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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Mar 06. 2020

코로나 랜덤 시니컬 주절주절

인간은 계획하고 신은 비웃는다. 


지금쯤이면 방콕의 짜오프라야 강이 보이는 콘도에서 아침마다 수영하고, 명상하고, 매일 맛있는 거 먹고, 헤이요트 3월 트립도 준비하고, 뭐 그랬어야 했는데... 인간의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은 이 쪼그마한 코로나 바이러스 로 인해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방콕 가려고 전셋집도 빼고, 가구도 다 팔아버리고, 상자 4개랑 캐리어2개 분량 짐만 남기고 모두 처분해버렸는데, 그 짐을 고스란히 방콕이 아닌 부모님 집으로 가져와서 무려 7년만에 부모님, 남동생과 함께 동거중이다. 


자유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과거의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립을 꿈꾸었고, 독립을 성취한 후에는 그 자유로움이 너무나 좋아서 앞으로 평생 혼자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나도 나이가 먹었는지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하루하루가 꽤나 행복하게 느껴진다. 지금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사는 삶이 어쩌면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길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하니 조금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서울에서 있는 시간이 코로나 덕분에(?) 늘어나면서 친구들도 여유롭게 만나고, 운동도 하고, 무엇보다 엄마가 차려주는 맛있는 음식을 매일매일 먹는다. (덕분에 살도 찐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편하고 배부르게 살고 있는데도 코로나 때문에 가끔씩 우울한 마음이 든다. 오늘은 문득 모든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은데 나는 도대체 왜 우울하지? 라는 생각이 들어 우울감이 드는 마음을 좀 들여다 보았는데, 


첫째로는 내가 계획한 대로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아서 짜증이 난 것이고, 

둘째로는 다음 몇 주, 몇 달 간의 상황에 대해서 명확하게 계획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짜증이 난 것이고, 

셋째로는 코로나와 관련되서 나를 포함한 인간이 얼마나 저열해질 수 있는지를 매일매일 온갖 뉴스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인하며 짜증이 난 것었다. 


의외로 코로나 걸려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없었는데, 코로나 걸리면 가족모두 격리되고 내가 그동안 만난 친구들까지 격리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좀 있더라... 


인간이 느끼는 모든 공포와 불안의 궁극적인 근원은 죽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코로나는 단순히 물리적 죽음의 공포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의 개개인별 동선이 전 국민에게 노출되고, 자신이 속한 직장 및 공동체에도 피해가 간다. 이는 곧 사회적인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공포와 불안을 자극시키기에 아주 적합한 소재이다. 나 역시 물리적인 죽음보다 사회적인 죽음이 더 걱정되는 거니까.. 그런데 사회적인 죽음의 근원도 내가 인지하지는 못하더라도 결국은 물리적인 죽음과 연관 되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인간이란 종족은 그렇게 많은 동물을 별다른 죄책감 없이 죽여버리고 심지어는 먹기까지 하는 것에는 너무나 익숙한데, 인간종의 죽음에는 엄청나게 과민반응을 하며 두려워한다. 아니다. 아프리카나 중동의 작은 나라에서는 몇 백명이 죽어도 그다지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구나... 하지만 프랑스나 미국같은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열 명만 죽어도 난리가 난다. 참 기준도 애매한 인간종족. 인간중심을 외치며 (인간 중심은 대충 보면 참 아름다운 말 같은데 사실은 인간 말고 다른 종은 다 변두리로 가져다 놓아 버리는 참으로 이기적인 말이기도 하다.) 지구의 가장 강력한 지배자로 등극한 인간이 눈에도 안보이는 바이러스로 이렇게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코로나란 마치 인간중심 사상을 비웃는 바이러스의 역습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인간은 또 결국은 어떻게든 힘을 내고 합심하여 이 위기를 극복해 낼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인간종의 한 개채로서 인간을 사랑할 수 밖에 없고 뭐 그렇다 참..


아무튼 인간으로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건 참 아름다운 경험이기도 하지만, 참 거지 같은 경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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