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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May 09. 2021

히피가 되고 싶었던 나, 이제 안녕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늘 자유롭게 '히피'처럼 사는 삶을 꿈꿨다. 중/고등학교 때 인도에 대한 책들을 읽고, 비틀즈를 듣고, 서양의 반전운동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면서 히피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고, 대학생때 1년간 인도에 있으면서 히피처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 하면서 그들의 삶의 방식에 매료되었다. 


그들은 그 동안 주변에서 흔하게 봐왔던, 현생에 치이는 학생 혹은 직장인과는 확실히 다른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히피는 한 명도 없었지만, 정신적으로는 훨씬 더 풍요롭고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있다는 확신이 느껴졌다. 내가 궁금해하는 다양한 질문에 그들은 자신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답을 해줬고, 책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인도 각지에 있는 명상센터나 요가선생님, 구루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나의 사유의 범위는 그들과 이야기 하면서 점점 확장되어 갔다. 


무엇보다 그들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매우매우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히피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대학을 졸업해서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주입받아 왔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구나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왠걸,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인류의 수 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히피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고, 나도 나만의 삶의 방식을 내 맘대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0대 초반 떠났던 여행들, 여행지에서 일어난 다양한 만남과 대화 덕분에 나는 사회가 규정한 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었지만, 내 마음 속에는 '나도 히피처럼 살고 싶어!' 라는 다른 조건화가 생겨버렸다. 나란 인간은 자유라는 가치가 너무나 중요한 인간인데, 나에게 자유의 상징은 곧 히피, 그래서 나는 다른 의미로 현생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훌쩍 떠나지 못하는 스스로를 못마땅해하며 지난 십여년이 넘는 시간들을 '떠나고 싶은 상태'에 머물며 살아왔다. 

이렇게 여행하고 싶었다.. 

히피에 대한 욕망은 이해받기 어려운 욕망이다. 돈이나 명예, 혹은 성공에 대한 욕망은 비교적 쉽게 이해 받는다. 설사 그 욕망이 뒤틀린 욕망이고 건강하지 못한 욕망이라고 해도 그 곳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고, 자본주의 사회는 그 욕망을 먹고 성장하니까. 또 사회는 그 욕망을 달성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보상을 선물하니까. 히피에 대한 욕망은,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받기도 어렵다. 친구들이나 선배들한테 ' 저는 가끔 인도나 태국으로 훌쩍 떠나서 배낭 하나 매고 히피처럼 여행하면서 살고 싶은 충동이 들어요' 라고 이야기를 꺼내면 대게 돌아오는 반응은 '응? 그래도 지금이 제일 열심히 일할 때인데 먼말이여~ ' 혹은 '너 지금 잘 나가고 있는데 왠 뚱딴지 같은 소리?' 였다. 사실 나도 스스로 이해가 안되긴 했다. 그래서, 가끔씩 그런 충동이 올라올 때면 잘 다스려서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곤 했다. 


올해 휴먼디자인을 배우면서 나의 이런 숨겨진,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자유와 히피에 대한 욕망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사실, 들여다 보긴 했는데 그 어떤 실마리도 찾을수 없어서, 이게 나의 진짜 욕망이고 가야할 길인데 현생을 위해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때 선생님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조건화 일수 있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조건화라고? 자유가 조건화가 될거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그리고 오늘 JJ언니와 대화 하면서 실마리를 풀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찾았다. 나에게 자유 = 히피스러운 삶으로 고착화 되어 있었다는 것. 


생각해보면 지금도 나는 충분히 자유롭다. 사업을 하니 직장인일 때보다는 훨씬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일의 양이 많기는 하지만... 시간을 조절하며 대학원도 아니고 있으니 확실히 자유로운건 맞다) 부모님도 내가 하는 일이나 만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나를 온전히 자유롭게 해주신다. 완전한 경제적 자유를 얻은 건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도 어느정도 안정적인 기틀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으로도 나만의 철학과 생각의 틀을 갖춰가고 있고, 사회가 주입하는 사상이나 신념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고 느끼고 있다. 왜냐면 나는 히피가 아니거든... 


조건화라는 것이 참 무서운게, 사회적으로 대중적이고 모두가 선망하는 것을 원하게끔 조건화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나처럼 본래 마이웨이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마이너하고 특이한 것에 조건화 되어서 그것이 마치 절대적인 길인냥 추앙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건화가 만들어 내는 가장 큰 폐해 중 하나는 현재의 상황에 온전히 헌신할 수 있는 힘을 빼앗아 가버리는 것이다. 헌신은 온전히 진심을 다해 그 상황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것이다. 무언가에 헌신할 때 우리는 삶의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문제는 조건화된 마음이 다른 무언가를 꿈꾸면, 현재의 삶에 온전히 헌신하는 것이 어려워 진다는 것에 있다. JJ 언니와의 대화를 끝내고 집에돌아와 진정으로 나답게 사는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다.


진짜 나 다운 것은 무엇인가? 나의 본성은 무엇인가? 

나의 본성은 히피인데, 발현되지 못하고 억압되어 있는가? (아쉽게도) 아닌 것 같다.. 

나는 뭘 하든 구조화를 시켜야 하고, 한 번 일을 시작하면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무슨 일이든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해 내야 하는지 상대적으로 쉽게 알 수 있고, 빨리 배우는 편이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뭐든 빨리 처리해야 직성이 풀린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히피가 될 수 있는 좋은 기질은 아닌 것 같다... 또르르...) 


그래, 히피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되면 된다. 이렇게 정리하니 히피가 되고 싶다는 조건화에서 조금 자유로워 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히피는 나의 로망이긴 하니까, 계속 그리워 하긴 하겠지..) 

자유라는 가치가 나에게 중요하다면, 나의 식으로 자유롭게 살면 되는 거지, 다른 누구의 방식대로 자유로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짧은 인생에 다른 누구의 신화가 아닌 스스로의 신화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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