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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Oct 06. 2019

나의 방콕 일상

여행과 삶의 그 중간 어디쯤 

퇴사 후 서울과 방콕을 왔다갔다 하며 지내기 시작한지 벌써 어언 두달째가 되어가고 있다. 

왜 하필 방콕이냐고 묻는다면, 첫번째로는 남자친구가 방콕에 살기 때문이고, 두번째로는 방콕은 아주 오래전부터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던 나의 최애 도시이기 때문이다. 물론 생활비가 저렴하고 (사실 막상 살아보니 이건 좀 아닌 것 같긴하다..) 서울과의 왕복 비행기값이 저렴하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여행이 아닌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도시를 방문하니, 유명한 곳들을 방문하고 새로운 스팟을 구경하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이 곳에서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더 커진다. 매일 가는 카페라든지, 단골 식당이라든지, 가끔 만나서 수다 떨 수 있는 친구라든지 뭐 그런 것들.  


일단 아직은 방콕에 정착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 단계라 많은 것들이 모호하고 애매한 단계이지만, 그래도 일주일 넘게 살아보듯 지내다 보니, 이 곳에서도 몇 가지 루틴이 생기고 좋아하고 자주 방문하게 되는 곳들이 생기고 있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명상을 한다. 혼자였으면 아침 명상은 거의 미션 임파서블 이었을텐데, 요드가 6시반부터 8시까지 무슨 기계처럼 일어나서 명상을 하니, 나도 스리슬쩍 묻어가면서 적어도 30분 정도는 명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침을 먹는다. 점심 저녁에 많이 먹을것이 뻔하니까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식단인 아침은 최대한 간단하게 야채 샐러드와 보이차를 마시고 집에 있는 과일을 대충 집어 먹는다. (그런데 대충 집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막 망고스틴, 람부탄, 파파야 이런 것들.... 열대과일은 진짜 사랑이다...ㅠㅠ) 


요드는 보통 아침에 클라이언트 미팅이 있어서 출근을 하고, 나는 집에서 여유를 부리며 메일을 확인하고, 환율과 주식시장을 확인한다. 요즘 원화는 약세로 바트화는 강세로 가는 추세라서 만약 태국에서 좀 더 오래 살기로 결정한다면 언제 환전을 하고 내가 가진 자산들을 어떤 통화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고민을 해봐야 한다. 주식투자는 요즘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진짜 투자를 할 준비가 될 정도로 지식을 갖추려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2-3년은 더 걸려야 할 것 같다. 그 전까지는 소액으로 연습하며 노하우를 쌓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중. 

나의 홈 오피스!!! 

여기까지 하면 한 10시-11시 정도가 되는데, 그럼 슬슬 짐을 챙겨 TCDC 나 요가원으로 향한다. 남자친구 집은 실롬/사톤 아래쪽에 있는 얀나와라는 지역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불편한 위치라서 그랩을 타야 한다. 우버가 철수한 후 그랩 독점이 되면서 그랩 가격은 택시 가격보다 훨씬 비싸졌다. 그래도 알고 쓰는 바가지가 모르고 쓰는 바가지보다 나으니까 그랩을 주구장창 이용하고 있다. 


TCDC (Thailand Creative&Design Center)는  나의 방콕 최애 플레이스가 되어버렸다. 하루 사용료는 100바트, 일년 무제한 사용로는 1200바트 인데, 한 번 가보고 완전 반해서 일년 무제한 이용권을 끊었다. 영어로 된 비지니스 관련 원서, 온갖 디자인 서적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고, 엄청나게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고 공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 관련해서 직접 원자재들을 확인해보고 영감을 받을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자재실(?) 같은 것들도 있어서 디자인 관련 영감도 뿜뿜 받을 수 있다. 근데 일년에 1200바트 밖에 안한다니... 진짜 태국 정부 감사합니다. 여기에서 요즘 진행하고 있는 요트관련해서 일을 좀 하고,  글도 쓰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하고 싶은 건 많고 일단은 집중과 선택보다는 이것저것 다 해보고 결정하자는 모드라서, 나의 에너지가 100이라면 이 100을 한 10군데 정도에 다양하게 배분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앞으로 3달 정도 후에는 적어도 3-4 가지 정도로 하고 싶은 일들을 추려내는 것이 일차 목표이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TCDC

TCDC 에서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4시반 - 5시 정도 되면 방콕의 살인적인 트래픽을 피하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선다. 요드가 스케줄이 일찍 끝나는 날에는 TCDC 로 픽업을 오기도 하지만 보통은 사톤이나 실롬에서 만나서 저녁을 먹으러 간다. 방콕은 사실 어딜가서 뭘 먹어도 맛있는데, 요드가 델꾸가는 곳들은 방콕에 있는 맛집 중에서도 또 검증된 맛집이라 진짜 맛있다. 보통 서울에 있을때에는 일주일에 서너번은 맥주든 와인이든 저녁에 술을 먹기 마련인데, 요드는 운전해야 되서 술을 못마시고, 또 혼자 술을 마시기에는 재미가 없으니 방콕에 오면 술을 먹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그 대신....저녁 먹고 대부분 디저트를 먹으러 가는데, 태국의 디저트 종류는 정말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는 바바나 인 코코넛이랑 길거리에서 파는 태국식 빙수 씽씽이와 롯청, 그리고 태국의 국민 디저트 가게(?) 에프터유의 빙수와, 카페에서 파는 플러피 팬케잌. 태국은 서양식 디저트 뿐만 아니라 정말 다양한 태국식 디저트들을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얼마전 요드가 한국에 왔을때 한국 디저트 먹고 싶다고 했는데, 근처에 한국 디저트 파는 곳을 찾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팬케잌을 먹으러 갔는데, 방콕은 이 두가지가 함께 공존한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다. 

알록달록 태국 디저트. 여행자로 왔을때는 절대 안먹었던 것들인데 이젠 없어서 못먹는다. 


그리고 집에오면 소화를 시키기 위해 파파야를 (또)먹고, 인스타도 좀 보고, 책도 좀 읽고, 블로그도 좀 하고, 네이버 웹툰도 좀 보다가 잠을 잔다. 


서울에서는 퇴사를 해도 늘 바쁜 것 같은 느낌에 시달렸는데, 방콕에서는 이것저것 하는 건 많은데 참 여유롭다. 물론 가끔씩 서울의 은지가 찾아와서 '지금 이렇게 여유부릴때가 아니야. 빨리 마음의 결정을 내리라고!!!' 라며 조급하게 스스로를 푸쉬할때도 있지만, 맛있는거 먹고 선선해진 밤거리를 서성거리다 보면, 조급한 마음은 어느덧 스스로 자취를 감춘다. 그래서 내가 방콕을 좋아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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