것, 바로 현재를 살아간다면 시간여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마치 영원인 듯 현재에 충실하고 충만하다면 왜 굳이 시간여행을 해야하는가?
그리고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필연은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되돌리더라도 일어날 수밖에는 없다는 진실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시간을 되돌려도 암으로 죽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살면서 아무리 과거를 바꾼다 하더라도 불가항력적으로 어떤 사건들을 맞이할 수밖에는 없다. 누군가는 이를 운명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이것이 인과 관계라 생각한다. 내가 믿는 세계관 안에서 원인과 결과는 이번 생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내가 살아온 전 생애에 걸쳐져 있다. 그러니까, 이번 생을 아무리 되돌리려 한다 해도 과거의 어느 생에서 내가 한 행위에 대한 결과를 이번 생에서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생의 결과 또한 이번 생에 받지 않더라도 어느 생에선가 받겠지..)
좀 더 큰 세계로 확장해서 생각해 본다면, 인류의 운명이라는 조금 거창한 시각에서도 어떤 흐름들은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어떤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어떤 회사가 무엇을 만들어 내고 이런 것 너머로 더 큰 흐름이 있다고 믿는 달까. 그러니까, 그 회사도 아무리 큰 책임을 맡은 어떤 사람도 결국은 이 유니버스에서 카르마에 따라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 뿐인 것이고,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카르마와, 인류의 의식과 DNA가 진화하고 역동하는 흐름에 따라 어떤 흐름들은 결코 막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반복하고 반복되고 반복하는 흐름 속에서, 어쩌면 수천억 년도 전에 또 다른 인류는 지금 우리가 겪었던 모든 것을 그대로 반복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높은 확률로 그랬을 것이다. 붓다가 이야기하는 성주괴공처럼 세계는 아주 긴 기간 동안 성립되고, 머무르고, 파괴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지속하다 다시 성립되기 시작할 테니까. 지금이 그 중 어느 시기에 속하는지는 사실 의미가 없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이 기간은 몇천 년도 몇초로 만들어 버릴 만큼 긴 기간이니까.
하지만 모든 물리법칙이 동일하게 작동하는 우주에서는 모든 것이 파괴된다 하더라도 결국 인간은 다시 탄생할 것이고, 비슷한 세상을 다시 만들어 낼 것이다. 누군가는 불을 발견할 것이고, 수렵을 멈추고 농경을 시작할 것이고, 누군가는 사적 소유를 만들어 낼 것이고, 누군가는 권력을 추구할 것이며, 로마제국이 아니라도 제국은 만들어질 것이며, 코페르니쿠스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고, 오펜하이머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핵을 만들어 낼 것이며, 에디슨이 아니라도 누군가는 전기를 발명할 것이고, 스티븐 잡스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아이폰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낼 것이고, 마크주커버스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소셜미디어를 만들어 낼 것이다. 결국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과 무지는 변하지 않고 지속될 것이기에.
이렇게 생각하면 삶이란, 인생이란 때때로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나라는 것이 우주의 띠끌만도 못한 존재라는 생각, 그냥 DNA의 조합이라는 생각, 성공도 실패도 스쳐 지나가는 허망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하지만 이 모든 허무함은, 에고가 만들어 내는 나라는 자아감에서 오는 생각일 뿐이다. 에고를 지우고, 나라는 개체에서 한 발자국 물러선 채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은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나는 개체로서 이 경이로움을 경험하고 있는 것일 뿐일 뿐, 나도 이 세상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삶을 잘 살아간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듯,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충만하게 느끼고,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우주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관계 속에서 응원과 연대, 기쁨을 발견하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개체로서만 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기에.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간다면 그 개체성을 극복하기 위해, 아상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수련을 하며 자신의 아상을 조금이라도 흐리게 할 수 있는 삶을 산다면, 아마도 더할 나위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